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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의 나그네(1)-동계올림픽의 고장 북해도 기행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삽보로」동계「올림픽」참관과 아울러 북해도 지방의 교포실태를 둘러보러 떠난 여류작가 정연희씨가 인상적인 설국 기행문을 본사에 보내왔다.
북국의 정취가 물씬한 이 글에서 그는 북해도의 원주민 「아이누」족의 이야기, 교민들의 생활상 등을 소개할것이다. <편집자주>

<북해도 입구>
청청한 바다 위에서 수줍게 떨고 있는 커다란 나비날개. 하얀 나비날개.
진경 해협을 거쳐 처음으로 눈에 들어온 북해도의 입구 함관시(하꼬다데)는 순백의 하얀 눈 바다였고, 그 하얀 육지는 북해의 청남빛 바다 위에 조심스럽게 내려앉아 있었다.
눈으로 덮인 산록은 북쪽의 겨울햇빛을 눈부시게 반사하고 거뭇거뭇하게 겨울을 견디고 있는 헐벗은 숲은 그 햇빛을 목마르게 빨아들였다.
북쪽인 탓이었을까, 아니면 눈을 덮은 육지 때문이었을까, 바닷 빛이 그토록 청청했던 것은….

<청남빛 바다 하얀 육지 나비날개 같은 함관시>
그러한 바다 위에 흘러가 듯 멈춘 듯 희고 커다란 나비날개처럼 펼쳐진 함관시는 활발한 상공업도시로 이름나 있었지만, 그보다 더욱 마음을 이끌리게 한 것은 그곳에 살았던 불우한 천재시인 석천탁목의 이야기다. 그는 명치시대에 요절한 외로운 시인. 생전에 그가 겪은 외로운은 인정과 인정을 이어주는 눈물의 강이 되어 지금에 이어져 왔다.
겨울은 그에게 어둠 속에서 빛나는 얼음 빛의 아름다움에 눈뜨게 했고, 눈 쌓인 함관의 화류항을 노래하게 했다. 그리고 한여름 동해의 허허한 백사장은 외로움이 영글어 시가 되게 했다. 백사장에 엎드려 첫사랑의 아픔을 되새겼을…, 어느 작은 섬의 모래톱에서 눈물에 젖어 게(해)와 장난을 했을…, 외롭고 의로운 시인의 그림자.
그 석천탁목은 생전에 함관에 살았고 그 고장을 사랑했으며, 죽을 때 그곳에서 죽기를 원했던 대로 지금 그는 함관에서 가까운 공동묘지에 잠들어 있다.
동경에서 1시간30분. 비행기의 속력이 많은 시간을 안겨준 것 같지만 그만큼 여정과 인생이 생략된 것을 생가지 않을 수 없었다.

<놀라운 규모 시골 공항 「밉살스러운」현대화>
처음 기차와 뱃길을 따라 북해도에 오르려던 계획은 문명의 유혹에 무너져 이렇게 공중에서 간단히 내려다보게 되었고 아쉬움은 어차피 한으로 남겨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비행기가 내려앉은 천세시(지도세)의 비행장은 그 규모가 놀라울 만큼 크고 세련되어 있었다.
우전의 국내선 공항이 지닌 청결감과 큰 규모는 대도시의 면모로서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지만, 어쨌거나 시골은 시골인 북해도 공항이 이쯤 손질되어있다는 것은 『과연 악바리로구나』싶은 생각과 함께 부러움과 속 불편함이 함께 떠오르게 하던 또 하나의 계기가 되어 주었다.
공항에서 찰황(삽보로)까지는 탄환도로. 밉살스러울 만큼 잘도 현대화가 되어 있었다.

<길만 남기고 눈 더미 뿐 호화로운 도시 삽보로>
철저하게 기계화된 공항 「버스」에 실러 가노라니 당연한 것으로서 북해도의 자연 풍정에 대한 기대로 부풀었던 가슴에서 바람이 조금씩 빠져나가는 기분이다.
그러나…그러나, 눈이 있었다. 눈이 첩첩이 쌓여 있었고 지붕들은 고드름을 달고있었다.
눈의 땅, 눈의 나라.
사람이 다니는 길 이외에는 모든 것이 눈에 파묻혀 있었다. 사람이 사람에게 이어지기 의해서, 혹은 거래를 위해서 통해진 길 이외에는 모든 것이 눈에 덮여 있었다.
사람들은 눈 더미 속을 허덕이고 다녔다. 그러나 그것은 조금도 힘겨워 보이지 않았다. 그 움직임 속에 생명의 향기가 있었고, 그 향기는 피부로 눈으로 귀로 스며들어 왔다.
눈은 고물 차가 모여 있는 중고차 마당에로 덮여있어서 자동차의 지붕들만 봉긋봉긋 드러나게 하고 있었다.
천세시에서 「삽보로」시내까지 1시간. 「삽보로」, 이것 또한 당당한 현대도시였다. 우줄 우줄 키를 겨루는 빌딩들. 호화롭고도 번화한 상점가.
한 세기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미개지. 깊게 우거진 삼림 때문에 대낮에도 침침한 숲을 이루고 그 숲 속에 곰 노루 늑대들이 노닐던 자연의 낙토였다.

<민첩·치밀한 「그들」실력 급조지하철도 최신시설>
「삽보로」라는 시 이름도 「아이누」어로서 「삽보로베츠」. 말라버린 큰 개천의 뜻이다.
지금도 시가지에는 몇 백년씩 묵은 느티나무가 그 위용을 자랑하며 그늘을 늘이우고 있어 개척당시의 그 장엄했을 자연을 상상케 해주지만, 그러나 신이 만든 자연은 지역마다 특색이 있고 새롭지만 인간이 만든 현대도시는 따분할 만큼 모두가 닮았다.
시가지의 눈 더미는 구박덩어리요 지청구바가지다. 아스팔트 위의 눈들은 초라하게 죽어있었다. 더럽혀지고 구겨지고 순결을 짓밟힌 채 버려졌다.
동계올림픽 등쌀에 시내에서 방을 얻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기도 했지만 기왕에 찾아 나선 길에 「삽보로」에서 뚝 떨어진 한적한 곳으로 가고싶어서 북해도 태생의 일본 할아버지 N씨의 안내를 따라 짐을 끌고 나섰다.
목적지는 정산계 온천장, 북국을 맛볼만한 시골이다. 지하철과 「택시」로 1시간, 좀 멀었다. 지하철은 눈이 번쩍할 만큼 최신시설에 현대적 구조. 세계 어느 곳보다 깨끗하고 신통할이만큼 쾌적하다.
이번 동계올림픽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라니 일본인들의 극성을 알아주어야 할 것 같다.
꾀 많고 재빠르며 빈틈없이 단결하는 국민성과 자연의 혜택을 십분 내세워 동계올림픽을 초치하고야 말았으니 어쨌거나 실력은 실력이다.
지하철의 종점은 진구내(마꼬마나이). 「올림픽」「스케이트」경기장 겸 「메인·스타디움」으로 「올림픽」촌이 세워진 곳이다. <계속> 【윤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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