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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 7년…신인에서 정상까지|중앙일보와 데뷔 동갑네가 말하는 문화계의 어제, 오늘, 내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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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7년이란 기간은 어떤 의미에서는「성숙」에 이르는 단계를 뜻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문화예술분야를 생각할 때 그 7년은 신인에서 중견, 나아가서는 정상에 이르는 중요한 길목으로 평가된다. 7년의 성장을 맞은「중앙일보」는 거의 같은 무렵에 첫걸음을 내딛기 시작한 문화예술 각 야의「7년 생」들을 한자리에 모아 지난 7년의 성장과정을 더듬으면서 오늘날 그들이 몸담고 있는 문화계의 현실을 진단해 본다.
-1965년 9월22일 저희 중앙일보 창간을 전후하여 문화·예술 각분야에「데뷔」하신 여덟 분이 오늘 자리를 같이 했습니다. 저희 신문이 지난 7년 동안 괄목할만한 발전을 보인 것처럼 여러분들도 각기 자기분야에서 착실하게 성장, 이제 중견으로 활약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데뷔」전후의 이야기부터 시작해 볼까요.

<「신춘중앙문예」서 비롯>
조=중앙 매스컴과 관계를 맺으면서「데뷔」하신 분들이 저말고도 몇 분 계신 것 같습니다만「중앙일보」창간은 제게 가장 감회가 깊을 것 같아요. 제1회 신춘「중앙문예」에 시 『밀림이야기』가 당선되면서부터 문단생활을 시작했으니까요.
물론 그 이전에도 동인활동이라든가, 몇몇 신문·잡지에 선을 보인 적은 있습니다만 「중앙」을 통해「데뷔」하기 위한 워밍업이었지요.
이=제 경우「7년」이란 좀 다른 뜻에서 의의가 있습니다. 65년 봄 장막희곡『바 꼬지』가 국립극장 현상모집에 당선하면서부터 희곡을 쓰기 시작했는데 꼭 7년만에 장막『포로들』로 5·16민족상의 연극 상을 수상했으니까요.
김=이 자리에 참석하고 나니까 벌써 7년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지금도 그렇지만 65년 학교(고대법과)를 졸업하고 노래를 시작할 때 전혀「프로페셔널」한 감정이 없었어요. 무엇보다 화장이 하기 싫어 울면서 출연했던 일이 기억에 남아요.
고=「중앙일보」가 창간되기 얼마 전 이었어요. 홍 대에서 그림을 공부하고 있었는데 어느 교수님이 극동의 신인배우모집에 응모해보라고 어떻게나 끈질기게 권유하는지…. 결국 응모하여『난의 비가』에 출연했는데 그때 생각으로는 이것 한편만 하고 절대로 안 하려고 했었는데….
최=제 경우는 63년 학교를 졸업하고 줄곧 작품을 해왔으나 65년부터 국제전출 품을 비롯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어요.

<교사되는 것이 성공인줄>
서=저도 마찬가지입니다. 64년 학교를 나온 후 줄곧 습작활동을 해왔습니다만 본격적으로 작품을 낸 것은 65년부터니까요.
권=작품이야기를 하니까 저는 할말이 없을 것 같은데…. 저는 우리 나라의 전형적인 농촌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랐는데 교사가 되는 것을 크게 성공하는 것으로 보는 농촌의 분위기 때문에 65년 대학원(서울대)을 졸업한 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선생이 됐어요.
황=저는 여러분들보다는 조금 늦어요. 본래 대학에서 신문방송 학을 전공하면서 기자가 되기를 희망했는데 마침 TBC 라디오에서 성우모집이 있길 래 우선 들어가서 길을 열자고 응시, 합격됐어요. 지금은 기자도, 성우도 아닌 TV와 무대에서 일하고 있지 만 요.
-지난 7년 동안의 활동을 한마디로 집약할 수는 없겠지만 대체적인 활동상황, 특히 가장 아끼고싶은 작품한가지씩 만 들어주십시오. 덧붙여 저의 중앙「매스컴」과 유대를 맺은 일이 있으면 그것도….
고=잘됐든지, 못됐든지 간에 자기가 만든 작품은 모두 애착이 가게 마련이에요. 특히 첫 작품은 언제까지고 머리에 남지요. 그러나『갯마을』(김수용 감독)은 남들도 좋다고 하고 상도 많이 타고나니까 애착이 가요. 요즘엔 영화보다도 오히려 TV에 많이 출연하고 있는데 TBC-TV「드라마」만 5, 6편했고 지금도『사모곡』에 출연하고 있습니다.

