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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를 튼 「대화 1년」 팽팽한 신경전… 「남북의 입」을 줍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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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남북적십자회담은 3백 65일을 끈 가파른 대화의 고빗길을 넘어 본회담의 문턱에 다다랐다. 이어질 듯 끊기고, 끊길 듯 이어지던 끈질긴 대화는 마침내 26년 동안 철옹벽으로 굳은 남북 장벽을 뚫고 서울∼평양 왕래의 길을 터놓은 것이다. 김구 선생의 남북협상을 비롯, 남북 요인 석방, 포로 송환 교섭, 군사 정전 회담 등 4반세기에 걸친 남북대화는 입씨름과 결렬의 연속이었다. 그러던 것이 국제 해빙기류에 때맞춘 작년 8월 12일, 한적이 1천만 이산 가족 찾기 적십자 회담을 제의 한지 1년만에 본회담을 평양(8월 30일)과 서울(9월 13일)에서 번갈아 열기로 하고 그 진행 절차에 합의한 것이다. 대화가 튼 대화. 1년의 「입」을 줍는다.
힘의 대결만이 팽팽한 군사 분계 선상에 4사람의 민간인이 마주섰다. 작년 8월 20일-. 남쪽의 두 파견원과 북쪽의 두 적십자 연락원이 회담 개시 합의 문서를 전하려는 첫 대화의 입이 열렸다.
▲남=『안녕하십니까.』
▲북=『안녕하십니까.』
다 같은 겨레의 말이었지만 떨리기까지 했다. 북에서 온 연락원의 굳은 표정 속에 더욱 단절감이 솟았다.
그러나 5차에 걸친 파견원의 문서 교환 접촉은 예비 회담에의 징검다리를 놔주고 고향에 초대한다는 다정한 대화로 끝났다.
▲북=『머루·다래 무르익는 산수갑산이 내 고향이오. 그곳에 초대하겠습니다.』
▲남=『서울에 오세요. 32층 「스카이·라운지」에 초대하겠소.』
그러나 처음으로 틘 대화엔 긴장이 서렸다.
▲남=『이번 장마에 큰 피해는 없읍니까?』
▲북=『우린 관개 수리 시설이 잘돼서-.』
말씨름에서 지지 않으려는 안간힘은 숨길 수 없었다.
▲북=『30년만의 더위라는데 고생이 많겠쉬다.』
▲남=『우린 「에어컨」이 잘 돼 있어서-.』
파견원 접촉이 있은 지 한달만에 제1차 예비 회담이 9월 20일부터 시작됐다,
휴전 협정 무기 반입 조항이 깨어진 이래 「망각의 방」으로 전락했던 중립국 감독 위원회 회의실은 갑자기 세계 「뉴스」의 초점이 됐다. 쌍방5명의 대모가 군사분계선이 흐르는 장방형 탁자를 앞에 놓고 「대화의 대결」을 시작했다. 자기소개가 끝나자 역사적인 회담의 첫 발언권을 잡으려는 신경전이 시작됐다.
▲남=『가족 찾기 운동에 즈음하여 인사말을 하겠읍니다.』
▲북=『원고가 준비됐으니 우리가 먼저 하겠소』라고 말하는 순간.
▲남=『북한적십자회 대표단 여러분!』 잽싸게 선수를 쳤다. 멋적은 듯 기선을 놓친 북적 단장 김태희는 『뭐 덤빌 것 있소』라고 한마디 뱉고 뒤로 물러섰다. 첫 시련은 호칭 문제였다.
▲북=『북적이 뭐요.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 적십자회 중앙위원회라 불러 주오.』
▲남=『너무 길어서 외울 수조차 없소. 대한적십자사, 얼마나 좋소. 그대로 불러 보시오.』
3차 예비 회담에서 서울과 평양에서 본회담을 열기로 합의, 「스타트」는 쾌조였으나 각기 수도 자랑으로 또 한판 붙었다.
▲남=『인구 5백만의 국제도시요, 5천만 민족의 구심점인 서울에서 본회담을 엽시다.』
▲북=『구심점이란 말은 돼먹지 않았소. 고구려 때부터 수도인 평양에서 본회담을 아니 열겠소?』
2차 예비 회담 열기에 앞서 판문점에 상설 연락 사무소가 열리고 남·북 직통전화가 개통됐다.
그러나 본회담 개최 일시 문제로 6차 회담까지 끌었다. 북적은 12월 10일로 날짜를 찍자고 서둘렀다.
▲남=『갑순이와 갑돌이가 이제 시집 장가를 들어 임신했는데 애의 생일부터 정하자는 거요?』
▲북=『산부인과 학회에나 나가슈.』 5분 동안이나 침묵이 흘렀다.
