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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형사 소송과 「8·3」 긴급명령|법정에 번질 제 문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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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8·3 대통령 긴급명령」발표되자 검찰과 법원은 긴급명령 위반 사범의 처리 방안과 앞으로의 재판 사무 처리 대책을 논의, 대체적인 사무 처리 지침을 마련했다.
검찰은 대검 경제 담당 서정각 검사와 서울지검 경제부 허형구 부장 검사가 중심이 되어「긴급명령 사범 처리 방안」을 마련, 긴급명령 위반 사범을 다른 범죄 수사에 우선하여 수사력을 집중하도록 전국 검찰에 긴급 지시했다.
검찰은 이번 경제 비상 사태 선포를 사회 범죄 측면에서 분석, ①대규모·전문적인 고리대금 업자를 색출하고 ②위장 사채를 적발하는데 중점을 두어 탈세 범에 대한 부차적인 처벌과 아울러 세수 증대를 도울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 처리 방안에서 채권자와 기업이 사채 신고를 성실히 이행하지 않는 행위 등 4개 항목의 범법 행위에 대해서는 구속 기소를 원칙으로 한다고 밝혔다.
서울민사지법은 휴가중인 부장 판사를 제외한 부장 판사들과 각 과장들의 모임을 갖고 긴급명령 13조 2항에 의한 강제 집행·가압류·가처분 등의 신청은 계속 받되 긴급명령에 해당되는지 여부 (기업의 사채 여부)의 결정은 담당 재판부에서 가릴 것 등 4개 항의 내용을 확정, 어느 정도까지는 사무 처리 지침이 마련됐다.
그러나 대부분의 제야 법조인들은 이번 긴급명령이 각계 의견이 종합되지 않고 극비리에 마련됐기 때문에 법률 체제의 미비점이 발견되고 있어 앞으로 민·형사 소송 사태가 일어날 전망이 짙다고 문젯점을 지적하고 있다.
긴급명령에서 기업의 범위를 너무 넓게 잡아 외형상 회사의 형태인 경우는 그래도 기업의 사채 여부가 밝혀질 수 있으나 목욕탕·이발소·다방 등 개인 영업의 경우에는 채권자가 기업의 사채 여부를 알 수 없어 신고를 할 수 없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생각지도 않은 법의 제재를 받게될 염려가 있다는 것이다.
또 민사의 경우로는 이 같은 업주들이 사용 처를 밝히지 않고 사채를 빌어 갔을 때 채권자는 빌려준 돈이 업주들의 영업 자금으로 썼는지 개인의 생활비로 썼는지를 모르게 되어 채무자인 업주들이 기업 사채를 주장하더라도 일단은 채무 이행 청구 등의 민사 소승을 제기하게될 공산이 큰 것이다.
또 다른 큰 문젯점으로는 기업에 사채를 빌려준 채권자가 채권 확보의 수단으로 어음이나 수표를 받았을 경우다.
이 경우 채권자가 기업주가 발행한 어음·수표를 갖고 있을 때는 그 나름대로 기업 사채 여부가 가려질 수 있으나 채권자가 받은 어음·수표를 배서 양도하여 여러 사람을 거친 경우에는 최종 소지인에게 불의의 손해가 따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처음 수표·어음을 받은 채권자는 그것이 채권 채무 관계로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나 수표·어음이 전전하는 동안 중간 단계의 양수인이나 최종 소지자는 수표·어음의 발행 원인을 모르기 때문에 당국에 신고해야 할 것인지 조차 알 수 없는 형편이다.
이 같은 경우에는 채권 채무 관계라는 것을 모르는 최종 소지인에게 불신고의 형사 책임을 물을 수 없으며 민사 소송을 낼 경우라도 구제되어야 한다는 것이 법조인들의 지배적인 견해이다.
특히 서울 명동 일대를 무대로 하는 전문적인 사채 시장에서 자신이 준 사채가 몇 단계를 거쳐 소화되어 어떤 기업으로 넘어 갔을 경우도 문제가 된다.
당초에는 기업수가 아닌 사람에게 사채를 주었으나 첫 번째 채무자가 여러 사람들을 모아 또 다른 사람을 거쳐 사채 시장에 팔렸을 경우에는 채권자는 자기가 준 돈이 기업으로 넘어 갔는지의 여부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수표·어음의 최종 소지인이 발행 원인을 모르는 선의의 취득자로서 구제를 받는 경우라도 수표·어음을 발행한 사람이 판결에 승복, 돈을 주려고 해도 긴급명령에 위배되어 줄 수가 없는 것도 문제가 되고 있다.
이 경우 선의의 취득자는 누구한테서 보장을 받느냐하는 난제가 따르게 된다.
긴급명령이 법 체제상으로 미비점이 있는 것은 강제 집행을 하기 위한 가압류·가처분을 금지하고 있는 규정 (13조 2항)을 들 수 있다.
긴급명령에 따라 채권의 강제 집행을 3년 이내에 할 수 없으나 3년 후의 채권 확보의 길은 터놓았어야 할 것이 아니냐하는 것이 제야 법조인들의 견해다.
채무자가 3년 이후 채무를 성실히 이행하기 위해 재산을 빼돌리지 않는다는 보장을 누가 하겠느냐 하는 의문이다.
따라서 3년 후의 강제 집행 면 탈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가압류·가처분 신청의 길은 터놓았어야 한다는 의견이다.
또 등기 공무원이나 공탁 공무원에게 내용 심사권이 없는데도 등기 이전이나 공탁금 지급을 금지한 긴급명령이 문젯점의 하나로 손꼽힌다.
현재 채권 확보를 위한 수단 방법으로 채권자는 채무자의 부동산을 담보로 잡아 부동산 매매 예약으로 인한 가등기를 해놓고 일정 시기까지 채무 이행 (채무 판제)을 하지 않을 때는 본 등기를 필하고 있는 실정인데 이 같은 등기 이전 신청이 있을 경우 등기 공무원은 이를 거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긴급명령에는 기업의 정의를 영업 감찰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영업 감찰명의인과 실제 영업주가 다른 경우가 있어 혼란이 일어날 염려가 있다.
또 긴급명령에서 사채의 판제를 금지하고 사체 관계를 소멸하는 행위도 이를 금지하고 있으나 화해 조서 작성, 양도 담보의 처분, 환매 특약부 매매 등을 사채 소멸 행위로 보느냐 하는 것도 문젯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또 긴급명령은 기업이 발행한 수표의 제시자가 8월2일 이후일 때는 신고를 통해 사채로서 취급될 수 있도록 부정 수표 단속에 관한 예외 규정을 두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기업주가 부정한 목적을 위해 부도 수표를 발행한 행위를 합법화 할 수 있는 길을 터놓게 된 것도 아쉬운 점이 되고 있다.
기업주와 채권자 사이의 신고 의무 불이행에 대해 처벌 규정을 둔 것도 앞으로 형사 소송 면에서 문제가 될 것 같다.
채권·채무 관계는 인간적인 친분 관계에서 성립되는 일이 많은데 빌린 돈을 기일 전에 갚거나 돈을 받지 않기 위해 신고를 안 하는 것을 처벌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지 않으냐 하는 이야기가 나돌고 있다. <심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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