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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아름다워] 유연서 나비엔터테인먼트 대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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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면

유연서 나비엔터테인먼트 대표가 무대에 올라 노래 봉사를 펼치고 있다. 유 대표는 천안지역에서 ‘노래하는 봉사자’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천안에 ‘노래하는 봉사자’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사람이 있어 화제다. 아직 한 장의 앨범도 낸 적 없는 무명 가수지만 지역에서는 유명 가수 못지 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벤트 업체인 나비엔터테인먼트를 운영하고 있는 유연서(50) 대표가 바로 노래로 새로운 세상을 얻은 화제의 주인공이다.

연서씨는 죽고 싶을 만큼 힘들고 어둡기만 한 긴 터널을 지나 나이가 50살이 된 지금에 와서야 ‘인생이 너무 아름답다’라는 행복감을 느끼며 살고 있다. 최근에는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힘들다는 생각보다는 오히려 활기찬 생활을 할 수 있어 요즘이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지금은 유명 가수 뺨 치는 인기로 가는 곳마다 크게 환영 받으며 ‘봉사하는 가수’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연서씨지만 불과 몇 년 전만해도 매일 죽음을 생각했을 정도로 절망스러웠던 때가 있었다. 그래서 연서씨는 노래가 그 힘든 세월을 이겨낼 수 있게 해준 비상구나 다름없었다고 이야기 한다.

 “즐겨 부르는 노래 중에 트로트 가수 유진표씨의 ‘천년지기’라는 노래가 있어요. 그 노래의 가사를 보면 ‘내가 지쳐 있을 때 내가 울고 있을 때 위로가 되어준 친구, 너는 나의 힘이야, 너는 나의 보배야 천년지기 나의 벗이야’라는 노랫말이 있어요. 나에게 그런 벗이라면 바로 노래가 아닐까 싶어요. 사실 그 동안 누구에게도 쉽게 털어놓지 못했던 이야기가 있는데 바로 둘째 아들 이야기예요. 스무 살이 넘어 이제는 많이 좋아졌으니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내도 될 것 같네요.(웃음) 착하기만 했던 둘째 아들이 ‘모야모야병’이라는 희귀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초등학교 때 알게 됐어요. 매일 생사를 넘나드는 힘겨운 삶을 살아야 했으니 얼마나 큰 충격이었겠어요. 수술도 3번이나 했지만 아직까지 모야모야병의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다고 하니 앞으로도 이 몹쓸 병과 함께 살아야겠죠. 하지만 아들이 희귀병과 싸우면서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아프다가도 한번씩 아들이 돌변할 때는 너무 무서웠어요. 누구도 감당할 수 없어서 그때마다 도망치다시피 집을 나가야 했어요. 병마와 싸우느라 성격도 변해 안쓰러웠지만 집안의 물건들을 다 때려 부수는 아들을 볼때면 더욱 가슴이 아팠어요.”

 희귀병으로 고통 받는 아들로 인해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던 연서씨는 지난 2008년 무작정 노래교실을 찾았다. 힘들 때마다 흥얼거리던 노래들이 많이 위안이 됐다는 생각에 잡념을 잊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노래를 선택했던 것이다.

연서씨가 노래교실에서 노래를 배우는 시간은 하루 중 유일하게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자신만의 시간이었다. 또 그런 시간들이 모이다 보니 그저 흥얼거리던 노래 실력은 충남도내 각 시·군에서 열리는 주부가요열창이나 가요제에서 수상의 영예를 안을 만큼 일취월장했고 주변 사람들도 하나 둘 그의 노래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하루하루가 힘든 시간이었는데 제 노래를 듣는 사람들이 ‘잘한다, 잘한다’ 하니 점점 살아가는 의욕이 생기더라구요. 노래를 하는 동안은 그 흥에 취해 심란했던 일들이 하나 둘 사라지는 느낌을 받았어요. 삶의 의욕이 생기니 힘든 일도 헤쳐나갈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솟구쳤어요.”

“지역 어르신께 특별한 이벤트 하고파”

하지만 연서씨는 노래가 끝나고 집에 가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면 또다시 두려움이 앞섰다. 불쌍한 아들이지만 오늘은 또 어떤 행패를 부릴까 하는 걱정에 선뜻 집에 발을 들여놓기가 어려웠다. 더욱이 이성을 잃을 때면 힘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져 누구도 막을 수 없었기 때문에 그 불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연서씨는 본인도 모르게 사고를 저지르는 아들의 행동을 보면서 뒤늦게 깨달음을 얻게 됐다고 한다.

