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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법4년…국제밀수|「억대밀수」수사서 밝혀진 그 조직과 수법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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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부산항을 중심으로 한 국제밀수조직은 지난 4년 동안 활개를 쳐 왔음이 수사결과 드러나고 있다.
청와대 사정보좌관실과 검찰 합동수사 반이 적발한 이번 밀수사건은 그 조직이 국제적인데다 밀수품 액수나 관련인원수가 지금까지의 것 중 가장 컸다는 것에 못지 않게 세관 등 관계기관의 묵인아래 이루어졌다는 것이 차차 밝혀져 큰 충격을 주고 있다.
25일 상오 총 두목 최완수(43·동아상사 대표)등 일당 19명을 서울로 압송한 수사본부 간부는『이들의 자백내용으로 미루어 밀수조직이 감독관청인 세관·경찰·해운 국 등 관계기관의 묵인 없이는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다는 심증을 굳혔다』고 밝히고 관련공무원들에 대한 수사를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로 온 정보>
▲조사경위=이번 사건해결의 실마리가 된 첫 정보가 청와대에 날아든 것은 지난1월 중순, 사정보좌관실의 모 고위층과 친분이 있는 정보통이 4년 전부터 부산·인천 등지에 정기외항선이 입항하면서 대량의 밀수품을 풀어놓아 국내조직을 통해 전국시장에 공급한다는 것이었다.
이 정보는 특히 이 조직의 친분 등으로 현지 수사관으로는 검거키 어려우니 중앙의 특별수사반파견을 당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명을 받은 서울지검특별수사반(김유후 검사지휘) 12명이 첫 내사에 나선 것이 1월25일. 현지 답사에서 중국선적의「이타이」호를 비롯,「룽창」(용창)·「마스크라인」·「벤라인」·「킨샹」·「오리엔틀」호 등 10여 척의 2천t급 경기외항선이 용의 선박으로 밝혀졌고 특히「이타이」호가 2월7일에 부산에 입항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이타이」호는 부산항에서 하루를 머무른 뒤 부산을 거쳐 인천으로 회항, 수사관들이 뒤를 쫓자 대나무와 「바나나」를 풀어놓은 뒤 16일에는 다시 부산으로 재 입항했다.
부두에서 4km 떨어진 외항에서 만 사흘동안 머무르며 꼼짝도 않던 이북은 20일 상오7시쯤 잠복감시 중이던 수사관들이 현지 수사기관의 검문을 받아 승강이를 벌이는 사이를 이용, 운반책을 통해「롤렉스」시계 1천 개를 넘겨주고 그대로 출항했다.

<철저한 비밀수사>
철저한 보안을 위해 현지수사기관에 조차 알릴 수 없는 사정 때문에 생긴 사고였다.
이어「룽창」호가 21일 하오3시에 부산에 들어왔다. 고급「롤렉스」손목시계2천 개 등 억대의 밀수품이 실려있다는 것을 확인한 수사 반은 즉시 해양대학의 협조를 얻어 수사관을 태운 실습 선을「룽창」호 부근에 접근시키고 주야로 감시했다.
23일 저녁7시쯤 어둠이 깔린 외항으로 밀수운반선 해운 호(7·2t·선주 정지윤) 가 접근, 4상자의 밀수품을 옮겨 심고 부두로 돌아가는 것을 추격, 두 2부두와 3부두사이의 해상에서 해운 호를 덮쳤다. 3명의 수상관이 밀수운반 선에 올라타자 운반 및 경호 책이며 당수4단의 실력을 가진 황인수(32), 고광남(31)등은 주먹과 몽둥이로 수사관들에게 달려들어 격투를 벌었고 그 동안 다른 4명의 하수인들은 밀수품상자를 모두 바다 속에 밀어 넣었다.
조직
수사반의 조사에 의하면 총 두목 최 는 전직 경사를 지낸 경력에 모 수사기관에 근무한 적도 있어 부산 부둣가 일대에서는 널리 알려진 인물.

