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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원칙」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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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세상에서 가장 긴 문장을 쓴 사람은「빅토르·위고」였다. 그는 <레·미제라블>에서 한 「센텐스」가 8백23어나 되는 문장을 썼다. 그는 한 문장을 3 페이지가 넘도록 구독점 하나 없이 써 내려간 일이 있었던 것이다. 대체로 문장이 길면 해독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는 반드시 그렇지도 않은 것이다.
해석하기로 이름난 「프루스트」나「조이스」또는 「포크너」의 문장도 상당히 긴 편이다. 그러나 난해한 것과 문장의 길이와는 직접 관계가 없다.
한 문장 안에서 과거와 현재, 1인칭과 3인칭이 뒤바뀌는 등 시점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위고」는 또 가장 짧은 문장을 쓴 사람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는 자기 책<레·미제라블>의 판매성적이 몹시 궁금해져서 돌연 뉴요크에 있는 출판사에『?』라고 만 써 보냈다. 곧 「뉴요크」에서 답장이 왔다. 거기에는 그저『!』라고 부호만 적혀 있었다.
「위고」의 『?』는 책이 잘 팔리느냐는 물음이었다. 그리고『!』라는 출판사 쪽 회신은 물론『엄청나게 잘 팔리고있다』는 듯이었다.
아무리 문장이 길거나 짧거나 사실은 조금도 문제되지 않는다. 까다로운 문장도 마찬가지다. 남들은 전혀 알아들 을 수 없는 젖먹이 어린이의 말을 어머니만은 신통하게 알아듣는다.
그러나 아무리 분명하고 간단한 말이라도 못 알아듣는 경우가 많다. 또는 풀이가 엇갈리는 경우도 많다.
말의 뜻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고, 말이 주는 「이미지」나 말에 따르는 발상법이 다르기 때문일 수도 있다. 또 아무리 말이 통하지 않더라도 젖먹이와 엄마의 사이처럼 마음이 통하면 이해는 조금도 힘들지 않을 것. 『?』와『!』의 교환은「위고」와 출판사 사이가 아니면 전혀 통하지 않는 암호로 끝나게 마련이다.
이번 남북 적십자서울회담을 마치고 나서 무엇보다도 절실하게 느껴지는 것은 말에 관한 이런 괴리감이다.
지난14일 남북적 대표들은 합의문서에 서명했다. 그 제l항에 보면『자유로운 원칙』, 『민주주의의 원칙』이라는 말들이 들어있다.
이것처럼 보편적이고, 우리가 흔히 쓰는 말들도 없다. 그러나 바로 이 말들 때문에 앞으로 상당한 문제가 야기되지 않을까 우려되기도 한다.
말들이 빗나간 것은 아니다. 같은 말이면서도 말이 반영하고있는 원칙들이 빗나갈 가능성이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발상법도 어긋날 수 있을 것이다.
오늘 외신을 보면 북한의「노동신문」은 남한의 신문들에 대해 공격의 화살을 퍼붓고 있다한다. 단순한 오해에서 생긴 얘기만은 아닌 듯하다.
신문의 자세가 이쪽과 그쪽과는 엄청나게 다르다. 그쪽 눈으로 보면 이쪽 신문들이 너무「조직」이 안되어 있는 것이다. 혹은 그쪽의 비위에 맞도록 잘「조직」되기를 바라는 복선이 깔린 공격인지도 모른다. 이것은 단순히 말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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