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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의 자율성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이 나라 사학은 그 역사에 있어 빛나는 전통을 자랑하고 있으나 현재에 있어서는 너무도 많은 문제와 난점을 안고 있음을 가리울 수 없다. 구한말에 이 나라 근대교육의 초석을 세운 것이 사학이라면 일제치하에서 이 나라 민족교육의 명맥을 이어온 것 또한 사학이었다. 우리는 이 같은 사학의 전통을 겨레의 자랑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러한 사학들은 해방 후, 그리고 또 특히 6·25사변 후 우선 그 수에 있어 급격한 팽창을 하여왔다. 현재 한국사학재단연합회에 가입하고 있는 사학은 5백을 넘고 있다고 전한다. 교육에 대한 욕구와 학령인구가 다같이 급증하고, 교육구조가 또한 다양화·고층화한 일반 추세가 불가피하게 관·공립 학교를 앞지르고 사학의 팽창을 가져오게 한 요인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사학의 양적 팽창은 바로 그 사실 자체가 많은 문젯거리를 수반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본래 우리의 모든 사학과 그 재단창립자들은 예외 없이 온 겨레의 숭상을 받고 있었던 것이지만, 오늘의 사학과 그 재단들이 그 영광을 누릴 수 없게 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그 대답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예전의 사학재단은 교육사업의 「교육」에 그 1차적인 목적이 있었다면, 요즘의 그것은 교육사업의 「사업」 이 주요, 「교육」은 오히려 종이 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고있기 때문이라 해서 지나침이 없으리라 본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10일 사학재단연합회는 사학내의 비위사건을 자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사학윤리 위원회를 구성키로 하고 윤리강령을 채택했다. 그들로서는 마땅히 오래 전에 취했어야할 「이니셔티브」를 잡은 것이기는 하다. 교육의 기관인 이상 사학은 무엇보다도 앞서서 스스로가 지닌 공공성의 자각과 자주·자율성의 선양이 절대적인 요청이라 해야 하겠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학이 오늘날 안고 있는 문제는 이에 그치지 않는다. 사학내 재적문제 이외에도 그보다 더 비중이 큰 사학 외재적 문제가 있다. 그것은 사학과 국·공립학교와의 병존 관계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나고 있다. 특히 중등학교 수준에서 가장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은 잘 아는 사실이다.
모든 학교의 평준화라는 이상 밑에 강행된 이른바 중학무시험진학제의 교육개혁은 오늘날 사립중학으로 가느냐 공립중학으로 가느냐 하는 선택을 전혀 개인의 의사를 초월한 우연에 내맡기게 한 셈이 되었다. 국가적 제도로서의 추첨제에 의해서 학생을 수용, 교육하고 있는 사립중학은 그 점에 있어서는 사실상의 공립학교가 되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사립이 다같이 똑같은 수업료·기성회비를 걷도록 해놓고서 정부의 재정적 지원은 오직 공립중학에만 혜택을 준다는 것은 사학에 대한 부당한 차등대우라 할 것이다. 그것은 비단 사학 부정의 근원이 될 뿐 아니라 사립중학에 추첨에 의해서 들어온 학생들에 대해서도 불공평한 처우를 하는 것이 된다. 중학교 추첨입학의 평등주의 원칙이 교육과정과 교육현실에서 깨지고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본 난이 이미 준의무교육기관화한 모든 사립중학교의 공립화를 누차 주장해온 소이도 여기에 있다.
대학교의 경우도 본질적인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른바 「빅·사이언스」의 시대에 있어서의 대학이란 명목적인 사학재단의 재정을 가지고써는 내실 있는 대학구실은 감당할 수 없게 된 것이 오늘날 세계의 추세라 할 수 있다. 외국의 모든 사립대학이 실은 그 재정의 대부분을 공공재원의 기부와 보조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사실상 국립대학과 하등 다름이 없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결국 사학의 문제는 사학의 자체 정화와 함께 정부가 물심양면에 걸쳐서 사학을 육성하는 것이 국가의 당연한 의무라는 것을 깨닫는데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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