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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나슬루」의 비극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애써 산에 오르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의무인가? 양식 있는 일인가? 납득할 수 있는 것인가? 뭔가 잘못된 것은 아닌가?』
영국의 권위신문「더·타임스」지는 이렇게 표제를 붙인 적이 있었다. 1865년「빅토리아」조의 유명한「알피니스트」「에드워드·윔퍼」일행이「마타호른」봉 하산 길에 조난을 당했다. 그때 「자일」이 끊어져 4명의 동료를 잃었다.
「더·타임스」 지가 그와 같은 질문을 한지 50여 년만에 어느 산악인은 이렇게 대답했다.
『비코즈·이츠·데어』(거기 산이 있기 때문에). 이 말은 1924년「에베레스트」에서 그 역시 사라진「조지·리·말로리」의 명언이다.
미국작가「어니스트·헤밍웨이」의 유명한 단편소설『「킬리만자르」의 눈』은 이렇게 시작된다. 『9700여「피트」의 눈 덮인 산정에 얼어붙은 표범의 시체가 하나 있다. 그 표범은 무엇 때문에 거기에 올라가 죽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헤밍웨이」도 신비로운 의문에 싸여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인류역사의 면면한 길을 더듬어보면 인간의 부단한 모험과 도전이 숨어 있었다. 그것 없이 이루어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모든 모험은 곧 그것만으로 성취되기 힘든다.
앞서간 사람들의 피눈물나는 행적 위에 끊임없이 거듭되는 의지와 노력에 의해서 기어이 성취된다. 한발 짝 두 발짝 지리 한 행진일 수도 있다. 그러나 회의하며 전진하고 또 전진한다.
인간이 산에 오르고, 또 모든 위험을 무릅쓰려는 것은 그와 같은 생명감의 표현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런 장렬한「휴먼·드라마」를 보여주었다.
「마나슬루」에 도전한 한국의 청년들도 말하자면 이런「휴먼·드라마」의 주인공들이다. 이들은 8156m (해발) 의 산정에 감연히 오르려 했다.
「마나슬루」봉은 눈과 창빙으로 덮인「히말라야」제8의 고봉이다. 이번에 이 산 봉에서 조난을 당한 김호섭씨 일행은 또 하나의 간절한 소망이 있었다. 지난해 이 고산에의 등반 도중 조난을 당해 목숨을 잃은 그의 동생 시체를 발굴하려는 것이었다. 3형제가 모두 결사의 각오로「마나슬루」정복에 나섰었다. 그러나 조난은 거듭되어 그들 5형제 중 두 형제의 생명을 앗아갔다. 눈물겹도록 비 정의 산이다.
사진으로 보는「마나슬루」봉은 날카롭기 그지없다. 눈(설)이 무너져 칼날처럼 서슬이 선 계곡하며, 창창한 하늘 끝에 솟아오른 산정하며, 깎아 세운 듯한 눈의 절벽하며…. 어찌 인간의 조그만 심장으로 저 아 슬한 산을 정복 할 수 있을까 싶다. 그러나 거기에 오르려고 이들은 결연히 나섰었다. 정복과 성취는 비록 이루지 못했어도, 그들의 어귀 찬 정신이야말로 우리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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