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십자대표단의 입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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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8월30일부터 평양에서 역사적인 남북적십자회의 첫 본회담이 열린다. 만 1년을 두고 지지부진하게 지속되어오던 예비회담이 결실되어 마침내 본회담개최를 보게된 것이다.
이 회담을 갖기 위해서 한적측은 대표 이하 명이 공식으로 평양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우리는 분단 년만에 남북간에 공식적인 왕래의 길이 틔어 처음으로 우리대표단이 휴전선을 넘어 북한에 들어가게 된 것을 참으로 감개무량하게 생각한다.
적십자회담을 위한 남북간의 공식왕래는 국토를 분단시키고 있는 휴전선장벽에 지극히 철소한 소통구가 하나 뚫리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앞으로 우리는 이 소통구의 폭이 넓어져 남북으로 갈라져 살고있는 이산가족들이,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는 5천만동포가 자유 왕래할 수 있는 날이 하루속히 오기를 학수고대한다. 그렇지만 이런 감상적 기대와는 달리, 남북분단대립의 사적현실은 매우 준엄한 것이다. 따라서 이 제약을 뚫고 적십자회담이 결실되어 이산가족이 서로 만나게 되기까지는 아직도 많은 시일의 경과가 필요하리라는 것을 솔직히 인정해야한다.
본회담의 형식·절차·내용의 방향 등을 결정하는 예비회담조차 1년이나 지속했던 사실을 에누리없이 직시한다면, 본회담이 아무 탈없이 순조로이 진행될 셈치고라도 목적대로 성사하기 위해서는 몇 달 흑은 몇 해가 걸릴 것인가 누구도 감히 예측치 못할 것이다. 앞으로 본회담을 순조롭게 진행시키고 결실시키기 위해서는 회담쌍방이 지난 한해 보였던 것보다 더 한 층 인내 깊은 노력을 지속하지 않으면 안될 줄로 안다.
우리는 적십자사대표들이 보여줄 조그마한 성의가 보다 더 큰 성의를 자아내고 조그마한 신뢰가 보다 더 큰 신뢰를 불러 일으켜 나가게 함으로써 난관을 하나 하나 착실하게 극복해주기를 원한다. 이런 종류의 회담은 동족의식과 인도정신에 기초를 둔 사랑의 맥박없이는 좀처럼 성사하기 어려운 것이다. 우리는 쌍방대표들이 최선을 다해 거족적인 숙원풀이이자 세계평화를 굳히는데 큰 기여를 할 수 있는 이 거창한 사업을 반드시 결실시켜주기를 용심으로 염원한다.
무릇 서로 적대하는 세력이 대화를 가지고 숨막힌 대립상태에서 돌파구를 찾고 긴강을 풀어 대립완화의 실마리를 잡는다는 것은 조금도 이례적인 것이 아니다. 과거 인류가 치렀던 수 많은 전쟁이 교전쌍방의 대화를 통해서 휴전이나 강화에의 길을 터놓았다는 것은 한국전쟁의 휴전경위를 목격한 우리국민에게는 ?단스러운 설명조차 필요치 않은 일이다
이처럼 대화가 숨막히는 대립상태에서 돌파구를 찾기 위한 통상적 수단으로 간주되어야 하는 것이라면, 휴전동결상황 근 20년만에 인도문제해결을 위한 대화가 간신히 시작될 수 있었다는 것은 오히려 만시지탄이 없지 않다. 우리 국민은 대립이 자아내는 희생과 고통을 덜기 위한 적십자회담개최가 우리민족의 발명이 아님은 물론, 인류사상 첫 경험이 결코 아니라는 점을 잘 인식하고 일절 흥분을 억제하고 회담의 진행을 관망하고 감시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유도시켜 나가야한다. 대화는 결코 대립의 해소를 의미치 않는다. 하물며 분단·동결상황하 남북이 무력충돌의 가능성을 남겨둔 채, 일시 평화공존을 모색하고 있는 조건하에서는 남북간에 이념·사상·제도의 대립은 앞으로 첨예화하면 첨예화했지 결코 둔화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 국민은 이점을 명확히 인식하고 마음이 들떠 대화가 곧장 대립의 해소를 의미하는 것 같은 착각에 사로잡혀 정신무장을 스스로 해제하는 결과를 가져옴으로써 공산당에 어부지리를 주지 않도록 해야한다.
언제 끝날는지도 모를, 길고도 긴 대화의 서막이 열리기는 하였지만, 이 회담이 내외정세의 악화로 말미암아 눌 도전을 받게된다는 것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공산주의자들이 적십자회담을 악용하여 적화통일의 목적을 추구키 위한 「평화공세」의 일환으로 애질·전락시키는 것을 깊이 경계하면서 끝없는 험로를 조심스럽게 헤쳐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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