<방송가요대상 3번 수상>
조=7년 전에 생각했던 만큼 그렇게 활발한 작품활동은 하지 못한 것 같아 스스로도 불만스럽습니다. 가장 아끼고 싶은 작품이라면 역시「데뷔」작『밀림이야기』입니다.
김=중앙일보·동양방송 주최의 방송가요대상에서 여가수상을 3회나 수상했을 뿐 아니라 지난 7년 동안 TBC 고정「멤버」로 정신없이 뛰었기 때문에 중앙·동양은 한가족 같은 생각이 들어요. 그 동안 노래는 수없이 많이 불렀지만『대머리 총각』은 제 대명사처럼 돼 있고 가장 아끼고 싶은 노래라면『빨간 선인장』이에요.
황=저도 사회생활의 출발이 동양방송이기 때문에 중앙「매스컴」을 떠난 자신은 아직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그 동안 꽤 많은 작품에 출연해 왔지만 가장 아끼고 싶은 것은 연극『시라노·드·베르주락』의「록사느」역이었어요.
최=다른 분야에서도 비슷한 현상이겠지만 특히 미술은 신인의 활동이 어려운 것 같아요.
동인전을 통해 많은 작품을 발표했는데 그중 아끼고 싶은 것은 지난번 한국「아방가르드」협회 창립 전에 출품했던 입체작품 이 에오.
서=최 형 말씀에 동감입니다. 미술도 그렇지만 음악도 국가나 사회단체들이 거의 외면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저도 TBC-TV서『바이올린과 피아노 위한「듀에트」』라는 작품을 발표한 일이 있지만 이런 기회가 좀더 많았으면 좋겠어요.

<잡음 그치지 않는 국전>
이=미술에 대한 국가적 시책이 필요하겠지요. 저도「데뷔」한 후「실험극장」에 입단하게됐는데 그「멤버」들 대부분이 중공「매스컴」에 종사하고있어 여기서 살다시피 하게 됐지요. 『제10층』이란 다소 전위적인 작품을 발표한 일이 있는데 그 작품도 이 건물과 관계가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이 몸담고 있는 문화계 각 분야의 얘기를 좀 들어볼까요. 그리고 문제점이 있다면 구체적으로….
최=또「시즌」이 다가왔지만 우리 미술계에는 무엇보다도 국전문제가 가장 심각한 것 같아요. 해마다 잡음이 끊일 날이 없으니…. 이를 일단 외면해버리면 그만이지만 화단전체의 문제니까 그럴 수도 없어요. 제 개인생각으로는 우선 예술작품에 상을 매긴다는 것부터 문제라고 봐요.
조=시단에는 한 달에 2백여 편의 시가 발표되고 있어요. 그러나 이 시들이 독자들에게 얼마만큼 읽히는가를 생각하면 회의가 앞섭니다. 하여튼 최근에는 소설이나 시 할 것 없이 눈에 띄게 늘어났기 때문에 좋은 작품이 있어도 지면이 없어서 발표 못한다는 것은 구실에 지나지 않게 되었어요. 따라서 문단은 양에 대한 목마름에서 벗어나 질을 위한 새로운 경쟁시대에 돌입했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순수음악엔 청중 없고>
서=시는 독자가 있든, 없든 지면을 통해 발표될 수 있는 것이지만 창작음악은 연주가 병행돼야하는데 문제가 있어요. 요즘 순수음악에는 통 청중이 없어요. 60년대 전반까지 만해도 고등학생 청중들이 좀 있었는데 이들을 김상희 씨가 뺏어갔어요(일동 웃음). 이 청중들을 도로 찾는 것이 문제인데 순수음악은 이해하기 어렵고 고답적이라고 말하고 있고 또 대중음악은 예술성이 약한 반면 상업성을 너무 앞세우기 때문에 비난을 받고 있어요.
이 두 음악 하는 사람들이 서로 왕래하면서 대중음악은 좀 건전한 방향으로, 클래식은 상아탑만 고수할 것이 아니라 좀 대중을 생각하는 방향을 모색해야할 것입니다.
대중이 없는 예술은 존재할 수 없으니까요.
김=제가 이 자리에 잘 못 나온 것 같군요(웃음). 우리는 경쟁 사회 속에 살고 있어요. 치열하고 뜨거운 경쟁 속에서 일하다보면 건전치 못한 방향으로도 휩쓸리게 되나봐요. 하여튼 각성해야할 문제가 많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남들이「뽕짝」이라고 말하지만「뽕짝」도 하나의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실적 없는 배우에도 상>
이=연극의 경우는 좋은 연극을 하면 관객이 많고 좋지 않은 연극을 하면 사람이 안 들어요(웃음). 꽃도 야생해서는 도저히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예술도 온상이 있어야하고 비료도 줘야 합니다. 그래서 연극에 대한 사회적인 뒷받침이 좀 건전했으면 해요. 예를 들면 각종 연극상만 해도 그래요. 취지자체는 연극에 대한 깊은 이해와 배려로 생긴 것이지만 몇 해 전 제가 어떤 연극 상을 탔는데 심사위원 12명중 내 작품을 본 사람은 단 1명뿐이었대요. 또 어느 여배우는 그 해에 1편의 연극에도 출연하지 않았는데 상을 타기도 했어요.
그런 식의 연극 상이라면 차라리 없는 쪽이 연극계의 질서를 잡는데 좋다는 얘깁니다.
고=요즘은 영화계도 막심한 불황에 허덕이고 있어요. 그러나 영화인들은 이 불황의 요인을 남에게서 찾으려고 해요. 감독은 배우가 없다고 말하고 배우는 좋은 감독이 없다고 하고 또 제작자는「시나리오」가 없다고 말하고 있어요. 우리 나라에는 이미「스타·시스템」이 무너졌으며 각 영화사들은 다시 신인배우를 찾고있는데 좀 양심 껏 뽑아 양심 껏 키워줬으면 해요.
미리 정해놓고 형식적인 시험을 치르는 것이 대부분 인가 봐요. 또 이러한 신인들은 첫 작품에서 빛을 보지 못하면 만년신인으로 전락해버려요.
황=TV「드라마」의 경우는「안방극장」이라고 해서 할아버지부터 손자까지 같이 보기 때문에 그 영향력이랄까 부작용이 다른 분야보다 큰 것 같아요. 좀 건전하고 교육적인 것을 많이 해야할텐데 요즘은 갑자기 육체적·정신적「불구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는「드라마」가 많아져 아이들에게까지 병신 짓이 유행되고 있다고 해요. 정말 안타까운 일이에요.
김=어린애들 얘기가 나왔으니 말이지 서너 살 먹은 아이들이『참사랑이란 이렇게…』하고 목청을 돋우어 노래부를 때는 민망해요. 그것들이 무얼 안다고…(웃음). 아무튼 어린이 교육에 미치는 영향이 정말 큰 것 같아요.
고=영화는 TV·가요 등과 달라「연소자 입장불가」라든가 해서 관객 층을 제한하고 있지 않아요.
-모든 문제의 행방이 교육으로 가는 것 같군요(웃음).


