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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의사 사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가짜 한의사와 가짜 의사가 무더기로 적발되었다. 25일 서울지검은 보사부 관계직원과 짜고 엉터리 한의사 면허증을 교부 받아 가지고 한의원을 차리고 있던 무자격·무면허의 가짜 한의사 39명 가운데 23명을 긴급구속 하였다. 이와 함께 이들에게 가짜 면허증을 조달해준 「브로커」일당 중 일부는 체포되고 뺑소니를 친 잔당들을 지금 수배 중에 있음도 아울러 밝혀졌다.
검찰에 의하면 이 사건의 진원은 모두 보사부 의무과에서 면허증 발부사무를 담당하고 있던 정모 주사로서 그는 건당 50만원 내지 1백50만원씩의 금품을 받고 무자격자에게 엉터리 면허증을 떼어줌으로써 무려 4천 만원을 긁어모았다고 한다. 실로 아연 질색할 노릇이 아닐 수 없다.
비록 4급 갑류의 말단직책이지만 중앙정부에 근무하는 버젓한 국가공무원이 장기간에 걸쳐 상습적으로 공문서를 위조하고, 가짜 면허증을 남발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탈이 없었다는 것은 그 사실 자체가 두렵기 짝이 없는 일이다. 지난 63년부터 시작된 이 「검은 거래」가, 이번 「우연한 기회」에 백주에 드러나기까지는 약 10년의 세월이 걸린 셈이기 때문이다.
한편, 같은 날 서울시경은 역시 다른 사람 명의의 면허증을 세내어 버젓이 의료행위를 해온 가짜 의사 4명을 구속하고, 그와 함께 허위진단서를 떼어준 악덕의사 11명에 대해서도 영장을 신청중이라고 한다.
이들은 주로 교통사고나 폭행사건에 관련된 진단서를 뗄 때 사실을 왜곡해서 윤화 운전사에게 부당하게 유리한 허위 진단서를 꾸며 주거나 혹은 보다 많은 보험료를 타내도록 협잡하는데 의젓잖은 협조를 해왔다는 것이다.
의사라면, 양의건 한의건 국민이 그들의 생명과 건강을 내맡기다 시피 신뢰를 일신에 모으고 있는 사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이 돈을 받고 해주는 시술을 「인술」이라고 부르는데 인색하지 않는다.
그러한 의사들이 출발에 있어서 이미 면허를 사취하려 들고, 무자격자에게 자기의 면허증을 「세」를 내주고 또는 남의 불행에 얹혀서 엉터리 진단서를 떼어 궂은 돈벌이를 하려는 경향이 팽배 하다는 사실은 심각한 사회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건 비단 그 엉터리 의사들로부터 직접 피해를 보는 개인의 보건에만 불행한 그림자를 던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어느 나라에서나 가장 사회적 신망을 모아야할「인술」에 대한 신용과 위신자체를 송두리째 무너뜨림으로써 사회전체의 건강에 위해를 끼치고 있는데 대한 중대한 경종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경찰이나 검찰이 손을 대기에 앞서 의사들 스스로가 자신의 명예와 직업적 권익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무면허의나 돌팔이 악덕의를 축출해내는 자위조치를 취해야할 필요성이 절실하다고 생각한다.
고도의 지식과 전문적인 수련이 필요한 의료관계자들의 세계는 그들의 동업 조합적인 결속을 한층 견고히 함으로써 능히 가짜를 가려내고 추방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비단 의사면허증뿐만 아니지만, 국가의 이름으로 발부하는 면허증은 실상 국가의 권위와 공신력이 걸린 증서다.
그러한 증서가 일개 「브로커」손에 의하여 호락호락 위조·변조되고, 쉽사리 금품과 교환되어 팔려나간다는 것은 국가의 권위와 공신력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라는 점에서 어설프게 처리해서는 안될 일로 믿는다. 우리는 이번 부정의료행위에 대한 일제수사가 이른바 가짜 면허증과 관련하여 보다 광범위하게 전개돼야할 「특별사정」의 일환이기를 기대하면서 동시에 이번 수사가 정작 가짜 의사 소탕을 위한 마지막 수사라는 말을 듣도록 발본의 강경책이 있기를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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