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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 감사 삼일회계, 140억 물어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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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경영진의 횡령과 분식회계 등으로 인해 상장이 폐지된 코스닥 업체의 소액주주들이 회사 대표 등을 상대로 낸 수백억원대 소송에서 배상 판결을 받았다. 법원은 특히 이 업체의 외부감사를 맡았던 회계법인에 대한 배상 책임도 인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1부(최승록 부장판사)는 컴퓨터 소프트웨어 개발 업체인 포휴먼 주주 김모씨 등 137명이 회사 대표 이모씨와 삼일회계법인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주주들에게 384억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고 17일 밝혔다.

 재판부는 전체 손해액의 80%를 배상하라는 주주들의 청구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이씨는 240여억원을, 삼일회계법인은 140여억원을 배상해야 한다.

 재판부는 삼일에 대해 “외부 감사인으로서 감사 책임을 다 하지 않았다”며 “다만 회사의 조직적인 공모가 있었던 점을 고려해 책임을 손해액의 일부로 제한한다”고 밝혔다. 부실회계에 대한 회계법인의 감사 책임을 엄히 물은 것이다.

 이번 소송에 참가하지 않은 190명의 투자자들이 회사 측을 상대로 별도의 소송을 진행하고 있어 결과가 주목된다.

 포휴먼은 2002년 코스닥에 상장됐다. 2008~2010년 3년 동안 164억원의 순손실을 냈지만 세금계산서·수출입면장 등을 위조하는 수법으로 414억원의 순이익을 낸 것처럼 분식회계했다. 삼일회계법인은 이 기간 동안 회계감사를 맡아 ‘적정’ 의견을 냈다. 적정 의견은 회계법인이 회사 회계정보를 평가하는 등급 중 가장 높다. 삼일 회계법인의 회계사들은 포휴먼의 일본 자회사의 거래처에 대한 실사를 나가 회사 쪽 말만 듣고 엉뚱한 회사를 방문한 것으로 드러났다. 재판부는 “회계사들이 포휴먼이 계약서에도 없는 내용을 핑계로 부실채권에 대한 대손충당금을 쌓지 않았는데도 계약서를 확인하는 등 최소한의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포휴먼은 2011년 상장폐지됐다. 이 대표는 100억여원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돼 형사 재판을 받고 있다.

 삼일회계법인은 재판에서 “포휴먼과 자회사 임직원들이 조직적으로 공모하고 관련 서류를 위조해 분식회계를 발견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매출 대부분이 분기말에 집중되거나 자회사 간에 이뤄져 가공 매출을 의심할 만한 정황이 있었다”며 “직접 최종 거래처에 문의하는 등 심층적으로 감사해야 했다”고 말했다.

 이 대표의 형사 재판에선 포휴먼이 부실감사 대가로 외부감사법 대상이 아닌 계열사에 대한 감사를 삼일회계법인에 맡겼다는 주장도 나왔다. 포휴먼의 한 임원은 법정에서 “외부감사 때마다 회계사들에게 향응을 제공했다. 회계사들을 일본으로 데려가 골프나 온천 여행을 시켜줬다”고 진술했다.

 앞서 서울중앙지법 민사 32부는 지난 9일 삼화저축은행 투자자 24명이 은행과 대주회계법인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은행은 피해액 19억원 가운데 70%, 대주회계법인은 20%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판결했다. 또 영화회계법인(한영회계법인의 전신)은 2004년 SK네트웍스에 대한 부실감사로 은행 등에 약 150억원을 배상했다.

김기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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