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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한·일 협상으로 풀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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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김영원
서울대 행정대학원 초빙교수
전 주네덜란드 대사

헌법재판소는 2011년 8월 30일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정부의 부작위(不作爲·마땅히 해야 할 것으로 기대되는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가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이 문제가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에 의해 해결됐는지 여부에 대한 양국 간 입장 차이는 분쟁에 해당하므로 정부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일본 정부에 외교교섭 및 중재회부를 요청해야 하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이 헌법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이후 우리 정부는 일 정부에 두 차례에 걸쳐 외교교섭을 공식 요청하는 한편 이와는 별도로 정상회담 및 외교장관 회담 등의 계기를 이용해 일측의 자세 변화를 요구해 왔지만 해결은 요원해 보인다. 이 문제에 대한 국민의 관심과 궁금증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겠다. 하나는 ‘과연 정부가 헌재 결정 이행 등 문제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이다. 다른 하나는 ‘도대체 위안부 피해자들이 한 분 두 분 세상을 떠나시는 마당에 언제까지 일측의 부당한 태도를 참으며 기다려야 하며 이렇게 해결이 지연되는 상황에서 어떻게 위안부 피해자들의 한을 풀어주겠다는 것인가’이다. 더 나아가 ‘왜 일본은 독일과 달리 잘못된 역사인식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지난해까지 외교부에서 한·일 청구권협정대책 전담대사로서 위안부 문제를 담당했다. 이 어려운 숙제와 관련해 앞에서 제기된 국민 궁금증에 대해 다음과 같이 생각해봤다. 첫째, 그간 우리 정부는 외교교섭을 해왔으나 이를 통한 해결이 어려울 것에 대비해 다음 단계인 중재회부도 신중히 검토해 온 것으로 안다. 그러나 중재도 일본이 적극 협조하지 않는 한 실효성이 없을 것이다. 설사 중재가 실현돼 65년 협정과 위안부 문제가 무관하다는 결정이 내려지더라도 바로 일측의 법적 책임과 배상으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는 데 어려움이 있다. 이 문제는 우리 정부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어려운 과제임을 이해해야 한다.

 둘째, 정부는 비록 시간이 걸리더라도 위안부 피해자의 요구가 철저히 실현될 수 있는 방향으로 해결을 추구하고 있다. 정부의 이러한 방향감과 노력을 정당하게 평가하는 게 필요하다. 이런 관점에서 헌재 결정 이행 문제는 정부가 국익을 위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추진해야 할 것이다. 정부가 일본에 외교교섭을 제의하고 중재 문제를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는 것 자체가 헌재 결정을 충실히 이행하려는 과정으로 봐야 할 것이다.

 셋째, 문제 해결이 지연되는 상황에서 정부와 국민이 힘을 합해 위안부 피해자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개발해야 한다. 동시에 위안부 문제의 불법성을 홍보할 국제 연대를 구축, 일본이 더 이상 강제동원 사실을 부인하고 국가책임을 회피하기 어려운 환경을 조성하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

 넷째, 우리 정부의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연대 구축 노력은 전시 여성에 대한 성폭력의 불법성을 지적하는 것은 물론 약자인 여성의 인권보호를 위한 한국 정부의 국제적 기여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한국 정부는 위안부 문제를 세계여성인권 보호라는 보다 큰 틀에서 미래지향적으로 접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현재 국제인권 세미나 개최, 유엔 인권위원회 등 인권 관련 국제기구에서의 문제 제기와 미국 등 많은 나라에서의 기림비 제막 및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의회 결의안 채택, 세계 각국의 역사 및 사회 교과서의 위안부 문제 기술 증가 등으로 일본에 대한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 정부는 이렇게 조성된 유리한 환경을 바탕으로 일본 정부와 양자협상을 통해 궁극적인 해결방안을 모색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김영원 서울대 행정대학원 초빙교수
전 주네덜란드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