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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 풀고…서울 나들이|북적 대표들 입경 4일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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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서울에 머무른지 4일째를 맞은 북적 대표단 일행은 15일 상오 10시20분 예정보다 늦게 서울 시내 관광에 나서 우리 생활을 직접 살피고 느끼는 기회를 가졌다. 합의 문서가 극적으로 서명된 후의 탓인지, 이날의 차 중 관광에서 북적 대표단 일행은 전날에 비해 한결 긴장의 빛을 풀고 곳곳에 「카메라」를 맞췄다. 이들은 남산 팔각정에 올라 서울 시내를 한눈으로 내려다보며 맑은 가을 날씨의 서울을 구경했으며 지하철 공사장을 둘러봤다.

<서울 시내 관광>
북적 대표·자문위원 등 54명은 15일 상오 10시30분쯤 예정보다 늦게 숙소인 「타워·호텔」을 출발, 남산과 여의도 및 영등포 등 남 서울이 바라보이는 팔각정 휴게소에 마련된 15개의 「비치·파라솔」밑에 앉아 서울 시가지를 내려다 봤다.
이범석 수석 대표는 북적의 김 단장, 윤기복 자문위원과 자리를 같이하고 용산 쪽과 여의도 쪽에 솟은 고층 건물을 가리키며 시민들이 사는 아파트라고 설명했다.

<“뭐라고 말해야지 무표정이라 쓴다”|윤기복이 조크>
이때 우리측 기자들이 김 단장에게 『서울의 경치가 어떠냐고 물었으나 김 단장은 엷은 미소만 지을 뿐 대답을 하지 않자 옆자리에 있던 윤기복 자문위원이 김 단장을 향해 웃으며『뭐라고 한 말씀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무표정하다고 보도할게 아니오』라고 농담, 주위에서 웃음이 나왔다.

<여기서 사진 찍으면 복을 받는 모양이지>
잠시 뒤 이수석 대표가 윤기복에게 『서울의 젊은이들은 결혼을 하면 꼭 여기에 와서 사진을 찍고 신혼 여행을 떠나는 습관이 있다』고 말하자 윤은 『여기서 사진을 찍으면 복을 받는 모양이지』라고 부드럽게 받았다.
윤기복은 곧이어 『북조선에서는 고고학자·역사학자 등이 건축 공학을 배워 건설에 나서고 있다』고 말하자 우리측 정희경 대표는 『두 가지 부문을 한사람이 전공하는 것보다는 한가지 부문을 치밀하게 공부한 전문가들이 서로 협동하는 것이 더 좋지 않겠느냐』고 응수했다.
다른 자리에서는 우리측 안내양들이 북적 기자와 수행원들에게 남산에 우뚝 솟은 「텔레비젼」 송신탑을 가리키며 『저것이 송신탑입니다. 저속에는 「엘리베이터」가 장치되어 있어 서울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습니다』라고 설명하자 북한 기자 김유가 『「도쿄·타워」가 더 낫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안내양이 이 말을 받아 『제국주의자라고 일본을 욕하면서 왜 일본 것과 비교하느냐』고 말하자 김은 자리를 슬그머니 피했다.
또 북적 자문위원 강장수는 팔각정에서 송건호 자문위원에게 서울 모습을 설명해 달라고 요청, 송 위원이 비원·창덕궁 등 북한 대표가 전날 둘러본 고궁과 3·1 「빌딩」, 서울 주위의 북악·도봉산 등을 설명해주었다.
설명을 다 듣고 난 강은 서울을 처음 방문하지만 아름다운 도시라고 말했으나 도시에 나무가 없어 도시의 면모를 완비하지 못했다고 했다.

<오늘 드라이브·코스>
15일 북적 대표단 일행의 관광 코스는 다음과 같다.
▲상오 (10시20분∼11시50분)=「타워·호텔」∼남산 팔각정∼어린이회관∼남대문∼중앙청 앞∼시청 앞∼지하철∼KAL 「빌딩」
▲하오 (2시20분∼3시5분)=KAL「빌딩」∼남대문∼도오뀨·호텔∼남산 관광 도로∼한남동∼강변 3로∼동부이촌동 아파트 앞∼한강대교∼5·16 광장∼영등포구청 앞∼한국 냉장 옆∼동작동 국립 묘지 앞∼제3한강교∼한남동∼「타워·호텔」

<“평양 부근 공동 묘지 그대로”>KAL 호텔 오찬
이날 상오 지하철 관광을 마친 북적 대표단 일행은 낮 11시50분 KAL 「빌딩」에 도착, 26층 장미 「홀」 에서 서울 시내 번화가를 내려다보며 환담을 나눈 뒤 12시35분부터 한적 자문위원단이 주최하는 중국 사천 요리로 오찬을 들었다.
이 자리에 나온 KAL부사장 조중건씨 (40)가 북적 김태희 단장에게 『피곤할 텐데 다음부터는 비행기로 서울∼평양을 오가는게 어떠냐? 40분이면 충분할 텐데 KAL에서 전세 비행기를 내놓겠다』고 제의하자, 김태희 단장은 『분열된 민족의 적십자인은 피로를 모른다』면서 『모든 인민이 모든 수단을 다 이용해서 서로 왔다갔다해야지요』라고 말해 KAL측의 제의에 대해 확실한 답변을 피했다.

<“추석 풍습 다 같죠”>
조 부사장은 또 윤기복 자문위원에게 『앞으로는 우리 나라 비행기가 평양·신의주를 거쳐 「모스크바」까지 가야겠다』고 말하자, 윤은 『그래야죠』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북적 이청일 대표는 『추석도 가까워오는데 평양 부근의 묘소는 잘 보존되어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 『시외에 옛날 그대로 공동 묘지가 남아 있다』고 말하고 『추석을 지내는 조선 풍습이야 어디로 가겠느냐』고 답변했다.

