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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지에 몰린 「브란트」 연정 <서독>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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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근소한 의석 차이로 정권을 유지하며 「오스트·폴리티크」(대 동구 정책)를 추진해 온 서독의 사민·자민 연립 정부는 23일 「바덴뷔르템베르크」주 의회 선거에서 패배하고 자민당 의원 1명이 이탈, 야당인 기민당이 현 내각에 대한 불신임안을 27일 의회에 제출하기로 결정하여 정권 존립의 가름길에 서게 됐다.「바덴뷔르뎀베르크」주 의회 선거는 이 지방이 전통적으로 보수성이 강해 사민당의 열세는 예기돼 온 것이었으나 「브란트」 정권의 내외 정책에 대한 국민의 인기를 점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시 돼 왔었다.
68년 선거에서 29%를 득표했던 사민당은 이번에 37·5%를 얻어 지지표가 늘기는 했으나 연립 정당인 자민당이 5%가량 줄고 오히려 기민당이 44·2%에서 53%로 늘어나 「브란트」 정권에 대해 정치·심리적인 면에서 큰 압박을 주게 된 것이다.
또 4백 96석의 하원 의석 중 과반수인 2백 49석에서 1표 넘는 2백 50석으로 정권을 잡아온 「브란트」 연립 내각은 자민당 의원 1명이 이탈, 기민당에 입당할 뜻을 밝힘으로써 여야의 의석 수는 2백 49 대 2백 47로 좁혀져 위기에 몰리고 있다.
「브란트」 내각의 이러한 위기는 정권 자체의 위기일뿐더러 「브란트」 수상에 의해 지금까지 추진되어 온 「오스트·폴리티크」의 파탄 위기를 뜻한다.
독·소, 독·파 조약의 서독 의회에서의 비준은 우선 연방 하원에서 단순 과반수로 가결되면 연방 상원으로 이송되어 역시 과반수의 찬성으로 가결, 발효하게 돼 있다.
그러나 이번 「바덴뷔르텐베르크」주 의회에서의 기민당 승리로 각 주정부 대표로 구성되는 연방 상원의 의석수가 기민당 21, 사민당 20으로 확정되어 비준안이 상원에서 부결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이런 경우 비준안은 하원에서 다시 최종 표결에 넘겨지는데 이때에는 단순 과반수가 아닌 재석 의원의 과반수인 2백 49표가 필요하게 된다.
현재 사민·자민 연립 정부는 이 2백 49석을 유지하고는 있으나 오래 전부터 「브란트」의 「오스트·폴리티크」에 회의를 품어 온 2명의 자민당 의원의 태도가 모호하여 「브란트」 내각에 큰 불안을 주고 있다.
야당인 기민당이 이 기회를 포착, 자민당 의원 1∼2명의 이탈을 기대하며 26일부터 심의되는 예산안을 두고 현 「브란트」 정권에 대한 불신임안을 27일 제출하기로 결정했다.
기민당이 독·소, 독·파 조약으로 「브란트」 정권에 대한 불신임을 간접적으로 표시하지 않고 예산안을 대상으로 불신임안을 내놓겠다는 것은 「동방 조약」이 부결됐을 경우 「브란트」 정권의 의회 해산 가능성을 피해 총선으로 대결하느니 보다는 오히려 불신임 투표로 정권을 장악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브란트」 수상은 비준안이 부결될 경우 신임투표를 요구할지는 불확실하나 만약 이럴 경우 「브란트」 정권으로서도 타격이 크겠지만 최근(3월)의 여론 조사에서는 기민당 49%, 사민당 45%, 자민당 4%, 기타 2%로 여야의 지지율이 백중, 기민당으로서도 자신할 수 없는 처지에 있다.
따라서 기민당은 국내외로 「브란트」 정권의 큰 업적으로 평가되고 있는 독·소, 독·파 조약으로 대결하기보다는 물가 상승, 사회제도 개혁 부진, 사회 불안으로 연결되는 내정 및 예산 문제로 「브란트」 연립 내각을 궁지에 몰아 넣고 있다.
따라서 「브란트」 내각의 존립은 태도가 불분명한 2명의 자민당 의원에 달려 있어 이들의 거취가 크게 주목되고 있다.
사민·자민 연립내각이 붕괴될 경우 「오스트·폴리티크」를 바탕으로 지금까지 추진되어 온 갖가지 「유럽」 재편 계획은 일단 원점으로 되돌아가게 될 것이다.
우선 동서 긴장완화를 위해 모색돼 오던 「유럽」 안보회의 구상, 「베를린」 4대국 협정의 정식 조인은 물론 미·소간의 전략 핵무기 제한 회담에도 큰 영향을 주어 동서 화해 「무드」는 일단 동결될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이는 또한 소련 지도층과 동구, 특히 동독의 대 서구 강경론자의 입장을 유리하게 해 주어 협상 재개가 더욱 어려워질 가능성도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아 동방 조약이 당장 발효하지는 못하고 서독에 기민당 내각이 출현하더라도 소련으로서는 기민당 정권을 상대로 서독과의 관계 개선을 꾀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에 있다. 소련으로서는 대 중공 관계를 비롯, 낙후한 기술을 서구로부터 도입해야 할 필요성이 시급하기 때문이다.
한편 서독으로서도 대소 불신감, 통일의 소망에 젖어 소련·동구 제국과의 관계 개선 기회를 놓칠 것인가, 좀 불만이라도 현상을 승인하고 적대 관계를 깨뜨려 긴장 완화, 교류 확대로의 길을 택할 것인가의 기로에 놓여 있다.

<김동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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