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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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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일러스트=강일구]
유상철
중국전문기자

올 한 해도 며칠만 지나면 달력 한 장만 남게 된다. 2013년 한·중 간 최대 사건은 뭘까. 관방에선 당연히 박근혜 대통령의 방중을 거론할 것이다. 그럼 민간 차원에선? 필자는 소설 『정글만리』의 탄생을 꼽고 싶다. 소설은 정글 같은 중국을 무대로 우리 기업인이 펼치는 비즈니스 이야기가 뼈대를 이룬다. 그러나 본격적인 기업소설도 아니고 그렇다고 문학적 향기가 넘치는 것도 아니다. 줄거리가 그렇게 흥미진진한 것도 아니다.

 보통 중국을 말하는 책은 1만 권만 팔려도 ‘대박’이다. 한데 7월 중순 나온 이 소설은 넉 달간 90만 권 가까이 나갔다. 연말 안으로 꿈의 ‘밀리언 셀러’ 진입도 가능할 듯하다. 내년 봄엔 중국어로 번역돼 14억 중국 시장 공략에도 나선다. 『정글만리』가 불황 중 불황이라는 우리 출판 시장에서 대박 중 대박을 터뜨린 이유는 무얼까. 어떤 이는 작가 조정래의 파워를 꼽는다. 『태백산맥』과 『한강』을 넘어 중국까지 달려간 그가 말하는 중국 이야기라 기대를 갖고 읽게 됐다는 것이다.

 중국 비즈니스를 소재로 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많은 이가 소설의 힘을 말한다. 한마디로 술술 읽힌다는 것이다. 중국에 대해 평소 갖고 있던 궁금증이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입을 통해 알기 쉽고 또 감칠맛 나게 풀이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맥락이 다소 다르긴 하지만 “소설은 크나큰 발명”이라고 했던 마오쩌둥(毛澤東) 시절의 중국 정보 책임자 캉성(康生)의 말이 생각난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아버지 시중쉰(習仲勳·당시 부총리)을 몰락의 길로 걷게 만들었던 유명한 말이다.

 1962년 중국에 『류즈단(劉志丹)』이란 소설이 나왔다. 중국 건국 전 산시(陝西)와 간쑤(甘肅) 지역에서 활동한 혁명가 류즈단의 일생을 그렸다. 시중쉰도 등장한다. 문제는 마오쩌둥에게 숙청돼 권총 자살한 가오강(高崗)의 행적이 긍정적으로 묘사됐다는 점이다. 캉성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마오에게 “소설을 이용해 반당(反黨) 활동을 하는 건 크나큰 발명”이라고 밀고했다. 이는 마침 대약진운동에 실패한 뒤 권력의 2선으로 물러나 있던 마오가 다시 계급투쟁을 부르짖으며 일선으로 나올 수 있는 좋은 소재가 됐다.

 시중쉰은 졸지에 소설 『류즈단』의 막후 기획자라는 누명을 쓰고 당내 모든 직책에서 해임됐을 뿐 아니라 이후 16년 동안 심사와 구금이라는 길고 어두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시진핑 또한 어린 시절부터 혹독한 고초의 길을 걷게 됐음은 물론이다. 소설의 힘은 크다. 지난달 『정글만리』를 읽었다는 독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중국에 대해 더 알고 싶은데 관련 서적을 추천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독자의 요구는 소설의 영향을 받은 측면이 컸다.

 『정글만리』에 그런 대목이 나온다. 중국에서의 비즈니스 무기를 거론하면서 ‘최대 무기는 자유로운 중국어, 그 다음 중요한 무기가 중국을 총체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책’이라고 소개하는 구절이 있다. 필자가 『정글만리』의 등장을 올해 최대 사건으로 꼽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소설은 우리가 중국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거의 모든 내용을 다룬다.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소설의 형식을 빌린 중국 사용 설명서에 가깝다. 자연히 중국에 대한 소설의 해석이 우리 사회의 중국 인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관시(關係)를 밑바탕에 깐 상거래, 부패와 짝퉁, 농민공(農民工)과 환경오염, 대학생의 개방적 성생활, 조선족 문제, 중국의 부상을 어떻게 볼지, 중국은 왜 미국에 당당하고 일본을 미워하며 또 한국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등 소설의 내용은 그야말로 종횡무진이다. 90년부터 중국을 관찰했고 중국 관련 신문 스크랩 90권, 관련 서적 섭렵 80권, 중국 현지취재 수첩만 20권이라는 작가의 내공이 소설 속에 그대로 녹아 있다. 문제는 소설에서 말하는 중국에 대한 설명이 과연 얼마나 타당하냐일 것이다.

 중국을 연구하는 등 비교적 중국 경험이 많은 이들의 평가는 다소 인색하다. 3권 1질로 된 소설 중 제1권만 보고 책을 덮었다는 이도 있다. 그러나 중국 경험이 많지 않은 이들은 큰 도움을 받았다고 말한다. 필자는 어떤가. 소회가 복잡하다. 소설 속 중국 해석에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도 적지 않지만 배울 점 또한 많기 때문이다. “문제 삼지 않으면 문제가 없는데 문제 삼으니 문제가 된다”는 말로 중국 사회의 작동 시스템을 설명하는 대목 등은 압권이다.

 중국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조정래의 소설 『정글만리』가 중국의 모든 것을 설명해 주는 정답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소설의 표현대로 중국은 크고, 넓고, 또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국은 살아 있는 생명체여서 그 모습과 내용이 늘 변한다. 결국 『정글만리』는 변화무쌍한 중국의 다양한 모습 중 이런저런 면을 더듬었을 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중국에 대한 훌륭한 가이드 서적이지만 이 또한 중국에 대한 한 해석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이제 숙제는 모든 중국 연구자에게 남겨진다.

 중국 연구의 결과물을 어떤 형식이 됐든 보다 더 쉽게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방법으로 꾸준히 내놓아야 한다. 독자 입장에선 섣부른 결론을 취하려 하지 말고 ‘돌다리도 두드리며 강을 건너는(摸着石頭過河)’ 신중함이 요구된다. 차분하게 중국을 읽으며 중국에 대한 자신의 이해를 하나하나 쌓아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글=유상철 중국전문기자
일러스트=강일구 ilgo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