<통선 선장도 매수>
그가 외국선박에 선 식을 대어주는 선 식 업에 손을 댄 것은 지난 68년 6월. 중구중앙동4가40 2층에 동아 선 식 회사를 차려놓고 겉으로는 선 식 용달업을 하는 채 하면서 실제로는 조직적인 밀수를 해 왔음이 밝혀졌다.
그는 자금 주 박병화(37·삼 신사 시계 점 경영), 운반책 고만수(53)와 판매책 박성국(36·별명「구로 박」)등 참모를 거느리고 있으며, 이들 각자 밑에 20내지 30명씩의 행동대원이 점 조직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수사 반에 의하면「구로 박」밑에는 주먹한번 휘두르면 8명까지 때려 누일 수 있다는 당수 4단의 황 등 폭력배 30여명의 이른바 해상특공대원이 밀수품을 경호하며, 자금책은 부산시내밀수「브로커」와 금은방상인, 암「달러」상인 등 40여명의 자금 루트를 통해 비밀리에 「달러」를 수집, 외항선원 편에「홍콩」등지로 보낸다는 것.
또 운반책은 부산항의 통선 선장 등을 매수, 항 내 선 식 운반을 가장하여 밀수품을 실어 나르는데 외항선에서 부두까지 밀수품을 한번 운반하는데 배 삯이 1만원, 이를 경호하는 특공대원에게 5만원을, 양 륙 후 비밀저장 장소인 시청 앞「오륙도」다방, 부산진구와 영도청학동의 비밀아지트까지 차로 운반하는데 또 5만원을 준다고 한다.

<홍콩 등에 대리점도>
▲수법=밀수품의 발주는 최가 자금책으로부터 받은「달러」의 전부 또는 일부를 출항직전에 외항선원에 넘겨주면 이들은 「홍콩」등지의 대리점 또는 가족들에게 보내는 안부 편지 속에 암호로 미리 주문품을 사놓게 하여 한달 또는 석 달 뒤에 다시 입항할 때 기관실 등에 감춰 갖고 들어오는데 「사례비」조로 1회에 50∼1백만 원씩을 받는다.
보통 한배에 대한 주문량은 10만 내지 15만「달러」상당. 주로 3·75kg당 5천 달러씩 하는 「홍콩」또는 「스위스」제 금괴와 요즘 국내수요가 부쩍 늘어난 고급「롤렉스」손목시계가 인기 품.
일단 양 륙에 성공하면 시계의 경우 광복동 부산전신전화국 옆 골목에 진을 치고 있는 노점상들과 연결되고 전국총판은 서울에 있는 연락 책 김재식(33·수배 중)을 통해 전국적으로 흩어진다. 또 보석 류는 전문「브로커」나 이른바「나까마」들의 손을 거쳐 실수요자에게 넘어가는데 이 책임은「구로 박」이 이끄는 9개조 직의 행동대원들에 의해 철저히 비밀리에 이루어져왔다는 것.
▲문제점=1차로 현지수사를 마친 수사 반은 외항선이 우리 항구에 들어오면 출항 때까지 세관이 승 감하도록 규정되어 있는 점을 지적, 세관원의 묵인 없이는 밀수품 운반이 절대 불가능하다고 잘라 말했다.
조사결과 밝혀진 용의외항선박에도 부산세관 감시 과의 직원이 입항해서 출항 때까지 교대로 승선, 감시해 온 것으로 나타나있다.
그러나 세관원들은 물론 부둣가 일대에서는 외항에 승 감으로 근무하러나가는 것을『장보러간다』는 은어로 통할만큼 톡톡히 재미를 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2단계 수사 착수>
수사 반이 갖고 있는 정보에 의하면 밀수품을 실은 외항선이 입항해서 출항 때까지 승선하는 관계직원들에 쥐어주는 돈이 20∼50만원이며 이는 최 의 조직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이다.
또 밀수품운반에 이용된 통신은 해운 국 허가를 얻어야만 내항과 외항을 연결하는 이른바 해양택시 노릇을 할 수 있는데 이들 조직이 주로 사용한 해운 호 등은 당국의 허가 없이 오랫동안 밀수품을 날라 왔음이 밝혀져 수사관들을 놀라게 했다.
더욱 부둣가의 일개 선 식 업자인 최가 부산의 중심가인 중앙동일대에서 돈올 물 뿌리듯 해 돈 잘 쓰는 멋진 신사로 소문이 나도 누구하나 눈여겨보지 않았음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부둣가에서는『그가 설령 살인을 해도 누가 감히 건드릴 수 없는 배경을 갖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 정도로 군림하고 있었다고 수사반원이 귀띔했다.
지위를 가리지 말고『관련자를 뿌리 뽑도록 하라』는 특명에 따라 2단계수사를 펴고 있는 특별수사반은 수년동안 조직밀수를 가능케 했던 부산항의 의혹을 하나씩 풀어내고 있다.

<정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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