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신민당은 옆을 보아야 한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신민당이 그동안 단일야당으로 성장하고 오늘날 89명이나 되는 의석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은 오로지 국민의 성원 때문이다.
국민들은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야당을 아끼고 밀어주는 심정임에 틀림없다. 그것은 야당이 귀엽다든지 훌룽해서가 아니다. 건전한 야당이 존재해야 우리의 민주정치가 잘되어 가겠기에 어떤 기대 속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민당은 지금 분당의 위기를 몰고 왔다. 이성을 잃은 대권다툼이 이 파국을 자초한 것이다. 이는 국민에 대한 배신이고 배반이다.
정당이, 더구나 야당이 국민을 등지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신민당의 이 고비는 물론 당권경쟁에서 나온 것으로만 볼 수는 없다.
신민당은 오래 전부터 구심점을 잃고있었다.
자유당 때의 야당에는 그래도 선후의 위해가 있었고 지도자를 구심점으로 한 신뢰의 풍토 같은 것이 조성되었었다. 말하자면 신익희씨가 구심점이었고 조병옥·장면씨가 신의를 받았다.
그러나 지금의 야당에는 저마다 신익희·조병옥·장면씨를 자처하고 나설 뿐 구심점을 찾을 수가 없다.
더구나 신의라든지 의리를 구하기란 연목구어가 되고 말았다.
나는 지금까지도 자신을 행정가로 믿고 있지만 민정이양 당시 한때 야당에 뛰어든 일이 있다. 재야정당을 규합해서 군정을 종식시켜보겠다는 의욕에서였다.
「국민의 당」이란 것이 이 바탕 위에서 탄생되었었다.
당시 가인(김병로씨)이나 철로(이범석씨)가 함께 나섰던 것도 같은 뜻이었다.
그러나 전부터 야당을 해온 사람들의 의도는 다른데 있었음이 분명했다.
즉 대통령후보를 자기네들 중에서만 내겠다는 생각이었다.
이로 인해서 「국민의 당」은 결국 깨지고 야당의 대통령후보가 4명이나 나오게 되었으니 나의 실망은 이를데 없었다. 양심과 인격을 걸고서는 정치를 할 수 없다는 생각을 이때 갖게 되었다. 그 후 나는 야당후보의 단일화를 위해 후보를 사퇴하고 말았다.
67년 선거전에도 나는 단일야당의 산파역을 맡아 잠시 관여도 해보았으나 역시 전통야당이란 이름 아래 많은 사람이 희생된 것을 안타까와 하지 않을 수 없다.
현민 유진오씨 같은 이도 야당에 몸담았다가 결국 없는 돈만 쓰고 건강마저 해치지 않았는가. 나는 오늘의 김홍일씨 역시 거의 같은 「케이스」가 아닌가 여겨진다.
이분들이야말로 얼마나 고매한 인격의 소유자들인가. 이들을 배제하고야마는 신민당의 작풍-.
오늘의 야당이 안고있는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신민당이 「억지춘향」으로 여기까지 「단일」을 유지해온 것은 그나마 정치의식이 높은 국민과 언론의 견제작용 때문이었다. 서울시민들이 거의 일색으로 국회의원을 뽑아주지 않았던들 오늘의 신민당세가 될 수 있었겠는가. 국민은 야당이 수를 필요로 할 때 선거를 통해 증원했으며 고독한 투쟁을 할 때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집권당과 달라서 야당이 일사불란하기란 물론 어려운 일이다. 여당은 방대한 권력의 안배로 파벌간의 불만을 해소할 수도 있다.
공화당은 아예 파문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지만 일본 자민당은 여러 사단이 경쟁을 벌이면서도 총체적 질서는 잃은 일이 없다.
이에 비해 우리 야당은 파벌의 공존이 어려운 것도 사실이나 그의 옆에 권력대신 국민이 있다는 자각을 갖는다면 어떻게 분당이야 할 수 있겠는가.
더욱이나 국내외적으로 얼마나 중대한 시기에 처해 있는가를 생각할 때 야당의 파국은 용납될 수가 없다.
한마디로 분당은 야당을 위해서나 국민을 위해서나 이 나라의 민주정치를 위해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신민당의 각파는 어느 계보가 옳고 그른 것을 초월해서 사태수습을 위한 협상을 다시 벌여야한다.
일부서 중재에 나서겠다는 사람도 있어서 기대해볼만 하지만 진산계와 반진산연합파는 늦기전에 다시 「4자회담」같은 대화의 길을 터야한다.
어찌 앞만 보려고 하는가. 옆을 보면 거기에는 국민이 있고 여당이 있고 유권자가 있지 않은가. 이런 때야말로 소아를 버리고 대아를 택해야한다.
10월과 12월로 맞섰던 대회를 11월로 절충해서 안될 이유라도 있는가.
신민당은 지난 날에도 어려운 고비를 막바지에서 용케 해결하곤 했었다.
너무 늦긴 했으나 이번에도 극적 타결이 이루어지길 바랄 뿐이다.
끝으로 정치는 먼눈으로 보아야한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다.
영국은 3백년 이상을, 미국은 1백년의 민주정치사를 가지고 있다. 한국은 이제 25년. 일천하다면 일천한 기간이다.
서두르지 말고 지켜보느라면 성장이 필연 그 속에 있으리라고 자위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