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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노조 임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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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우리 나라의 노동 운동자체가 초창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지만 특히 여성들의 참여는 첫걸음에 머무르고 있다. 그 첫걸음마저 떼놓기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는다.
한국 노총은 69년12월에 비로소 전임 부녀 부장을 둠으로써 여성에 관한 업무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비전임으로 정규「멤버」의 대접을 받지 못했던 이필원 부녀부장은 『많은 여성 단체들의 정신적 후원이 없었다면 중간에 포기하고 말았을 것』이라고 어렵던 시절을 회상한다.
그 후 2년 반 동안 노조 사무국의 8개 부서에는 이필원 부녀 부장, 강소인 부녀 부차장, 윤정희 국제부 차장 등 3명의 여성이 진출하게 되었다. 이 부장은 전매 노조에서, 강 차장은 자동차 노조에서, 그리고 윤 차장은 체신 노조에서 오랫동안 부녀 부장으로 노조 활동을 익혀온 선구자들이다.
한국 노총은 자동차·출판·부두·금속·화학·전매·금융·해원·운수·체신·외기·전력·광산·섬유·철도·연합 등 16개 회원 노조를 산하에 두고 있다.
이들 중 부두·해원 등 복수 분야를 제외하고는 거의 전 부문에 여성 근로자들이 진출하고 있어 50만 노조원 중 1/3에 달하는 12만5천명이 여성 회원들이다.
이와 같은 회원 조합들은 본부와 여러 지부에 총무부·쟁의 대책부와 같은 기구의 하나로 부녀부를 독립시키고 있다. 여성 근로자들이 노조 운동에 첫발을 딛는 것은 대부분 부녀부장직을 맡고부터라고 볼 수 있다.
노조의 규모와 성격에 따라 부녀 부장을 전임으로 두기도 하고 비전임으로 두기도 하는데 전임이 되면 회사측으로부터 계속 월급을 받으면서 하던 일을 떠나 노조 일에만 전담하게 된다.
「철도」 본부의 이문희씨, 「섬유」본부의 홍익삼씨, 「체신」 본부의 이한숙·한상인씨, 서울지부 김영희씨, 「전매」 본부의 정연희씨, 서울 제조창 지부 황순희씨, 인쇄 공장 지부 김동욱씨, 「화학」본부 백화자씨, 해태 제과 지부 권영남씨, 삼립 식품 지부 한봉희씨 등은 모두 전임으로 부녀 부장이나 국제 부장직을 맡고 있는 노조 임원들이다.
이밖에 얼마 전에는 동일 방직의 주길자씨와 부산 피복 보세 가공의 이순자씨가 한국 노총 사상 최초의 여성 지부장으로 진출했고, 지금까지 일해온 「체신」을 지분 회장 이용근씨, 시외 전화국 분회장 남기자씨, 「화학」의「세미크오」부지부장 선순복씨 등을 합치면 노조의 여성 임원 수는 20명 정도가 된다.
『여 학교를 마치고 10년 전 해태 제과에 입사했을 때는 평범한 직장 여성의 하나 였죠.그런데 3년 후 대의원이 되고 그 다음해 교선 부장이 되면서부터는 노동 운동에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69년12월 화학 노조 본부의 부녀 부장으로 일하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고생하는 근로 여성을 위해 평생 일하겠다는 사명감을 느끼고 있어요.』 화학 노조의 백화자 부녀 부장은 4만5천명 조합원 중 1만5천명에 달하는 여성 회원들이 어떤 문제에 직면하고 있는 가를 찾아내고 그 해결을 위해 늘 바쁘게 일하고 있다. 노조 임원들의 봉급은 노조 성격과 그 자신의 경력에 따라 다른데 백화자씨는 3만원 정도를 받고 있다.
『화학 노조의 경우에는 보통 중졸 정도의 학력들을 가지고 있어요. 나이들도 어리고 서울·부산 등의 대도시에선 고향 떠나 자취하는 사람들이 많죠. 현재 근로 여성으로서 찾아야 할 권리뿐 아니라 이들이 장래에 행복한 가정의 주부로 살아갈 수 있도록 보호해야 한다는데 더욱 마음을 쓰고 있어요.
그러나 근무를 3교대, 2교대로 하는데가 많아서 교양 강좌 한번하는데도 힘이 들죠. 남녀차별은 직종·초봉 수준에서는 물론 정기적으로 실시되는 봉급 인상률에까지 미치지만 여성 근로자들은 묵묵히 참고만 있어요.
이들의 자각을 끌어내는게 노조의 임무라고 생각하지만 힘이 들죠.』 백화자씨는 『기업주와 남성』이중의 대상을 설득해야 하는 어려움을 얘기한다. 그러나 수많은 적을 가진 미개척 분야의 일인만큼 보람도 크다면서 생각 있는 여성들의 진출을 권하고 있다.

<장명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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