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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위치 한국' 묘수 찾기 나선 정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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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정부가 우리 측 방공식별구역(KADIZ)을 확대해 이어도를 포함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고 후속 대책 마련에 나섰다. 1일 김장수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김관진 국방부 장관, 윤병세 외교부 장관 등이 참여한 가운데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안보정책조정회의에선 중국의 방공식별구역(CADIZ) 선포 대책과 함께 이 문제가 논의됐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이어도를 포함해 방공식별구역을 확대하기로 방향을 정했다”며 “마라도와 홍도 등을 포함할 것인지 등 세부 각론 부분은 좀 더 검토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그러나 방공식별구역에 이어도를 포함시키기로 했지만 이를 공식 발표하진 않았다.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방공식별구역 확대와 필리핀 파병 문제가 논의됐다”면서도 회의 개최 외에 자세한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주무부처인 국방부와 외교부도 마찬가지였다. 공식적으로는 오는 3일 열리는 새누리당과의 당정협의에서 방공식별구역 확대 논의안을 최종 조율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일방적으로 방공식별구역 확장을 선포할 경우 미·일과의 마찰이 생길 것을 우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중국처럼 일방적으로 방공식별구역 확장을 선포할 경우 여러 문제가 야기될 수 있기에 검토가 필요하다”며 “여론에 쫓겨 급하게 하기보다는 문제가 없도록 꼼꼼히 따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방공식별구역 확대를 확정할 3일 당정회의 전에 미·중·일 등 주변국과의 사전 대화를 통해 마찰을 최소화한다는 방침이다.

 이와 함께 정부는 방공식별구역 문제로 한층 복잡해질 동북아 정세 관리를 위해 미·중·일과 각각 차관급 전략대화를 추진하기로 했다. 우선 김규현 외교부 1차관은 이달 중순께 미국을 찾아 윌리엄 번스 국무부 부장관을 만난다. 중국 장예쑤이(張業遂) 외교부 상무 부부장은 이달 안에 방한해 차관급 전략대화를 할 예정이다. 일본과는 연내 개최는 사실상 어렵지만 사이키 아키타가(齋木昭隆) 외무성 사무차관과의 내년 초 전략대화를 목표로 한·일 실무진 간에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정부는 고위급 전략대화를 통해 ▶방공식별구역 논란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추진 ▶미·일 동맹 강화 등 현안에 대한 해법을 적극적으로 모색한다는 방침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1일 “지금 동북아 판세는 단기간에 결정되는 오목판이 아니라 서로 몇 수 앞을 바라봐야 하는 바둑판”이라며 “참여하는 플레이어의 한 수 한 수에 대해 여러 가지 가능성을 해석해야 하는 복잡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29일 정부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참여 시사도 미·중, 중·일 갈등의 흐름 속에서 한국의 고민이 반영된 전략적 선택이었다는 설명이다.

 한국의 움직임과 맞물려 주목되는 부분은 이번 주로 예정된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의 한·중·일 3국 순방이다. 바이든 부통령은 2일부터 4일까지 일본을 방문한 뒤 중국, 한국 순으로 순방을 진행한다. 한국에는 5~6일 이틀간 머물며 청와대를 예방하고 정홍원 국무총리, 윤병세 장관 등을 만날 계획이다.

 최근 급속도로 냉각된 동북아 정세 속에서 바이든 부통령이 미·일 사이 조율된 중재안을 들고 중국을 방문할 경우 방공식별구역 문제의 실마리가 풀릴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미·일이 CADIZ 변경을 요구하면서 집단적 자위권을 강화하는 등 강경책을 들고 나올 경우 중국과의 마찰이 오히려 가속화될 가능성도 있다.

 어느 쪽이든 정부는 바이든 부통령의 순방 결과를 바탕으로 미·중과의 전략대화를 통해 방공식별구역 문제와 집단적 자위권 문제, 한·일관계 개선 등 역내 복잡한 방정식의 해법을 모색할 방침이다. 외교부 핵심 관계자는 “바이든 부통령이 한국을 가장 마지막에 방문하기 때문에 민감한 이슈에 대한 중·일의 정리된 입장을 들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한편 중국의 방공식별구역과 관련, 국토교통부는 중국의 비행계획서 제출 요구에 응하지 말라는 지침을 지난주 국내 항공사에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 군 당국은 이달 말 합동참모회의를 통해 이지스함(7600t급)을 현재 3척에서 6척으로 늘리는 방안을 확정할 방침이다. 군은 이를 통해 전략기동함대인 ‘독도-이어도 함대’ 구성에 속도를 낼 계획이다.

정원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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