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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국격 걸린 필리핀 파병, 국회 동의 서둘러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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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정용수
정치국제부문

수퍼 태풍 하이옌이 덮친 필리핀의 피해가 눈덩이처럼 늘어나고 있다. 사망자와 실종자만 5000명을 넘었고 재산피해는 집계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최대 피해지인 타클로반 지역 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버리고 탈출하기 바쁘다. 자연히 해외 각국에서도 구조대와 군을 파견해 생존자 수색에 나서며 도움을 주고 있다. 우리나라의 조계종을 비롯해 국내 백화점과 기업들도 성금모금에 동참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 차원에선 지난 16일 수송기 2대를 지원한 게 고작이다. 지난 12일 자위대 선발대를 보냈고, 1000명의 병력을 추가로 파견키로 한 일본의 발 빠른 모습과 대조적이다. 물론 우리 국방부도 앞으로 공병대와 의료팀 400여 명을 파병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실무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긴급구조 시간은 놓쳤지만 재건활동에라도 참여하겠다는 뜻이다. 필리핀은 6·25전쟁 때 7420여 명을 파병해 대한민국을 지키는 데 힘을 보탰다. 최근에는 한국이 생산하는 T-50 훈련기 구입 의사도 밝혔다. 외교와 경제적으로 교류가 늘고 있고, 한류 열풍으로 문화적으로도 가까운 나라다.

 그런 필리핀을 위해 이젠 우리가 나서야 할 때지만 장애물이 있다. 우리 군을 해외에 파병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2009년 유엔의 평화유지활동 참여에 관한 법률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여기엔 재난지역에 대한 파병 내용이 없다. 유엔의 요청이 있을 경우 전쟁이나 분쟁지역에 파견하는 내용이 전부다. 따라서 이번처럼 재난지역에 긴급히 군을 투입해야 할 때는 ‘국회는 국군의 외국에의 파견에 대한 동의권을 가진다’는 헌법(60조 2항) 조항에 따라 국회 동의 절차를 밟아야 한다.

 그러나 지금처럼 여야 대치가 심화한 상황에서 신속한 국회 동의가 이뤄질 수 있을지 걱정이다.

 국방부는 우선 법적 테두리 안에서 필리핀 원조와 재건을 위한 파병 준비에 박차를 가하는 동시에 국회에 협력을 적극 요청해야 한다. 국회 역시 가급적 이른 시일 안에 필리핀 파병안에 동의해 줘야 한다. 국가기관 대선개입 의혹에 대한 특검을 하느냐 마느냐 같은 국내 문제에 발목이 잡혀선 안 된다. 긴급 구조와 재난에 도움을 주기 위한 파병은 국회 동의를 받지 않아도 가능할 수 있도록 법률을 정비하는 것도 검토해 볼 만하다. 일본은 이미 1992년 자위대의 긴급원조대 파견이 가능토록 법률을 개정한 상태다. 재난 구호와 재건은 도움이 필요할 때 손을 잡아주지 못하면 소용이 없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인도적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에 제때 다가갈 수 있어야 대한민국의 국격도 올라갈 것이다.

정용수 정치국제부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