<지하철 공사장 시찰|“서울엔 차 많아 필요한 것 같다”>지하철 공사장
팔각정 관광을 마친 일행은 서울 시청 앞에 왔다가 중앙청 앞을 한바퀴 돌아 상오 11시15분에 시청 앞 지하철 공사장에 도착했다.
김명년 서울시 지하철 건설 본부장의 안내로 지하철 공사 현장에 들어서 노란 「헬멧」과 작업복을 나누어 받고 구경을 시작했으나 김태희는 『헬멧이 맞지 않는다』고 사양했다.
일행은 약 15분 동안 건설 상황 브리핑을 아무 말 없이 들었다.

<한동안 카메라 촬영>
노선망이 그려진 건설 계획표 앞에 이르자 지금까지 설명만 듣던 북한 기자들은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북한 수행원 이명호는 『서울의 지하철 공사가 진행된다는 얘기는 들었다. 서울은 자동차나 사람의 왕래가 많아 복잡한 곳은 지하철이 필요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브리핑이 끝나고 지하층으로 내려가는 동안 윤기복과 궁상호는 서로 말을 나누어 『한번 둘러보니 역시 노동자의 힘이 위대함을 알겠다』고 궁이 말하자 윤도 『역시 노동자가 모든 것을 창조하는 주역들이지…』라고 대답, 예의 공산주의 이론을 폈다.

<“수령 운운은 습관”-윤이 변명|“신문에 불만”“그게 언론 자유”>조절위장 리셉션
남북 조절위 공동 위원장인 이후락 중앙 정보 부장 초청으로 영빈관에서 베푼 「리셉션」과 만찬은 14일 밤 7시부터 1시간20분 동안 제2차 남북 적십자 본 회담 합의서가 서명된 직후여서 인지 시종 화기 애애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리셉션」이 열려진 영빈관 1∼12호실은 「샹들리에」 불빛이 휘황한 70여평의 방 한 가운데 적십자를 상징하는 십자형 「메인·테이블」이 놓였고 한 옆에는 회담 성공을 상징하는 뜻으로 입을 맞추고 있는 두 마리 「잉꼬」의 모양이 얼음으로 조각되어 있었다.
이날 초대객은 남북 적십자 대표단을 비롯한 각계 인사 3백여명으로 이 위원장과 이범석 한적 수석 대표 김태희 북적 수석 대표 등은 내객을 일일이 맞았다.
신민당 사무 총장 김형일 의원이 이 위원장에게 윤을 1년 후배라고 소개하자 윤은 이 위원장에게 『이해와 신뢰 속에서 서로 오해를 풀어야지요』라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어제 보니 두 분의 공격이 제일 심하더라』고 곁에 서 있는 윤기복·김병식에게 은근히 핀잔을 주었다.
이 말에 북적 김 단장은 『공화·신민 양당이 적십자 회담에 협조해 주어 감사하다』고 슬쩍 말머리를 돌렸다.
그러자 곁에 다가선 정해영 국회 부의장이 『어제는 정치 선전이 너무 심해 실망했다』 고 화제를 다시 본 회담으로 끌어들였다.
그러자 북적 김 단장은 『정치냐, 비정치냐를 논하기 전에 같은 민족의 입장에서 적십자 정신을 발휘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이 위원장은 화제가 13일의 본 회담 장소에서의 정치 발언으로 옮겨가자 윤기복 북적 자문위원에게 『주체 사상…운운했지만 그런 이야기는 안 해도 주체 정신이 없는 사람이 누가 있느냐. 우리도 그런 것 다 갖고 있다. 주체가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않는다』고 점잖게 일침.
그러자 윤은 그저 『예, 예…』 대답만 했지만 북적 김 단장은 무슨 이야기인줄 못 알아듣고 다시 이야기를 꺼냈다.
이 위원장은 『당연한 이야기를 되풀이하면 오해를 산다. 상호간에 이해를 촉구하는 이 마당에서 「김일성 수상 운운」하는 것은 강요하는 결과가 되는 것이 아닌가. 우리가 언제 위대한 지도자 박정희 대통령이라고 말한 적이 있는가』고 따끔하게 말했다. 이 말에 북적 김 단장과 자문위원 윤은 약간 당황한 듯 안절부절 한 모습.
북적 김 단장은 『그건 오햅니다』라고 했고 윤은 『그런 말이 습관이 되어 있어서 인용했을 뿐입니다』 라고 말꼬리를 흐렸다.

<“윤 동무”에 폭소도>
김형일 신민당 사무 총장이 약간 어색해진 분위기를 돌리려는 듯 『윤 동무, 술 한잔합시다』면서 술잔을 권하자 옆에 있던 장경순 부의장이 『동무요, 동문이요』라고 말해 폭소가 터지기도 했다.
이 위원장은 신민당의 김재광·박병배 의원이 들어서자 북적 대표단 일행에게 『이분들이 야당인데 정부를 마구 때려 골치가 아프다』고 말하자 박 의원이 『때리는 것이 내 영업입니다』 라고 말해 또 한번 웃음이 쏟아졌다.
이 위원장은 또 북적 대표단 일행이 우리 신문 태도에 불만을 터뜨리자 『그 사람들은 정부를 까는 사람들이니까 우린들 어떻게 할 수 없어요. 여러분들이 우리 신문에 불만이 있다는 그 자체가 우리에게 언론 자유가 있다는 반증이 아닙니까』고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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