권=그렇습니다. 요즘 세계적 추세인 성인사회의 퇴폐풍조가 청소년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어요. 이러한 책임은 첫째 부모들의 책임, 둘째 사회어른들의 책임, 세 째「매스·미디어」의 책임이라고 할 수 있어요. 우선 부모들과 교육자들이 내 자식·내 제자만은 올 바르게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면 좀 나아질 수 있을 것입니다. 또 국가정책 적인 문제지만 교직자의 질의 저하도 커다란 문제예요.
-그러면 신문·방송 또는 그밖에 요구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최=신문·방송을 비롯한 문화계 각 분야에 윤리위원 같은 게 있어서 자율적 규제를 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이 규제가 적극적인 창작의욕을 저지시켜서는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문화는 실험의 연속인데 적극적인 실험이 저지될 때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인지가 문제입니다.
서=『참사랑』이라는 노래를 부르지 말자 거나 너무 저속한 영화를 보지 말자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매스컴」특히 TV라고 생각해요. 대중에 영합하려는 광고주나 또는 기타 외부의 압력을 최대한으로 배제하고 주체성 있는「프로」제작으로 건전한 방향을 유도해야 할 줄 압니다.
고=요즘은 영화를「타이틀」보고, 배우보고 가는 시대는 지났어요. 신문에서도 외화에 대해서만 관대하지 말고 방화육성을 위해 방화 평도 많이 다루어주었으면 해요.

<막중한 매스·콤 사명>
이=신문의 문화면에 문학관계는 월평으로 다루어지고 있어요. 연극에 관해서는 공연 때마다의 소개도 좋지만 총괄적으로 작품에 대한 평가가 내려져야 해요. 이러한 평가를 통해 신문이 연극계의 방향을 잡아나가는 것이지요.
최=「매스컴」이 젊은 세대들에 대한 배려를 좀더 해줘야겠다고 생각해요. 40대 이상의 중진들은 문화계 각 분야와의 횡정인 연락이 많은데 30대 이하에서는 이러한 것이 단절돼 있어요. 오늘 이 자리와 같은 횡적인 유대를 맺어 주는 것도 신문의 커다란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권=신문의 역할이 얼마나 큰 것인가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요즘 신문은 여론형성으로 끝나버리는 것 같아요. 여론형성을 했으면 책임을 지고 바르게 이끌어줘야 할 것입니다. 중앙일보는 특히「라디오」와 TV를 겸한「매스컴·센터」니까 역할과 사명이 더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많이 기대해 보겠습니다.

<참석자> (가나다순)
고은아 (26·영화배우)
권오길 (32·경기고 교사)
김상희 (29·가수)
서우석 (32·작곡가·서울음대 전강)
이재현 (32·극작가)
조상기 (34·시인)
최명영 (3l·화가·홍대 전강)
황정아 (27·「탤런트」겸 연극배우)
날 짜=9윌18일 하오 3시
장 소=본사 회의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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