“2년 전, 우연한 기회에 어르신 위문 잔치에서 노래를 부르게 됐어요. 그날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르며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박수를 치며 연신 어깨춤을 덩실거리는 어르신들을 보며 ‘내 노래를 듣고 이렇게 좋아들 하시는구나’하는 생각에 눈물이 날 정도로 기뻤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내가 가진 재능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줘야겠다고 마음 먹었죠. 또 밖에서 좋은 일을 많이 하다 보면 병마와 싸우는 아들에게도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하게 됐어요.”

일 없는 날 노인정·교도소 찾아

연서씨는 그날 이후로 아산시민요양병원과 천안 구성동 평안의 집을 매주 번갈아 방문하며 노인들을 위해 노래 잔치를 열고 있다. 또 지역에서 노인들을 대상으로 열리는 각종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때로는 심금을 울리는 노래로, 때로는 신나는 춤을 곁들인 노래로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또 이벤트 업체를 운영하고 있지만 일이 없는 날에는 노인정이나 교도소 등 일부러라도 봉사할 수 있는 현장을 찾아 다니며 노래 선물을 전하고 있다.

 특히 매년 봄이면 산으로 들로 다니며 산나물을 채취한 뒤 잘 말려 두었다가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에 소재 사찰인 보광사에서 행사가 있을 때 마다 공양주(供養主) 역할을 하며 또다른 봉사를 실천하고 있다. 이처럼 남을 위해 정성을 쏟는 연서씨의 마음이 하늘에 닿았는지 지난해 정말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집기를 부수고 자해를 일삼던 아들이 어느 순간 달라졌다. 그렇게 오랜 시간 연서씨의 애간장을 녹였던 아들이 이제는 예전의 버릇이 사라지고 한없이 착하기만 했던 예전의 모습으로 조금씩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인생이 즐거워진 가장 큰 요인은 누가 뭐래도 아들이 변한 것이겠지요. 하지만 아들의 좋지 않은 버릇이 조금씩 바뀐 것이 제가 봉사를 다니기 때문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보광사 스님의 기도와 주변 사람들의 격려, 그리고 병마와 싸우며 힘든 시간을 견뎌온 아들의 의지가 기적을 만들어 냈다고 믿어요. 그래서 지금은 밖에서 활동하는 시간도 즐겁지만 집에 들어가는 시간도 행복하답니다. 요즘은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웠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하루하루 행복하게 살고 있어요.”

 비록 무명 가수지만 향토음악인협회 지부장을 맡고 있는 연서씨는 앞으로 작은 꿈이 있다고 한다. 아들의 변화를 지켜보며 더 열심히 살아가야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는 연서씨는 지역 노인들을 위한 특별한 이벤트를 마련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지난해 향토음악인협회 천안시지부 주최로 지역 어르신들을 위한 효도 공연을 기획했다가 문제가 생겨 제대로 즐거움을 선사하지 못해 아쉬웠던 경험이 있어요. 그래서 다시 한번 지역 어르신들을 초청해 함께 어울리는 즐거운 시간을 마련하고 싶어요. 당장은 어렵겠지만 열심히 노력하다 보면 좋은 기회가 생기겠죠. 또 좋은 일만 생각하다 보면 주변에서도 많은 분들이 뜻을 함께 해주실 거라고 믿어요.”

 힘들고 고통스럽기만 한 인생의 나락에서 노래를 통해 희망을 얻고, 지금은 노래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는 연서씨의 하루가 그 누구의 하루보다 값지고 밝게 빛나고 있다.

◆모야모야병=일본의 스즈키 교수에 의해 명명된 특수한 뇌혈관질환으로, 뇌동맥조영상이 아지랑이처럼 흐물흐물해지면서 뿌연 담배연기 모양과 비슷해 일본말로 모야모야라고 이름 지어졌다. 양측 뇌혈관의 일정한 부위가 내벽이 두꺼워지면서 막히는 병인데 서양인에 비해 주로 일본인과 한국인에게 나타난다. 아직은 정확한 발병 원리나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공양주(供養主)=절에서 밥을 짓는 승려 또는 일을 돕는 사람을 말한다.

글·사진=최진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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