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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과 명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중국에선 예부터 가장 뛰어난 사가의 본으로서 사마천을 꼽는다. 실상 근위 「사기」처럼 오늘까지 심동을 주는 역사책도 드물다.
「사기」를 쓸매 사마천은 모든 사실을 가장 정확하게 기록하려 애썼다. 그러나 「사기」에는 꼭 하나 사실을 의식적으로 왜곡시킨데가 있다.
사마천의 아버지 이름은 「담」이었다. 그래서 그는 「담」자를 가진 인명을 모두 「동」자로 바꾸어놓았다.
비슷한 얘기가 서예가로 유명한 왕희지에게도 있다. 그의 아버지 이름이 「정」이었다. 그래서 그는 정월을 초월이라 썼다. 또 꼭 「정」자를 써야할 때는 언제나 「정」자를 썼다.
사보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아버지 이름이 「한」이었기 때문에 시를 쓸 때 절대로 「한」자를 쓰지 않았다.
이렇게 자기 아버지 이름을 「터부」로 삼은 것은 효심의 표현이기도 했다. 그것은 또 이름을 아끼고 존중하는 명성욕과도 직결되는 것이다.
명성욕은 효나 마찬가지로 공자가 특히 높이 평가했던 것이기도 하다. 「논어」에도 40, 50이 되어도 그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는다면 대단찮은 사람이라는 구절이 있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좀 다르다. 당초부터 오욕이라 할 때에는 색, 성, 향, 미, 촉에 관한 욕망이 모두 이에 포함됐다. 그래서 그 의미는 지금까지도 이렇게 풀이되고 있다.
그런데 명대의 일여가 쓴 「삼장법수」를 보면 재, 색, 음식, 명욕, 수면욕을 오욕으로 삼고있다.
어느 의미에서는 효를 위해서 입신양명한다는 것은 출가를 이상으로 삼는 불교에서는 번뇌 중의 번뇌라 할 수도 있겠다.
아닌게 아니라 공자나 맹자는 명성(fame)에 너무 얽매인 위인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정작 중요한 명예(honor)가 오히려 등한시 당했다고나 할까.
여러 가지 점에서 공자의 사상에 반대했던 장자가 그 「명성욕」을 비판했던 것은 당연하다.
그는 이름은 흉기라고까지 말했다. 그에 의한다면 모든 도덕적 행위가 명성욕을 동기로 해서 일어난다.
그래서만 나쁘다는 것을 아니다. 명성은 자기를 상실시킬 뿐만 아니라 필연적으로 경쟁심을 일으키고 남과의 대립을 재촉한다. 그래서 죄악의 근원까지도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래서 노장의 영향을 받은 순자 같은 사람은 이름을 훔친다는 것은 재보를 훔치는 것보다 더 나쁘다고까지 말하였다.
요새 우리 주변에서도 너무도 이름을 넓히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그런가하면 수십년의 적공으로 애써 차지했던 이름을 지나친 물욕 때문에 여지없이 더럽히고있는 사람도 많다.
한가지 이들에게 공통적인 것은 그들이 「명예」의 참뜻을 너무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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