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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청동기 문화|김정배 <고대 조교수·사학>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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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전남 화순의 청동 유물 발굴>
최근 전남 화순에서 발견된 세형 동검·세문경 등 일련의 청동기 유물의 보고는 한국의 선사 고고학 분야에서도 특히 청동기 시대 연구에 다시없는 훌륭한 자료로 등장하였다. 아직 유물을 직접 접하지 못했기 때문에 자세하게 언급할 수는 없으나 지금까지 단편적으로 알려진 여타의 유적 유물과는 양적·질적인 면에서 일단 높이 평가받을 만 하다고 하겠다. 더우기 이들 일괄 유물이 출토지 뿐만 아니라 묘제까지 확인된 것은 향후 이 방면의 알찬 연구에 새로운 기준점을 설정한 것이다.
그간 다소나마 논의가 분분하던 한국의 청동기 시대 존재 문제는 한반도 전역에서 출토 예가 있는 만큼 한국 선사 고고학의 발전 과정을 진화적 입장에서 이론적으로 서술할 수 있는 결정적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내놓은 대담한 가세도 사실상 그간의 연구 성과로 이미 예지한 바지만 10여년 전 영암에서 나온 정교한 용범들과 더불어 호남 지역 청동기 문화가 이제 그 실체를 드러낸 것이다.
이 청동기 유물이 주는 의의는 철기와 반출되지 않고 청동기만이 출토되었다는 점이다. 지난 날 청동기가 철기와 함께 종종 출토된 예가 있었다. 북한의 대성리 토광묘나 경주 구정리 고분에서 우리는 그러한 경우를 보고 있다. 그간 지석묘·석병묘·토광묘에서 청동기 유물이 발견된바 있지만 이번 경우처럼 10여 점이나 되는 일괄 유물이 철기와 혼재 하지 않고 한곳에서 출토되었기 때문에 이제 우리는 신석기 시대에서 금석 병용기를 거쳐 청동기 시대, 그리고 철기 시대로 발전한 구주에서 보는 바와 같은 전형적인 삼시 기법의 「패턴」을 상정하게 된 것이다. 몇년 전에 충남 대전 괴정동에서도 청동기 유물이 토기와 함께 나온 예를 상기할 때 이번과 같은 가능성은 앞으로도 얼마든지 기대해 볼만한 것이다.
이번의 청동기 유물을 통해서 우리는 한국 청동기 문화를 재평가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고 보고자 한다. 한국 선사 고고학이나 고대 문화를 논할 때마다 우리는 중국의 문화권을 염두에 두고 문제에 접근해 왔기 때문에 지나치게 중국과의 관련성에 신경을 써 온게 사실이다.
역사 시대를 통해서 중국 문화가 한반도에 끼친 영향은 기대한 점도 있지만 청동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때 그 성격은 매우 상이하다. 다시 말하면 중국 문화 못지 않게 우리는「시베리아」·몽고·만주 등지의 유물을 주목해야 하며 이번 경우도 예외 없이 유물이 중국적이 아니라는 사실은 한국 청동기 문화의 성격을 단적으로 말해 준다고 보겠다.
세문경만 하더라도 중국의 요령·한국·소련의 연해주, 일본의 구주 등지에 분포하고 있는데 그 밀집도가 한국이 단연 중심지라는 점이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그러한 사실은 세형동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만약에 이러한 자료들이 계속 출토될 경우 우리의 고대 문화가 외부로부터 만의 영향이라는 점도 재고해야될 것이 그 자체의 독립적인 발생으로 볼 경우 여기에 따르는 이론적 체계가 시급히 요망된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청동기 시대는 다음에 오는 고대사와 불가분의 관계로 들어가기 때문에 자연 고대사의 심부를 찌르는 중대한 문제에 부딪치는 까닭이다.
끝으로 필자는 이번의 청동기 유물이 낙랑 문화의 기준 위에서 평가되지 않기를 바라는 심정에서 첨언하고자 한다. 낙랑 문화가 한국 고대사에서 어떻게 취급되어야 할 것 인가도 미정인데 낙랑 문화가 한국 고대 문화의 기둥인 양 논의되는 것은 삼가야할 문제라고 생각된다. 일본 학자들에 의해 지나칠 정도로 학계에 소개된 이 문화가 정말로 한국의 고대 문화에 준 영향은 그 지역이 매우 제한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기에 한국의 철기 문화가 낙랑 문화에서부터 시작된 양 논의되었던 지난날의 학문성과는 벌써 수정되었어야 했음에도 그 잔재가 현재도 여러 교과서에 남아있다는 것은 역시 유감된 일이다.
이번의 경우에도, 철기의 사용이 낙랑 보다 앞서기 때문에 청동기의 경우 그 상한은 더 올라 갈 가능성이 매우 많은 것이다. 현재 청동기의 상한 문제는 BC 7세기, BC 10세기 전 후 설 등이 있는데 과거에 생각했던 근동 지방의 청동기나 동아의 청동기 상한이 상장을 넘는 선까지 올라가고 있는 지금, 우리는 국부적인 시야를 보다 넓게 돌려야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결코 일본의 청동기 편년은 우리가 의존할 성질이 아니다. 거기에 의해 우리의 편년이 설정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호남지방에서 출토된 이번 청동기 유물은 지금까지 학계가 일반적으로 갖고 있었던 통념, 즉 반도의 남단이 지리적으로 멀어 문화의 수용이 늦었고, 그래서 문화의 전개가 뒤졌다는 어떤 근거도 용납하기가 힘들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지역간의 양식의 차가 있을 수는 있으나 문화의 전파상 시간적인 차는 과거의 생각이 상심한 것이 아님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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