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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속재판·법익보호에의 접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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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현행 민·형사소송법을 개정 작업중인 대법원은 지금까지 모아진 법원·검찰·변협의 의견을 토대로 오는 6월말까지 시안을 만들기 위한 마지막 손질을 하고 있다. 지난 1년 동안 민·형사소송법의 개정에 대한 법원·검찰·변협 등 광범위한 의견을 수집해 온 대법원은 사법제도개선 심의회(위원장 손동욱 대법원 판사) 안에 민·형사소송법 개정소위원회(위원 이영섭 대법원판사, 기세훈 서울고법원장, 김종경 법무부 법무 실장, 김제형 변호사)를 두고 각계의 의견을 종합 정리 중에 있다. 일본법이 모체가 되어 지난 54년과 60년에 각각 제정 공포된 현행 민·형사소송법은 5·16혁명 직후인 61년과 63년 두 차례에 걸쳐 부분적인 개정이 있었으나 이번 경우에는「피고인 구속기간 제한 철폐」 「민사재판에 있어서의 재판부 직권주의 강화」안 등이 들어 있어 앞으로 나올 시안이 주목되고 있다.
민·형사 사건의 재판심리 방법을 규정한 두 절차법을 개정하려는 움직임은 70년 말 각급 법원장 회의 때 논의된 후 71년 초 민 대법원장이 산하 자문기관인 사법제도 개선심의위원회에 지시함으로써 구체화된 것인데 그 동안 모아진 각계의 의견을 토대로 소위원회에서 시
안을 작성, 사법제도개선 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대법원 판사회의에서 확정되면 국회에 개정 건의안을 내게 된다.
지금까지 모아진 각계의 개정 의견은 민사소송법의 개정조항이 23개(법원 19, 검찰 2, 변협 2) 형사소송법 개정조항 30개(법원 12, 검찰 12, 변협 6)로 모두 몇 개 조항에 이르러 적지 않은 규모임을 보여주고 있다.
각계의 개정의견을 살펴보면 민사소송법의 경우는 재판의 신속과 피해자의 권리보전에 중점을 두어 현행 당사자주의의 소송구조에다 재판부의 직권주의를 강하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상소권행사의 남용을 막기 위해 항소·상고장 심사 권을 원심재판장에게 주는 안(서울고법·춘천·부산지법 제출) ▲쌍방 불출석 등의 송달을 받고도 2주일 안에 당사자의 어느 편에서도 기일지정 신청이 없는 때는 소 취하된 것으로 본다는 안(변협제출) ▲변론능력이 없는 자에게 법원은 변호사선임을 명하고 이에 불응할 때는 직권으로 변호인을 선정해야 한다는 안(춘천지법)
▲2주일의 상소기간을 1주일로 단축할 것(서울고법) ▲일본민사소송법과 같이 어음 및 수표소송에 관해서는 특칙을 신설할 것(검찰) 등이 주요 골자를 이루고 있다.
형사소송법의 경우는 구속피의자나 피고인의 인권옹호와 소홀한 재판으로 인한 인권침해를 막기 위해 ①심급 별 구속기간을 현재보다 2개월씩 연장할 것(서울고법) ②무기징역· 사형에 해당하는 사건은 구속기간제한을 철폐한다(광주고법)는 안과 ③검사는 구속적부심사신청이 있을 경우 이에 대한 법원의 결정이 있기 전에는 구속기소하지 못한다(변협) ④구속적부심사 신청을 받은 법원은 48시간 이내에 처리해야 한다(변협) ⑤법원은 구속적부심사의 심문기일에 구속한자가 출석하지 않거나 기록을 제출하지 않을 때는 피구속자를 석방해야 한다 (변협)는 등의 이른바 검찰의 전격기소방지책이 들어 있으며 ⑥보석허가결정 등 법원의 석방명령에 대해 검사에게 즉시 항고 권을 주어야 한다는 검찰 의견도 나와 있다.
사법제도 개선 심의위원 겸 민·형사소송법 개정 소위원인 기세훈 서울고법원장은 『이번 개정작업이 현행 민·형사 소송구조를 근본적으로 개혁하는 전면개정이 아니기 때문에 공청회를 열지 않고 6월말까지 시안이 작성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으나 제출된 개정의견의 중대성으로 보아 국회의 통과를 볼 때까지 찬·반의 큰 논란이 따를 것으로 보여지고 있다.
가장 큰 논란의 대상으로 「피고인의 심급별 구속기간연장 및 구속기간제한 철폐」 문제가 떠오르고 있다.
법원 측에서는 동백림 공작단 사건과 같이 피고인 수가 많고 증거와 기록이 방대한 사건을 재판하면서 구속기간에 쫓겨 충분한 심리를 하지 못한 애로를 타개하기 위해 법개정을 요망
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대부분의 재야법조인과 일부만사들까지도 장기구속으로 인한 피고인의 인권침해를 염려하고 있다.
실체적 진실발견을 위한 신중한 재판에 못지 않게 된 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것과 같이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침해돼서는 안 된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또 변헙이 제출한 검찰의 전격기소 방지책과 법원의 석방명령에 대해 검사에게 즉시 항고 권을 주어야 한다는 검찰의견은 각각 상대방을 불신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이에 비해 민사소송에 재판부의 직권주의를 강화하는 방안은 당사자 한쪽의 고의적인 재판지연을 막고 신속한 피해자의 권리보전, 소송내용 보다는 소송기술 여하에 좌우되기 쉬운 현재의 재판과정에 법률지식이나 경제적으로 약한 위치에 있는 당사자를 보호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되고 있다.
그러나 민사소송에 있어서의 재판부 직권주의 강화문제도 현행 당사자주의체제를 크게 변화시켜서는 안 된다는 신중론이 뒤따르고 재판의 신속화만을 내세워 졸속한 심리와 상소권행사 제한 때문에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침해돼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강력하다.
일부 재야 법조인과 법관들은 법개정의 목적은 좋으나 졸속한 개정으로 인한 부작용이 있을 것을 크게 우려, 『법개정보다는「운영의 묘」로써 애로점을 타개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 같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서울형사지법 유태흥 수석부장판사·김영준 부장판사는『운용만 잘된다면 구태여 현행 민·형사소송법을 개정할 필요가 없다』고 밝히고 구체적인 실례로 피고인 구속기간제한 철폐여부문제는 어느 쪽이 피고인의 인권옹호에 맞는지 명확한 선을 긋기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양윤식 대한변협회장도 재판의 신속화만을 위해 민·형사사건의 당사자들의 상소권이 제약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어떤 법률개정도 신중성이 요청되지만 민·형사소송법은 모든 재판의 근간을 이루는 절차법이기 때문에 더욱 신중한 검토가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심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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