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신용 질서 초월한 충격 요법|8·3 경제 긴급명령의 안팎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2일 단행된 「경제의 안정과 성장에 관한 긴급명령」은 통화 개혁에 버금하는 혁명적 경제조처라 볼 수 있다. 기존 경제 질서를 초월하는 파격적인 조처이기 때문에 정상적인 「입법」 절차에 의하지 않고 헌법에 규정된 대통령의 긴급명령권이 발동 된 것이다.
물가·환율·곡가·공공요금 등이 서로 상승 작용을 하는 경제의 구조적 악순환을 단절하기 위해선 혁명적 비상 수단을 쓸 수밖에 없다고 정부는 판단한 것이다. 이 구조적 악순환 단절의 실마리를 기업의 정상화라는 측면에서 찾고 있다. 즉 경제의 지속적 성장을 위해선 물가의 안정이 선행돼야 하며 물가의 안정은 기업 원가 부담의 경감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비상 경제 조처의 초점도 기업이 원가를 내릴 수 있는 여건의 조성에 맞추고 있다.
자본주의 경제의 핵인 기업의 건전한 발전을 통해서 경제의 체질을 강화하고 균형적인 발전을 도모한다는 것이다.
비상 경제 조처는 사체의 일정 기간 동결·금리의 인하·환율의 고정화·단기 고리 대출의 장기 저리화·투자 공제 대상 확대·감가상각율 인상 등을 망라하고 있다.
이러한 기업 여건의 개선을 통해 기업의 「코스트·푸쉬」 요인을 제거하면 물가를 연 3%선에서 안정시킬 수 있다고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5월부터 추진되어온 이른바 종합 경제 시책이 바로 이렇게 구현된 것이다. 한국 기업들에 공통된 가장 큰 문제가 바로 재무 구조의 취약이다.
본원적인 자본 축적 없이 급속한 확대 성장을 서둘렀기 때문에 기업의 개인 자본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고 이러한 추세는 앞으로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65년만 해도 48·6%이던 개인 자본 비율이 70년엔 76%로 높아지고 따라서 금융 비용도 65년의 4·17%에서 70년엔 9·04%로 높아졌다.
타인 자본 과다로 인한 기업의 높은 금리 부담은 「코스트·푸쉬」의 큰 요인이 되어 왔다. 타인 자본 중에서도 단기 고리의 사채가 큰 비중을 점하고 있으며 이 사채는 기업의 정상적인 발전을 크게 제약했다.
그러나 공 금융의 대금 공급만으론 늘 미흡하여 기업은 사채에 계속 의존 안 할 수 없었고 이러한 필요악적인 사채 규모가 약 1천5백억원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기업은 물론 영세상공인들조차 무진·사금고 등의 사채에 크게 의존해왔다.
정부는 이 사채 근절을 위해 기업이 쓰고 있는 모든 사채의 상환을 동결하여 월리 1·35%, 3년 거치 5년 분할 상환 조건의 새로운 채권 관계로 바꾸거나 출자로 전환되도록 했다.
이러한 사채 상환의 동결조처는 기업 측으로, 보면 부담 경감이 되지만 사채 업자엔 불의의 피해가 많을 것이며 앞으로의 외환 보장·신용 질서의 교란 등과 관련, 많은 문제점을 빚을 것이다.
사 금융 뿐만 아니라 공 금융도 국제 수준에 비해서 금리가 높으므로 이번 이를 파격적으로 내렸다.
즉 은행 대출 금리를 현 연 19%에서 15·5%로, 연체 금리를 31·2%에서 25%로 대폭 내렸는데 현재 은행 대출이 1조2천억원 가량 되므로 이번 금리 인하로 기업은 약 2백20억원의 부담 경감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금리 인하에 따른 은행 수지의 악화를 「커버」해주기 위해서 예대간 「마진」을 2·2%에서 3·5%로 확대했다. 공사 금리의 인하와 더불어 공 금융의 확대조처도 취했는데 금융 기관이 2천억원의 특별 금융 채권을 발행, 한은에 인수시키고 이 자금으로 은행 단기 고리 대출의 일부를 연리 8%, 3년 거치 5년 상환의 장기 저리로 바꿔주도록 했다.
또 5백억원의 산업 합리화 자금을 마련, 우량 기업에 대해 장기 저리로 대여하고 세제상의 특전도 주도록 했다. 중소기업 및 농수 산업자를 위해선 신용 대출의 길을 넓혔다.
정부는 기업에 대한 이런 금융상의 지원뿐만 아니라 환율을 4백원 선에서 당분간 안정시키고 국내 자원에 의한 투자의 법인세 및 소득세의 공제율을 현 6%에서 10%로 높이며 공공요금 인상을 억제하는 등 기업 여건의 개선조처도 같이 취했다.
또 재정 경화를 풀어 예산의 신축성 있는 활용을 도모하기 위하여 지방 교부금제를 폐지했다.
이번 경제 비상 조처가 목적·지향하는 바는 무척 조심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그 방법에 있어선 문젯점이 많다. 특히 사채 동결 조처는 재산권의 침해·신용 질서의 파괴라는 점에서 많은 부작용을 빚을 것이다.
5·16후 단행된 농어촌 고리채 정리가 그 취지는 좋았지만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한 점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특히 기업의 원가 경감을 위하여 다수의 사채권자가 피해를 보아야하는 사태는 회사 정의와도 관련된 문제이며 선의의 기업도 아직은 필요악적인 존재인 사채 융통에 많은 곤란을 겪게될 것이다.
또 기업 부실의 요인이 이자 부담의 과중에만 기인되는 것이 아니며 보다 근본적으로는 창의적인 기업가 정신의 부족·기업 경영의 미비 등에 바탕을 두고 있는 만큼 단지 금융 지원만을 한다고 해서 기업 정상화가 이뤄질지는 큰 의문이다.
오히려 자유 경제 체제의 바탕을 이루는 신용 거래 질서의 혼란이 빚을 부작용을 크게 주의해야할 것이며 금리 인하가 자금 수급에 미칠 영향도 또한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특히 물가의 안정 없는 환율의 고정화 및 금리의 대폭 인하도 문제가 될 것이다.
정부는 이번 비상 조치를 통해서 사 금융의 공 금융화를 노리고 있지만 앞으로 물가가 계속 오르고 충분한 자금 공급이 이뤄지지 않는 한 그렇게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오히려 사 금융이 더욱 음성화되어 조건이 나빠질 우려도 충분히 있다.
또 경제를 이런 충격 요법에 의해 다스려야 하는가 하는데도 문제가 있다. 경제는 경제 원칙에 의해 운용되야하며 그 속에서 자유 경제 체제가 가장 장점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 혁명적 수단에 의한 경제 시책은 그 집행 과정에서 특히 많은 보완조치가 필요할 것이다. <최우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