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원액 25%의 통화예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미 상원외교위원회는 23일 현 연도 외원법에 의거, 무상 군원 수원액의 10%에 해당하는 수원국 통화를 예치토록 돼있던 조건을 한층 까다롭게 하여 그 예치비율을 일약 25%로 인상키로 결의했다 한다.
상원외교위의 이 같은 결의는 73회계 연도 대외원조수권법안을 상·하원에서 통과시키는 과정에서 다시 조정될 것으로 믿으나, 이것이 양원에서 그대로 통과 확정되는 경우, 그것은 곧 무상 군원의 그 비율만큼의 대폭 삭감을 의미하는 것이며, 이는 곧 수원국가의 재정부담을 크게 가중시키는 결과가 될 것이다.
외교위는 이러한 수원국 통화 예치비율의 인상뿐만 아니라, 또 한국이 주요 수원국으로 돼 있는 73회계 연도 무상 군원의 행정부측 요청액 7억8천만「달러」를 무려 23%나 삭감키로 결의함으로써 우리에게 이중의 실망을 안겨주었다.
미국의회는 오는 6월30일로 끝나는 72회계 연도 대한 무상 군원도 당초요청액 2억3천만「달러」를 1억5천만「달러」로 삭감, 한국군 현대화 계획에 큰 차질을 초래케 했던 것인데, 이번에 또다시 73회계 연도분 군원을 이처럼 대폭 삭감하고, 현지 통화예치비율의 25%인상을 그대로 강행하게된다면 한국의 입장에서는 자주국방태세확립에 중대한 차질을 가져올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정부는 현 연도 외원법의 조항에 의거하여 미국과 무상 군원 및 잉여장비양여부문의 10%예치 협정은 체결, 그 효력이 이미 지난 2월7일자로 소급 발생했으나, 이 예치액은 신년도 예산에 계상하도록 미측의 양해를 얻으려 교섭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따라서 만약 「닉슨」행정부가 신 회계 연도분으로 한국에 배정할 예정인 무상 군원 2억3천5백만「달러」를 전액 제공해준다 하더라도 그 25%의 예치규정이 채택되면 5천8백여만「달러」에 해당하는 한화를 예치하게 되어 그것은 결국 그 액수만큼의 군원 삭감과 우리측의 재정부담가중으로 귀착하고 말 것임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동서의 해빙「무드」와 미국내 여론의 압력에 의해 미국의 대외원조는 해마다 감축일로를 치닫고 있으며, 특히 근년에 와서는 대외원조를 에워싸고 행정부와 의회지도자사이에는 항상 심각한 의견 대립을 보임으로써 수원국의 국내사정까지도 불안케 해왔던 것은 공지의 사실이다. 더군다나 작년의 경우 중공의 「유엔」가입이 확정된 후 미 상원은 외원안 심의 과정에서 모든 외원의 폐기안을 가결하여 일대 혼란을 야기시킨 일까지 있었던 것이다.
월남전비의 계속저인 지출로 인한 미국경제사정의 악화 등 심각한 국내외 문제 때문에 의회와 행정부사이이는 끊임없는 의견대립이 가시지 않고 있으며, 이 때문에 결국 미행정부가 되도록 대외공약을 경감하고, 수원국의 자립·자위를 촉진시키려는 정책을 천명하게된 것이 이른바 「닉슨·독트린」의 경제적의미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로서도 이 같은 미국의 국내사정에 대해서는 충분한 이해가 가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국 이 최근 수년래 보여주고 있는바와 같은 성급한 공약감축과 대외원조 삭감을 일방적으로 단행한다면 이는 지금까지 피로써 맺어진 맹방 국가 국민들에게는 일종의 「무책임한 후퇴」로 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며 또 그 결과는 아직 자위능력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자유국가들의 안전을 위협하여 그 화가 다시 미국에 돌아가는 결과가 되고 말 것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우리 역시 시한 없는 원조를 바라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어느 정도의 자위능력이 갖추어질 때까지 현실적이며 충분한 원조를 하는 것이 미국의 의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뿐이며, 또 그것이 곧 미국을 포함한 전 자유국가의 이익이 된다는 것을 미 의회와 행정부에 강조하려는 것뿐이다. 우리는 특히 미국 의회지도자들에게 대하여 대외공약의 전반적 축소 추세 속에서도 외교정책의 뒷받침이 돼온 군원 본래의 정신을 살려 수원국의 힘에 부치는 부담의 부과나 충격적인 원조삭감은 재고해 주기를 바라고싶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