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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서 날개 편 황새 "홍명보 프로감독 되면 내가 도움 줄 수 있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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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황선홍 포항 스틸러스 감독이 1일 울산 현대와의 K리그 클래식 최종전에서 후반 50분 터진 수비수 김원일의 극적인 결승골에 힘입어 2013년 챔피언에 등극한 뒤 우승컵을 치켜들고 기뻐하고 있다. [울산=이호형 기자]

포항 스틸러스가 극적으로 2013년 프로축구 챔피언이 된 다음날인 2일 포항에서 황선홍(45) 감독을 만났다. 외국인 선수 하나 없이 FA컵에 이어 정규리그까지 정상을 밟은 포항. 올해 한국 프로축구는 포항으로 시작해 포항으로 끝났고, 그 중심에 ‘영일만 황새’가 있었다. 축구계에는 ‘우승은 어제 내린 눈’이라는 말이 있다. 눈이 올 때는 좋지만, 하루만 지나면 새로운 고민이 시작된다는 의미다. 기분이 어떠냐고 묻자 그는 “붕 떠 있는 느낌이라 실감이 안 난다”고 했다. 그의 마음속엔 아직도 눈이 내리는 모양이다.

 그의 별명은 ‘황새’다. 성(姓)씨에 기품 있어 보이는 이미지를 더해 팬들이 만들었다. 그러나 부산의 지휘봉을 잡았던 2008년 그는 혹독하게 선수를 몰아붙이는 ‘호랑이’로 통했다. 2011년 황 감독이 포항으로 부임하자 적지 않은 선수들이 “걱정된다”고 울상을 지었다.

 그 이야기를 하자 황 감독은 “부산 시절 6연패를 한 적이 있다. 바닷물에 뛰어들고 싶었다. 왜 안 될까. 무엇이 문제일까. 그 고민을 3년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죽기살기로 팀을 만들어 보려고 했다. (김)응진, (이)정호, (한)상운, (박)희도 등과 정말 눈물겹게 훈련했다. 컵대회라도 우승해서 고생한 선수들에게 성취감을 주고 싶었는데 못 했다. 주위에서는 그 시절을 실패라고 말하지만 내게는 중요한 과정이었다. 부산에서는 많이 흥분했는데 포항에서는 일부러 벤치에 앉아서 경기를 보려고 애썼다”고 말했다.

1994년 1월 미국 월드컵을 대비한 대표팀 제주 전지훈련 때 함께 파이팅을 외치는 황선홍(왼쪽)과 홍명보. [중앙포토]

 차분해 보이지만 황선홍은 피가 뜨거운 승부사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조부상을 당했지만 눈물을 삼키며 팀 훈련을 지킨 독한 사내다. 하지만 부산 시절 경험을 통해 그는 냉정해지는 법을 배웠다. 황 감독은 “팀 정신을 깨지 않으면 화내지 않는다. 경기에서 큰 실수를 하면 일부러 지적하지 않는다. 대신 스스로 생각하는지 아닌지를 지켜본다”며 “그래야 틀을 깨고 성장한다”고 했다.

 욕심도 버리고, 기본으로 돌아갔다. 황 감독은 “눈앞의 결과부터 생각하니 힘들었다. 올해는 과정에 충실했다”며 “우선 철학을 공유하고 내가 원하는 축구를 선수단과 소통했다. 큰 성과였다”고 평가했다.

 팬들은 그를 ‘황선대원군’이라고 부른다.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처럼 외국인을 안 쓰고도 값진 성과를 거둬서다. 그는 이 별명을 몹시 곤란해한다. 황 감독은 “결과론적으로 그렇게 됐다. 외국인 선수가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당연히 필요하다”고 말했다.

 향후 목표에 대해 그는 “클럽 감독으로는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우승이다. 그리고 FIFA(국제축구연맹) 클럽월드컵에 나가 바이에른 뮌헨(독일), 바르셀로나(스페인) 같은 강팀과 겨루고 싶다”고 했다. 말은 아끼지만 황선대원군은 외국인 선수를 영입하는 ‘개항’을 구상 중이다.

 그의 인생은 홍명보와 떼놓고 설명할 수 없다. 2006년 독일 월드컵 때 아드보카트 감독을 보필했던 홍명보 코치의 자리는 원래 황선홍이 내정됐던 자리다. 반면 황 감독은 이회택·허정무·이장수 등 국내 감독을 모시며 지도자 생활을 했다. 황 감독은 “솔직히 외국인 감독 밑에서 해보고 싶었다. 좋은 경험이 될 수 있다”고 했다.

 홍 감독과 라이벌이라는 말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함께 축구 발전을 위해 힘쓰고 있다. 명보가 프로에 오면 내가 도움을 줄 것이고, 내가 대표팀을 이끌 기회가 생긴다면 조언을 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롤 모델은 이회택(67) 감독이다. 황 감독은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때 무명이었던 명보와 나를 발탁한 분이다. 그 덕에 내가 있다. 감독님처럼 한국 축구의 10년을 이끌 수 있는 공격수를 한 명이라도 발굴하는 게 나의 꿈”이라고 했다.

포항=김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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