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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7)제자 윤석오|<제26화>경무대 사계(34)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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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취미·기호·습성>
이 박사는 외국 손님을 초대할 때도 항상 한식으로 음식을 내놓았는데 여기엔 이 박사 나름대로 생각이 있어서였다.
한번은 이 박사에게 『왜 외국 손님에게도 한식을 대접합니까』하고 물었더니 『그 사람들, 우리나라 고유의 음식을 먹어봐야 인상이 깊이 남을 게 아니냐』고 했었다.
외국 손님에게 내놓는 음식 가운데는 산나물은 물론이고 콩나물, 숙주나물까지 있었다.
외국 손님을 초대하더라도 조찬은 없었고 간혹 오찬이 더러 있었지만 대부분 만찬이었다.
외빈 초대의 경우, 음식은 항상 경무대 주방에서 만들었다. 그러나 초대받는 사람이 5명을 넘으면 주방 손이 모자라 반도 「호텔」에서 「쿡」을 데려와 음식을 장만했다.
「아이스크림」이나 「디저트」 등 후식은 모두 반도 「호텔」에서 만들어 공급했다.
이 박사는 담배는 물론 술도 거의 입에 대지 않았다. 그러나 밤에 잠이 잘 오지 않는다든가, 괴로울 때는 취침 전에 「코냑」을 한 잔씩 들었다.
이 박사는 담배를 태우지 않았으나 외국 손님 접대용으로 한동안 전매청에서 무궁화「마크」가 인쇄된 특제 담배를 만들어 보냈었다. 처음엔 비서실에도 이 특제 담배를 가져 왔었으나 이박사가 『국고손실』이라고 야단을 치는 바람에 끊어졌다.
이 박사가 담배를 안 피웠기 때문에 비서실 직원 가운데도 담배를 끊은 사람이 있었다. 비서들이 담배를 끊은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그것은 「마담」이 김치 냄새와 마찬가지로 담배연기를 아주 싫어했기 때문이다. 비서 가운데는 담배를 많이 피운다고 「마담」에게 꾸지람을 들은 사람도 있었다. 「마담」은 심지어 『담배를 많이 피워 손가락이 노란 사람은 출세 못한다』고까지 말할 정도였다.
「마담」은 담배연기·김치 냄새뿐만 아니라 된장·멸치젓 등 여하간 냄새나는 것은 무척 싫어해서 신경들을 많이 썼다.
청소를 깨끗이 해야하는 것은 물론이고 비서들도 항상 옷을 정결하게 입고 목욕도 자주하는 습관이 길러졌다.
이 박사는 초기에는 한복을 자주 입었으나 대부분 양복을 입었다. 한복은 대님을 매는 것이 불편하다고 대님을 차지 않고 양복식으로 개조해서 입기도 했는데『국민들도 간편하게 입도록 하라』고 의견을 말한 일도 있었다.
평소 경비 드는 것을 싫어하고 검소한 생활을 솔선수범 했던 이 박사는 양복도 모두 합해야 20벌이될까말까 했다. 이박사의 양복은 서상국씨란 사람이 재단을 해서 지어왔다.
이 박사는 구멍이 나고 해진 모자도 버리지 않고 사용했다. 헌 모자도 쓸 때가 있다면서 버리지 못하도록 했는데 낚시질을 갈 때는 이 모자를 이용했다. 내 기억으로는 이 박사가 모자를 셋 가지고 있었는데 두 개는 낡은 것이었다.
이 박사의 이발은 초기엔 외부에서 사람을 불러다 했는데 누군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54년께 경무대 경찰서 구내에 이발관이 생기고 나서부터는 거기서 했다.
구내 이발관에는 이발사가 세 사람 있었는데 그 중 박승만씨가 이박사의 전속 이발사였다.
자식이 없었던 탓인지 이 박사는 동물들을 무척 좋아했다. 「해피」「스마티」 등 검은 반점이 있는 발바리를 특히 귀여워했고 개들도 이 박사를 무척 따랐다.
이박사가 나들이를 갖다 돌아오면 자동차 소리만 듣고도 쫓아 나갔다.
이 발바리는 이박사가 정부 수립 전 마포장에 머무르고 있을 때 만송이 가져와 기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 후 경무대에서 4대째 새끼를 낳았다.
이박사가 하야한 후에도 발바리중 세 마리를 이화장으로 데려갔다. 「하와이」로 망명한 후 에도 이 박사는 개소식을 물어오기도 했다. 망명 중 「하와이」에서 주치의가 개를 보내줘야 이 박사가 마음을 붙여 건강을 회복하는데 도움이 되겠다고 편지를 보내온 일도 있다.
이 박사는 또 자신이 직접 경무대 뒷산에 꿩을 수십 마리 부화해서 키웠다. 나중 윤보선 대통령이 들어간 이래 없어졌다는 얘기를 들었다.
55년으로 기억되는데 공진환씨가 사슴 두 마리를 이 박사에게 선물을 했다. 나중 네 마리로 늘어났는데 이 박사는 사슴도 퍽 좋아했다. 그래서 그런지 이 박사나 담당자가 먹이를 주면 잘먹고 했지만 다른 사람이 먹이를 주면 도망을 쳤다.
이 사슴도 4·19후 이 박사가 주인에게 돌려주라고 해서 공씨에게 반환했다.
이 박사에게 새를 새장에 넣어 보내오는 사람도 있었는데 그 때면 이 박사는 장 속에 갇힌 새를 보고 『자유를 구속하면 동물이라도 싫어하지』라면서 놓아주도록 지시했다.
이것은 이 박사가 동물을 사랑한 점을 보여주는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이박사의 성품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했다.
이 박사는 한 주에 1∼2회씩 비원이나 경회루에서 낚시질을 하든가, 진해에서 바닷물에 낚시를 드리우기를 좋아했다. 고기를 잡더라도 돌아올 때는 모두 놓아주었다.
이 박사는 음악도 퍽 좋아하는 편이었으나 바쁜 국사 때문에 이를 취미로까지 삼을만한 여유가 없었다. <계속> 【김상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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