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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2)<26화>경무대 사계(99)|우제하<제자 윤석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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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이박사의 하야>(하)
경무대 앞뜰에 망연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겨있던 이 박사는 허정씨가 다가가자 자리에서 일어나 반갑게 맞았다.
조금 뒤늦게 변영태씨도 이 박사의 부름을 받고 경무대로 들어왔다.
『「미스터」허·「미스터」변 두 사람이 다 들어와서 나와 함께 시국을 수습해야겠어. 』 이 박사는 이들의 입각을 권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이 권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우양(허정씨)은 이번 사태가 관권에 의한 선거부정에서 일어난 것임을 설명하고, 부통령선거를 다시 해야하며 이 박사는 자유당을 떠나야할 것이라고 말하고 돌아갔다.
다음날 이 박사는 박찬일 비서를 보내 다시 우양을 불러들여 입각을 권했다. 우양은 그가 주장하던 대로 ⓛ이 박사의 자유당총재직 사퇴 ②거국내각의 구성 ③부통령의 재선거 등을 역설하고 입각 문제에 대해선 『좀더 생각해 보겠다』고만 말했다.
말하자면 이 조건이 받아들여지면 사태수습에 나서볼 것을 고려할 수 있다고도 해석할 수 있었다.
이 박사는 이런 방향에서 시국수습에 착수하려했다.
이 박사는 박찬일 비서를 우양에게 보내 우양이 건의한 것들이 모두 시행될 것임을 전달하면서 입각을 권하도록 하는 한편 첫 조처로 만송이 모든 공직에서 물러난다고 발표하도록 지시했다.
이런 지시는 누가 전달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런데 만송과 그 주변의 자유당간부들은 경무대의 이런 지시에 몹시 당황했던 것 같다.
분명 이 박사의 지시는 『모든 공직에서 물러난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었는데 막상 발표는 『모든 공직에서 물러날 것을 고려한다』는 「고려」 두자가 첨가되어 나왔다.
이 미지근한 성명은 「데모」불길을 더 격화시키는 결과가 될 것 같았다.
나는 만송이 부통령당선 사퇴는 물론 모든 공직에서의 사퇴를 고려한다는 성명이 이 대통령과 협의된 듯이 보도된 신문을 보니 정신이 아찔했다. 즉시 경무대에 올라가 경위를 알아보니 이 대통령은 만송을 공직에서 물러나게 할 결심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즉시 한국일보의 장기영 사장을 찾아가 신문보도가 잘못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행히도 한국일보는 내 말을 믿고 이런 식의 기사를 쓰지 않았다.
그러나 염려하던 대로 『고려한다』는 미지근한 성명이 더한층 자극을 준 듯 「데모」는 더욱 격화돼 서대문 만송 댁으로 밀려갔고, 만송은 쫓기는 몸이 되고 말았다.
피신중의 만송은 24일 자유당소속 의원들에게 공한을 보내 『모든 공직에서 사퇴할 것을 고려한다는 성명은 잘못 전해진 것이며 즉각 모든 공직에서 떠나겠다』고 밝혔다. 또 경무대에도 부통령당선 사퇴서를 보내왔다.
당시 이 박사가 만송의 공직사퇴 발표를 지시한 날, 만송은 이 박사를 면담하기 위해 별관비서실에 와서 대기했으나 이 박사를 만나지 못하고 돌아갔다고 한다. 그리고는 곧 쫓기는 몸이 되고 말아 이 박사를 만날 기회를 얻지 못했다.
이 박사는 25일 우양을 불러들여 만송의 당선 사퇴서를 수리하게 하고 재선거를 실시하겠다고 말했다. 이렇게 하여 우양은 입각을 응낙했고, 이 박사는 사태수습을 맡을 신내각인선에 착수했다.
그런데 이날 하오에는 수백명의 대학 교수단이 『학생의 피에 보답하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대통령·국회의원·대법원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데모」를 벌였다.
교수단의 「데모」를 계기로 학생과 시민의 「데모」는 밤새도록 계속되고 구호도 종전의 『부정선거 다시 하라』에서 『이승만 물러가라』로 바뀌었다.
이 박사는 26일 아침 일찍 지난밤에도 학생들이 총에 맞아 사상했다는 소리를 듣고는 『어떻게 국민을 죽일 수가 있어. 내가 물러나야지』하면서 구본준 비서에게 『국민이 원한다면 대통령직을 사임하겠다』는 요지의 하야성명을 받아쓰게 했다.
바로 이런 무렵인 상오9시쯤 송요찬 계엄사령관이 「데모」대의 대표라는 5명의 청년을 데리고 들어왔고, 이 청년들은 하야한다면 정권은 누구에게 넘길 것인가를 따져 묻기도 했다.
이 박사는 「매카나기」미국대사와 「매그루더」 「유엔」군사령관도 들어오게 해서 영문으로 급히 「타이핑」한 하야 성명을 보여주었다. 상오10시 이 박사의 하야 고려성명이 「라디오」를 통해 전국에 방송되었다.
이 방송이 나간 직후 철기(고 이범석씨)가 들어왔다. 철기는 이 박사에게 지금 당장 하야한다는 것이 사태수습을 위한 현명한 방법이 아니라면서 『왜 하야하느냐』고 말렸다.
철기는 송 계엄사령관에게도 『뭣들을 하느냐』고 꾸중했다.
그러나 이 박사는 이런 철기에게 『아니야. 내가 창피해, 내가 창피해…』라는 말을 세 번이나 반복하면서 물러날 결심을 확실히 했다.
이 박사는 곧 중앙청으로 연락해서 신두영 국무원 사무국장을 오게 하여 국회에 낼 사임 서를 쓰게 하고 거기에 서명했다.
그런데 「데모」대는 이 박사가 하야성명을 직접 육성으로 발표해야 믿고 물러가겠다고 해서 하야성명을 다시 녹음해야 했다. 대 응접실에 마련된 녹음기 앞에는 이 박사와 곽영주 경호관·구본준비서, 그리고 나 네 사람이 있었다. 원고를 받아든 이 박사는 글자가 작아 잘 알아 볼 수가 없었다. 비서실에서 글자를 큼직하게 다시 쓰고 있는 도중 촌극이 벌어졌다. 유창준 비서가 『빨리 써』라고 반말조로 얘기한다고 박찬일 비서가 화가 나서 권총을 빼들고 한바탕 싸움을 벌이려 해서 주위에서 가까스로 떼어 말렸다. 상오11시 약간 떨리는 음성으로 하야성명을 읽는 이 박사의 육성이 「라디오」에 흘러나갔다. 이리하여 이 박사의 하야를 위한 공식절차는 모두 끝났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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