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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기 수익률 1% 밑돌아 … 불안한 퇴직연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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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6년차 직장인 손영인(30)씨는 최근 들어 퇴직연금 가입을 후회 중이다. 2년 전 연 4.8%로 가장 높은 금리를 준다는 모 증권사에 가입했지만 그 뒤로 수익률이 곤두박질치고 있어서다. 올해 들어 분기 수익률이 1%를 넘은 적이 없다. 손씨는 “나뿐만 아니라 당시 은행·보험회사 퇴직연금에 가입한 같은 회사 다른 직원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라며 “이젠 중간정산을 받기도 어려운데 이러다 혹시 나중에 노후 보장이 안 되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국민연금·개인연금과 함께 3대 연금 중 하나인 퇴직연금 수익률이 게걸음을 걷고 있다. 퇴직연금 특성상 안전자산에 연금이 몰려있는 데다 저금리 기조가 계속되면서 수익을 내지 못하는 것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3분기 기준으로 퇴직연금을 취급하는 은행·증권사·생보사·손보사 48곳 가운데 확정급여형(DB) 수익률이 1% 넘는 곳은 4곳에 불과하다. 확정급여형은 가입자와 적립금이 가장 많은 퇴직연금제로 올해 3분기 기준 전체 적립금의 약 73%가 확정급여형이다. 확정기여형(DC) 및 개인퇴직연금(IRP)까지 포함한다 해도 수익률 1%를 넘은 곳은 13곳뿐이다.

 가장 수익률이 저조한 곳은 은행이다. 퇴직연금을 다루는 시중은행 15개 중 3분기 수익률이 1%를 넘은 곳은 한 곳도 없다. 4대금융지주 중 적립금이 가장 많은(4조1271억원) 신한은행의 확정급여형 퇴직연금 수익률은 0.93%다. KB국민·우리·하나은행의 확정급여형 퇴직연금 수익률 역시 0.92~0.94%에 그쳤다.

 가입금액이 가장 큰 생명보험사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적립금이 8조4907억원으로 가장 많은 삼성생명의 3분기 DB형 수익률은 0.92%다. 적립금 기준 생보사 2위인 교보생명 역시 3분기 수익률은 0.94%에 그쳤다. 그러나 생보사 중 가장 높은 수익률을 보인 흥국생명도 1.04%에 불과해 큰 차이가 없었다. 손해보험사의 경우 한화손보가 3분기 DB형 수익률 0.69%로 전체 48곳 금융사 중 가장 낮은 수익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증권사 중에서는 신한금융투자와 대신증권이 1%를 간신히 넘겼 다.

 퇴직연금제도는 2005년 안정적인 노후자금 마련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아무 때나 중간정산이 가능한 기존 퇴직금 제도로는 노후 대비를 못 할 수 있다는 지적에서다. 현재 전체 상용근로자 중 44%(463만 명)가 퇴직연금에 가입했으며, 적립금은 6월 말 기준으로 70조4526억원을 넘어섰다. 2010년 말 29조1000억원대였던 것에 비하면 2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전문가들은 퇴직연금 자산운용이 지나치게 안전자산에 치중돼 있다고 지적한다. LG경제연구원 이한득 연구위원은 “지난 5년간 연평균 운용수익률이 증권사 5.2%, 은행 4.96%, 생명보험 5.0%, 손해보험 4.95% 등 차이가 크지 않다”며 “이는 우리나라 퇴직연금이 수익률이 낮은 안전자산 비중이 높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퇴직연금 운용자산은 현금예금·보험상품보다 위험도가 높은 자산에 적극적으로 투자하지만 한국은 정반대라는 것이다. 이 연구위원은 “한국은 현금예금 투자 비중이 절반을 넘다 보니 지난해에 비해 낮아진 기준금리 영향을 그대로 받고 있다”며 “저금리일수록 운용능력이 중요해지는 만큼 과도한 위험을 부담하지 않으면서도 적절히 수익성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도 ‘안정추구’하는 시장의 특성을 바꾸긴 어렵다는 입장이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장기적으로 수익률을 높일 수 있는 DC형 가입자가 늘어나는 게 대안이 될 수 있지만 DC형은 운용수익률이 낮아지면 퇴직급여액뿐 아니라 연금액도 감소할 수 있다”며 “수익률 증가를 위해 금융당국이 나서서 DC형 투자를 권장하기는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이지상 기자

확정급여형(DB)

기존 퇴직금과 같은 체계로 근로자의 평균임금과 근속연수에 따라 퇴직급여가 결정된다.

확정기여형(DC)

정해진 일정한 부담금을 퇴직연금에 적립하는 것으로 기업의 책임이 국한되고 퇴직연금 운용 성과에 따라 근로자에게 지급되는 퇴직급여가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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