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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경제·국방 실패, 김정은 '핵 병진' 도 어렵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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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제임스 퍼슨 박사는 우드로윌슨센터에서 ‘북한국제문서프로젝트’를 담당하고 있다.

“할아버지 김일성이 1960년대에 추진한 경제·국방건설 병진 노선이 실패한 것처럼 손자인 김정은의 경제·핵무력 병진 노선도 잘 되기 어려울 것이다. 핵무기는 엄청난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미국 의회 산하 초당파 싱크탱크인 우드로윌슨센터에서 ‘북한국제문서프로젝트’를 담당하고 있는 제임스 퍼슨(James Person·38) 박사는 김정은식 병진 노선 운명을 이렇게 전망했다. 조지워싱턴대학에서 북한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북한을 수차례 방문했고, 내년에도 북한을 찾을 계획이다.

 북한이 과거 소련 및 동유럽 등과 주고받은 문서 1000여 건을 수집해 분석 중인 그는 냉전 시대 북한 정권의 통치·외교 행위에 천착했고, 이를 토대로 북한의 현재와 미래를 읽고 있다.

 - 3대 세습 체제를 구축한 북한이 붕괴하지 않고 있는 이유를 역사적 맥락에서 보자면.

 “북한의 붕괴 여부를 예측하는 것은 (내기에서 지기 쉽기 때문에) 좋지 않다. 북한 정권이 붕괴한다는 얘기가 나올 때마다 (반대편에 걸고) 돈을 모았다면 정말 많이 모았을 거다. 북한 정권은 나름의 적응력이 있다. 내가 주로 연구한 1953~67년을 보면 알 수 있다. 당시 북한이 소련·중국에 어떻게 대응했는지, 경제 발전 같은 목적을 이루기 위해 자신들만의 인적 자원으로 성취하려는 것을 보면 놀라운 점이 있다. 북한은 자주·자립을 줄곧 얘기해왔는데, 과거 어느 때보다 지금은 불가피하게 자립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50~60년대 북한이 적응해온 패턴을 보면 잘 산다고 볼 수는 없어도 나름대로 잘 헤쳐왔다고 본다. 북한 정권 내구성의 핵심은 적응력이다.”

 - 북한도 중국처럼 개혁·개방이 가능할까.

 “아니다. 북한은 1949년 설립된 동유럽경제상호원조회의(COMECON)에도 의도적으로 가입하지 않았다. 개방할 경우 주권을 상실하고 소련·중국 등 외세 간섭이 커져 행동의 자유가 제약될 것이라 우려했다. 박정희 시대인 1972년 이후락(당시 중앙정보부장)을 만난 김일성이 그런 우려를 말한 적이 있다. ”

 - 김일성은 1960년대 경제·국방건설 병진 노선을 시행했고, 손자 김정은도 경제·핵무력 병진 노선을 제시했다.

 “박정희의 5·16 쿠데타(1961년)에 영향을 받아 김일성이 병진 노선(1962년 조선노동당 중앙위 4기 5차 전원회의에서 첫 제기, 66년 당대회에서 새로운 당 노선으로 확정함)을 추진했지만 실패했다. 김정은이 할아버지와 유사한 병진 노선을 2013년에 선언했지만 핵무기는 엄청난 비용이 든다. 인민의 허리띠를 더 졸라매야하는데 잘 되겠나.”

 - 북한 주민들이 갈수록 시장에서 생계를 의존하고 있다. 북한 정권과 시장의 파워게임에서 결국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될까.

 “북한에서 싹튼 시장이 계속 동력을 얻는다면 궁극적으로는 시장이 이길 것이다.”

 - 북한에 비핵화 의지가 있다고 보나.

 “북한이 핵 억지력을 추구한 시점은 62년 후반부터 63년 초반쯤이다. 90년대 초반 러시아 정부 문서를 보면 당시 러시아 관리가 북한 관리에게 핵 프로그램 포기를 종용하며 협상을 통해 핵을 포기하는 다자 협상에 나오도록 권유하는 대화록이 나온다. 이때 북한은 ‘걱정은 고맙지만 당신들이 상관할 일이 아니다’라고 대답한다.

북한은 핵 프로그램을 갖고 미국과의 양자 협상에 나서고 핵 개발을 레버리지(지렛대)로 사용해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이끌려고 했다. 그런데 제네바 합의가 이행 안됐다. 북한은 당초 핵무기를 보유·실험하는 지금의 단계까지 올 거라고 예상하지 않았을 수 있다. 수차례 핵실험한 북한에게 핵포기 의사는 없는 것 같다.

외부에선 중국을 움직여 북한에 비핵화 압력을 넣으려 하지만 중국 영향력에는 한계가 있다. 역사적으로 북한은 중국을 불신한다.”

워싱턴=글·사진 장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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