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남「스케치」2주5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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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디안」서 돌아와「미라마·호텔」에서 하룻밤 도 묵게된 화가 단은 일제히 군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러고 보니 배가 좀 나오고 뚱뚱한 분들은 흡사 장군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군용기로「나트랑」에 도착, 십자성부대에 들러 신윤정 부대장의 안내를 받아 국군영령 안치소에 가서 분향을 하고 명복을 빌었다. 그리고 저녁때에는 귀빈숙소의 뒤뜰에서 베풀어진 조촐한「파티」가 있었는데 거기서 강완채 야전부사령관을 만났다.
얼핏보기에 무섭게 생긴 장군님이라고 느꼈는데 뜻밖에 우리 아우 얘기를 물어 깜짝 놀랐었다. 내 동생은 육사11기생으로 지난날 장군의 부하였었다.『소 같이 일을 잘하는 놈인데…』그 말에는 부하를 사랑하는 눈물이 스며있었고 그러지 않아도 아까 백마사단에 떨어졌을 때부터 내 마음을 짜릿하게 해준 감상을 더 진하게 해주는 것이었다.
몇 해전에 여류문인들이 파월 되었을 때 내 동생이「브리핑」을 하더라는 이야기를 들었었는데 어느 부대로 가나「브리핑」하는 군인만 보면 동생생각을 하게 되었다.
귀빈실 뜰에서 바라다 보이는「나트랑」의 황혼은 아름다웠다. 어디선지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고, 멀리 바라다 보이는 산 모습은 꼭 우리 한국의 산 비슷했다. 다만 산봉우리가 유방같이 둥글고 곱게 생긴 것이 달랐고 가까이 가보면 수「미터」높이의 열대림「정글」이라는 점도 달랐다. 나는 강 장군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 동안 뭔지 소외감 때문에 혼자 의로 왔던 마음을 풀 수 있었다.
밤이 왔다.
이럴 때는 여자가 된 덕인지 나는「아라비아」공주 님 잠자리를 방불케 하는 침대에 푸른 모기장이 덮인 귀빈숙소에서 혼자 자게 되었다. 지겨웠던 가나다순의 말석에서 잠시나마 해방된 기분이었다.
아군측에서 위협으로 쏘아대는 포 소리가 밤이 새도록 울려왔다. 또 도마뱀이 바람벽을 살살 기어다니면서 소쩍새 울음소리처럼「짹짹짹…」우는가 하면 때로는 꽹과리 치는 소리로 요란하게 울기도 한다.
도마뱀은 사람에게 해가 없다고 하지만. 아직은 나와 친구가 될 수 없었다. 그러나 때때로 울리는 포 소리는 가뭄에 시원한 소나기를 맞은 나무의 마음처럼 내 속을 후련하게 해주었다.
웬일인지 그만 그 포 소리와 함께 영원한 휴식을 갖고 싶다는 심정이 더 나를 잠 못 이루게 해주는 것이었다. 【글·그림=천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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