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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일 군용기 방공구역 진입 … 중국 공군 첫 긴급발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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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중국이 자국 방공식별구역(CADIZ) 선포 후 구역 내에 진입한 미국과 일본 군용기에 대해 긴급발진을 실시하는 초강수를 들고 나왔다. 중국이 ‘종이 호랑이’가 아니라는 의지 표현이다. 한·미·일 3국도 상공 감시 강화를 위한 전력 증강을 서두르고 있어 동북아 정세는 양보 없는 정면충돌 양상으로 치닫는 모양새다. 28일에는 미국과 중국·일본의 항모(준항모 포함)가 남중국해에서 동시에 무력시위를 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선진커(申進科) 중국 인민해방군 공군 대변인은 29일 “동중국해 방공식별구역에 진입한 미군 초계기 P-3와 일본 항공자위대의 공중 조기경보통제기 E-767 등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 공군기가 이날 오전 긴급 발진했다”고 밝혔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보도했다. 지난 23일 동중국해 일대에 CADIZ를 선포한 후 외국 항공기에 대해 긴급발진을 실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미 B-52 폭격기와 일본·한국의 군 항공기가 사전 통보 없이 방공식별구역 내에 진입했으나 중국군은 지상감시만 했을 뿐 전투기를 발진시키지 않았다. 이에 중국 내에서도 방공식별구역 설정이 ‘종이호랑이’이 아니냐는 비판이 있었다.

중국, B-52 진입 때와 달리 즉각 대응

 선 대변인은 전날 “조기경보기인 쿵징(空警)-2000과 수호이(SU)-30, 젠(殲)-11 등 전투기로 이뤄진 편대가 방공식별구역을 정기적으로 순시·정찰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쿵징-2000은 감시반경이 1200㎞에 60~100개의 목표를 동시에 추적할 수 있다.

 미국과 일본도 열도 주변 상공의 경계를 강화하기로 했다고 요미우리신문이 29일 보도했다. 일본 항공자위대는 내년 오키나와(沖繩)현 나하(那覇)기지에 조기경보기 E2C 상설 부대를 신설하고, 현재 아오모리(靑森)현 항공자위대 미사와(三澤) 기지에 배치된 조기경보기 E2C 일부를 옮겨 동중국해 경계를 전담토록 한다는 방침이다. 미군도 무인 정찰기 글로벌호크를 이르면 내년 봄 미사와 미군 기지에 도입해 센카쿠와 일본 주변 경계 감시를 강화한다. 항공자위대는 2015년 글로벌호크를 도입할 예정이다.

 로버트 토머스 미 해군 제7함대 사령관은 28일(현지시간) “중국이 선포한 방공식별구역은 일본·한국의 영토 주권과 겹치는 등 충분한 고려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제사회가 용납할 수 없을 만큼 특정 국가가 과도한 주장을 할 경우 무시하는 게 관례”라며 “따라서 동중국해에서 미군의 작전은 지금까지 해오던 대로 ‘지속적으로 꾸준히’ 계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 해상초계기 투입 이어도 순찰 강화

 우리 군 관계자도 29일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이어도 인근의 순찰을 강화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어도는 해양과학기지가 설치돼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다”며 “우리 해군 함정이 정기적으로 이어도 서남방 100㎞까지 순시하고, 제주도에 배치된 P-3CK 해상 초계기도 작전에 투입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목포에 위치한 해군 3함대 소속 함정들은 물론이고 서해 지역에서 훈련과 경계작전에 투입됐던 함정들이 부산 해군작전사령부에 복귀할 때 이곳을 거쳐 복귀하는 등 정기·수시 순찰도 대폭 강화됐다. 특히 해군은 지난해 초 업그레이드가 완료돼 16대로 늘어난 P-3CK 해상 초계기 가운데 4대를 제주공항에 배치해 순찰과 유사시 대응 능력을 높였다.

 한편 26일 산둥(山東)성 칭다오(靑島) 항모기지를 출발한 중국 항모 랴오닝함은 전단 훈련을 위해 대만해협을 통과한 뒤 28일 처음으로 남중국해에 진입했다. 랴오닝함은 앞으로 하이난다오(海南島) 산야(山亞)항에 기항하며 훈련을 계속할 예정이다. 랴오닝함은 미사일 구축함인 선양(瀋陽)함, 스자좡(石家莊)함, 미사일 호위함인 옌타이(煙臺)함, 웨이팡(<6F4D>坊)함 등 4척의 군함과 전단을 이루고 있다.

 미 7함대 소속인 조지워싱턴함은 27일 동중국해에서 일본 군함들과 합동훈련을 벌였다. 필리핀 태풍 피해 구조작업을 마치고 모항인 일본의 요코스카(橫須賀)항으로 귀항 중이던 이 항모는 앞서 남중국해에서 훈련을 했었다. 호넷과 수퍼호넷 전폭기 등 80대의 함재기를 탑재할 수 있으며, 이지스 순양함과 이지스 구축함 3척, 해양초계기, 정찰기, 잠수함을 거느리고 있다.

 역시 태풍 피해 구조차 필리핀에 머물고 있는 일본의 준항모급(헬기 탑재) 이세(伊勢)함도 중국 항모의 남중국해 훈련을 바싹 경계하고 있다. 일본 해상자위대가 보유한 최대 구축함이기도 한 이세함은 1만3500t으로 4대의 헬기를 탑재할 수 있다.

미·중·일 항모 4척 남중국해 집결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人民日報)는 29일 “중국과 미국의 항모 전단이 동시에 남중국해에 모습을 드러냈으며 ‘원수가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듯’ 앞으로 서로 해상에서 조우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환구시보(環球時報)도 “랴오닝함이 남중국해에서 훈련한 미국 조지워싱턴함의 항모 전단 및 일본 자위대 전함들과 만나지는 않았지만 3개국 항모 4척 전력이 분쟁 해역에 집중된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중국은 항모 니미츠함의 출현도 경계하고 있다. 니미츠함은 15일 동중국해 부근에서 한·일 해군과 대규모 연합훈련을 한 뒤 지중해로 떠났다가 다시 남중국해로 이동해 중국을 감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 해군은 22일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남중국해에서 니미츠함의 함재기 이착륙 훈련 장면을 공개했다.

 중국 군사평론가인 자오쥔(趙軍)은 “3개국 항모의 남중국해 출현은 의도된 건 아니지만 앞으로 동북아 최고의 무력이 충돌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는 중대한 사건”이라며 “특히 중국이 방공식별구역을 남중국해로 확대할 경우 중·미·일 무력이 이곳에 집중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베이징·워싱턴·도쿄=최형규·박승희·김현기 특파원

서울=정용수 기자

방공식별구역(ADIZ)

영공과 영토 방위를 위해 접근하는 외국 비행체를 미리 탐지·대처할 수 있도록 영공 외곽 공해상에 설정한 구역. 해당국 공군이 일방적으로 설정해 국제사회에 선포한다. 영공과 달라 국제법적 근거는 약하고 외국 군용기의 무단 비행이 금지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안보에 위협이 되면 퇴각을 요구하거나 격추할 수 있다. 한·중·일처럼 인접국간 ADIZ가 겹치는 경우 분쟁이 발생할 수 있다.한국은 6·25전쟁 중이던 1951년 미 태평양 공군이 KADIZ를 설정했고, 일본은 69년 JADIZ를 설정했으며, 중국은 지난 23일 CADIZ를 선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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