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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 지시 따라 민노당 후보로 총선 출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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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건 재판이 열린 21일 법무부 호송차량이 수원지법에 들어서고 있다. [안성식 기자]

이석기(51) 통합진보당 의원 내란음모 사건의 내부 제보자인 이모(46)씨는 21일 “지하혁명조직(RO·Revolution Organizaiton)이 총선·지방선거 때 지침을 내려 조직원 가운데 옛 민주노동당 출마자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날 수원지법에서 열린 이 의원 사건 6차 공판에서다. 이씨는 지난 5월 12일 서울 합정동 마리스타수사회에서 열린 RO모임 대화 내용 등을 녹음해 국정원에 건넨 인물이다.

 이씨는 “2000년 민노당 창당을 계기로 RO가 본격적으로 선거활동에 뛰어들었다”며 “RO 조직원이 선거에 나갈 경우 조직의 승인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 자신이 “2008년 총선 땐 상부(RO)의 지시에 따라 경기도 수원지역에서 민노당 후보로 출마했다”고 증언했다. 이씨는 또 “올 3월 13일 수원의 한 음식점에서 홍순석(48) 통진당 경기도당 부위원장이 ‘현 정세가 일촉즉발 전쟁발발 위기’라며 ‘3대 지침’을 내렸다”고 했다. 북한이 정전협정 백지화를 선언한 8일 뒤였다. 3대 지침의 내용은 전쟁에 대비한 조직을 시급히 만들고, 광우병 사태 때처럼 대중선전전을 강화하며, 전쟁 발발 전에 미군기지 등 주요 시설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었다. 이씨는 “5월 12일 회합 때 조직원들이 각자 파악한 내용을 발표한 내용을 들으며 ‘나뿐 아니라 모두에게 지침을 내렸구나’라는 생각을 했다”고 덧붙였다.

 이씨는 또 RO가 진보연대를 강화하기 위해 각종 시위와 집회에도 참여했다고 공개했다. “2008년 광우병 사태 촛불시위, 2009년 쌍용차 옥쇄파업 때 조직원들이 시위 인력으로 활동했다”는 것이다.

 자신의 이력도 설명했다. 대학교 때 학생운동을 하며 주체사상을 공부했고, 1990년대 중반 졸업 후 진보성향 청년단체에 가입해 활동했다. 홍 부위원장과 한동근(46) 전 통진당 수원시 위원장은 대학 동문이어서 RO 조직 가입 이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다.

 RO에 가입한 것은 2004년 말이라고 밝혔다. 그는 “RO 상부에서 내 조직명을 ‘남철민’이라고 부여했다”며 “대부분의 조직원이 보안을 위해 실명을 쓰지 않고 조직명 등을 사용한다”고 말했다. 재판부가 “RO라는 이름의 조직이 있느냐”고 묻자 이씨는 “자신을 RO 조직원으로 가입시킨 사람으로부터 들은 적이 있고 이후에도 한두 차례 들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보통은 ‘산악회’나 ‘내일회’, ‘O’라고 불렀다”고 덧붙였다.

 이씨는 “RO가 북한 대남혁명전략에 따라 남한사회의 변혁을 목적으로 하는 지하혁명조직이 맞느냐”는 검찰 질문에 “맞다”고 대답했다. 이어 “RO는 북한의 김일성 주석을 수(首)로 한다”며 “RO 조직원에 대한 사상학습 등에서 이 의원이 남쪽의 정치지도자라는 말을 들었다”고 진술했다. RO 조직원 가입 절차에 ‘우리의 수(首)가 누구인가’ ‘나의 주체성은 무엇인가’ 등의 질문이 등장하며, 답은 각각 ‘김일성’과 ‘혁명가’라고 했다. 또 “보통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믿기 힘든 이야기일 것”이라며 “RO를 상식적인 잣대로 판단해선 안 된다”는 말을 몇 차례 반복했다.

 이씨는 이 의원이 RO 총책이라는 사실을 올해 5월 10일 곤지암청소년수련회 1차 비밀회합과 이틀 뒤 마리스타수사회 2차 회합 때 확신하게 됐다고 증언했다. “이 의원이 조직원이라는 것은 전부터 알았지만, 5월 모임에서 이 의원의 역할과 다른 조직원을 대하는 태도 등을 보고 총책이라 확신하게 됐다”는 것이었다.

 이씨는 이날 2010년 지방선거 당시 수원시장 야권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이면 합의가 있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민주당 후보를 단일 후보로 추대한 뒤 (선거에서 이기면) 친환경급식지원센터 등을 민노당에 맡기기로 했다는 얘기를 이 고문으로부터 들었다”고 진술했다. 수원시는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일방적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이씨는 여러 차례 “이 자리에 서기까지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RO를 등지고 국정원에 제보하게 된 경위에 대해서도 밝혔다. “2009년 10월 조직으로부터 사상검증을 받은 뒤 ‘20년간 운동해온 나를 시험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회의가 깊어졌다. 2010년 3월 천안함 사건을 보고 제보를 결심했다.”

 이날 이씨에 대한 증인 신문은 검찰 측만 했다. 신변 안전을 우려해 이 의원 등 피고인들과 이씨 사이에 가림막을 쳤다. 재판부와 검찰, 변호인단만 이씨를 볼 수 있었다. 이석기 의원은 제보자 증언이 이어지는 동안 눈을 감고 담담한 표정으로 증언을 들었다.

수원=윤호진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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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발발 대비한 3대 지침 내려
RO의 수(首)는 북한의 김일성
이석기가 총책인 것 올 5월 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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