▲북=『옆에 앉은 박 선생(박선규)은 외과 의사라는데 쾌도난마 식으로 날짜를 찍읍시다.』
▲남=『실이 26년간 엉켰는데 차근차근 풀어야지 단번에 잡아당기면 끊어집니다.』
일시 문제는 보류되고 의제 문제로 14차례나 회담이 계속됐다.
성급한
▲북=『우리쪽엔 편지 써 놓고 기다리는 사람이 많수다. 빨리 서신 왕래를 하도록 합시다.』
▲남=『26년간 참았는데 그걸 못 참겠소.』
▲북=『같은 동포끼리 절차가 무슨 절차요.』
▲남=『생사 여부와 주소도 확인 않고 만나겠다는 거요.』
▲북=『풀어놓으면 제 고향 못 찾을 사람이 어디 있겠소.』
어느덧 추석이 됐다. 한적측에서 선물을 한아름씩 안겼다. 선물 포장에 ××「실크」 「빙고」 △△△「캐슈밀론」 ○○ 등등 영문이 많은 것을 보고,
▲북=『웬 서양글이 이렇게도 많소.』
▲남=『우린 수출을 많이 하니까요.』
『이것은 겨울 내복이요. 따뜻이 입고 회의합시다.』
▲북=『그럼 겨울까지 회담하겠다는 거요?』
회담이 교착에 빠지자 대화는 초점을 잃고 취미 한담 얘기로 흐르기도 했다.
▲북=『50만년 전 구석기 시대 유물이 최근 발견됐지요.』
▲남=『대동강에서 「스케이트」타던 생각이 납니다.』
▲북=『한라산의 식물 연구에 나는 관심이 있소.』
▲남=『김 단장은 「유럽」에 오래 있었으니 「오페라」를 많이 보셨소?』
▲북=『오다 보니 꿩이 많은데 꿩 사냥이나 합시다.』
▲남=『희랍 신화에 이런 말이 있읍니다.』
▲북=『신화요? 에잇, 귀신 얘기는 집어칩시다.』
회담이 맥이 빠지자 술기운으로 회담을 추진(?)하기 위해 「파티」가 뻔질나게 열렸다. 독사주가 등장한 것도 이 무렵-.
▲북=『60이 청춘이요, 90이 환갑이라는데 이 뱀술을 드시오, 불로주라오.』
▲남=『나는 뱀장어도 못 먹는데 뱀술은 사양하겠소』라고 퇴주 하자,
▲북=『술 한 방울이 피 한 방울인데』라고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
「파티」에서 S제과에서 선사한 빵을 먹던 북의 기자가 포장지를 물끄러미 보더니, 『이건 뭐야, 먹는 데까지 반공이야』라고 소리쳤다.
알고 본즉 과자 봉지에 반공·방첩이라고 새겨 있었는데 우리쪽 기자 한사람이 『이 사람 반공을 다짐했군』-.
기자들의 대화는 퍽 자유롭고 거리낌이 없다.
▲북=『당신, 그 동안 안보여서 숙청된 줄 알았다.』
▲남=『미국에 갔다 왔지.』
▲북=『아, 안보회의에 갔다왔구만. 그래 미군은 언제쯤 될 것 같은가.』
▲남=『미국이 빼고 싶어도 중공이 남아 주기를 바라는 눈치더군.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서-.』
▲북=『?』 그러다가도 우당탕 싸우기도 했다.
▲북=『왜곡(의곡)보도하는 거야 이××야』
▲남=『평양 방송식으로 보도하렴?』이라고 약을 올리자 북의 기자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우리 기자의 손가락을 비트는 사태도 있었다. 북적의 「자유 왕래」 고집으로 「마라톤」 대화가 벌어지기도 했다.
▲북=『자유 왕래를 위해 한잔합시다.』
▲남=『꿈에도 자유 왕래가 나오겠소.』
▲북=『자유가 싫소.』
▲남=『밥 굶는 사람이 밥밥하는거 아니오.』
▲북=『젊은이가 자유가 싫소.』
▲남=『자유는 평소 즐기니까.』 곧잘 과열하여 장광설을 펴는 북적 김태희 단장에게 홍일점 정희경 여사의 「브레이크」는 특효약. 마지막 날도 궐기대회 문제로 과열한 김태희에게 정 여사는 『회담 중엔 화를 내지 않으셔야지요』라고 타일러 침묵시켰다.
16차의 실무 회담과 25차의 예비 회담은 이 같은 파란 곡절을 겪고 마무리됐다. 마지막 대화는 아쉬움에 젖어,
▲남=『1년 동안 수고하셨읍니다.』
▲북=『수고했읍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최규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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