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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쌀 막걸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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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오늘은 춘분.
예 같으면 술을 빚기 시작할 때가 돌아온 것이다. 동국세시기에도 보면 술 이름이 가장 많이 나오는 것이 3월이다.
우선 막걸리의 일종으로 찹쌀로 담근 소국주가 있다. 충남 서천 한산의 명주였다. 진달래꽃을 넣어서 빚은 두견주가 또 있고, 복숭아꽃을 넣어서 빚은 도화주, 소나무의 새순을 넣어서 빚은 송순주가 있다.
술집에서는 또 여름에 팔 과하주들을 만들기 시작할 때였다.
이것은 곧 소주와 약주를 섞어서 빚은 술을 말한다.
소주 중에서도 특히 지금 서울 공덕동 자리 옹막 마을에서 빚어낸 천백독의 술이 유명했다. 이 술을 삼해주라 했었다.
정월 상해일에 찹쌀 가루로 죽을 쑤어 식힌 다음 누룩 가루와 밀가루를 섞어서 독에 넣고 중해일에 또 찹쌀 가루와 햅쌀 가루를 쪄서 식힌 다음에 독에 넣고, 하해일에 다시 또 흰쌀을 쪄서 식힌 다음에 독에 넣어 익힌 술이다.
그러고 보면 옛날에는 지방마다 특산주가 있었던 모양이다. 우선 평안도 지방에는 감홍로와 벽향주가 있었다. 감홍로란 지치 뿌리를 꽂고 꿀을 넣어 밭은 소주로, 빛이 붉고 단 맛이 들었다. 벽향주는 또 맑고 향기가 짙은 술이었다.
황해도 지방에는 이강주라 하여 배나 생강을 넣어 만든 술이 있었다. 호남 지방에서는 죽력고와 계당주가 별미가 있었다.
죽력고란 푸른 대쪽을 불에 구우면서 받아낸 진액을 섞어서 만든 소주이며, 계당주는 계피와 당귀를 넣어서 만든 술이었다. 충청도에는 또 노산춘이란 술이 있었다.
3월에 빚는 술엔 또 사마주라는게 있었다. 네 번의 오일을 이용해서 거푸 담그면 봄이 지나자 곧 익고, 1년이 넘어도 썩지 않는 술을 말하는 것이었다.
사계를 따진다면 보름날에 마시는 이명주라는 청주. 전해에 담갔다가 다음해 중구 날에 마시는 국화주. 햅쌀로 빚어 만든 추석의 술이나 신포주. 또 설날에 마시는 산초, 방풍, 밀감피, 육계피 등을 섞어만든 거소주며 측백 잎들을 섞어 만든 계백주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아진다. 우리 나라엔 정말로 술맛 좋고 살기 좋았던 때도 있었는가 보다.
이제는 술맛이 제대로 나는 술이란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다고 애주가들은 탄식한다. 고장마다 있던 특산주도 이제는 없다. 자연수나 수도물의 맛이 떨어졌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그만도 아니다. 앞으론 막걸리를 밀 대신 보리쌀로 만들도록 하겠다는 얘기가 있다. 맛 보다 그저 취하기만 하면 된다는 뜻과도 같다.
더욱 멋없어 지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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