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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성 단체 요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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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우리 나라 최초의 여성 단체는 1898년에 조직된 순성회로 알려지고 있다. 그후 1909년까지는 여우회·보호회·여자 교육회 등 10여개의 단체가 생겨났는데 이들의 목표는 계몽·자선·신여성끼리의 친목 등이었다. 당시의 여성 단체 지도자는 이옥경·황몌례 여사 등이었으며 이옥경씨는 내부 대신을 역임했던 이지용씨의 부인이었다.
1910년 일제 합방 후의 여성 단체들은 비밀 결사의 성격을 띤 애국 단체들이 대부분이었다. 송죽회, 애국 부인회, 근우회 등은 신교육을 받은 여성이나 여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적삼 단추를 맺어 판돈』으로 독립 운동을 지원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였었다. 김활난·유각경·김필례씨 등에 의해 1922년에 조직된 YWCA는 전도 활동과 함께 여성 계몽을 벌여왔다. 해방직 후에는 우익계의 한국 독립 촉성 부인회와 좌익계의 조선 부인 동맹이 극한적인 대립을 벌이기도 했다.
6·25 동란 후에는 전쟁 고아와 미망인 구호 사업을 위해 여성 단체들이 일해 왔었다.
이렇게 74년에 걸친 여성 운동사에서 여성 지도자들이 일반에게 심어온 「이미지」는 선구자적인 용기, 유창한 연설, 통치마와 단발머리 등으로 복합된 것이었다. 이들은 존경을 받았으며 김활난 등 몇몇 여성 지도자의 이름은 얼굴조차 본 일이 없는 촌부들에게도 정다운 이름이었다.
이렇게 상징적인 지도자들이 하나 둘 사라져 가고 「하나의 목표」를 내세우기에는 너무도 복잡한 사회가 된 오늘날 여성 단체와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내용은 많이 달라졌다. 대부분의 단체들이 대표로 여성계의 원로들을 내세우고 있으나 그 밑에서 실질적으로 일하는 일꾼들은 20대, 30대의 젊은 여성들이며 이들의 사명감도 그들의 선배와는 많이 달라져 있다.
현재 보사부·문교부·문공부에 등록된 여성 단체는 30개 정도이며 이들 단체는 보통 한 두 명에서 80명까지의 유급 지도자 (간사)를 두고 있다. 학력 대부분 대학 졸업이며 초봉은 2만원 정도, 10년 경력에 6만원 선이다.
50년 역사를 가진 YWCA는 연합회와 전국 17개 지부에서 80명의 유급 간사가 일하고 있다. 이들은 「프로그램」부, 청소년부, 대학생부, 공보 출판부, 지방부 등으로 나누어 각 분야의 일을 계획하고 추진해 간다. YWCA의 전국 회원 11만3천명과 무급 지도자 1천3백여 명이 사업을 돕지만 모든 사업에 책임을 지고 처리해 가는 사람은 유급 간사들이다.
22년 동안 YWCA에서 일해온 연합회 총무 박순양씨는 『근본적으로 사람을 좋아하는 성품, 사회 전반에 걸친 민감한 문제 의식, 그리고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사명감』을 여성 단체에서 일하기에 적합한 기본 조건으로 꼽고 있다. YWCA의 경우에도 초봉이 2만원 선으로 대학 졸업자로서는 낮은 수준이지만 어려운 시절을 여성 운동에 종사해온 선배들은 『낮은 봉급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일하기 위해서는 사명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근로 여성의 봉급 인상과 그 대책에 대해 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각 여성 단체지만 스스로의 내부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이 일종의 「터부」로 되어 있는 것은「아이러니컬」한 현상이다.
우리 나라의 여성 단체 중 3분의2에 달하는 20개 단체를 한데 묶고 있는 한국 여성 단체 협의회는 해마다 전국 여성 대회를 열고 인구 문제, 공해 문제 등 그 해의 협동 방향을 내세워 오고 있다. 이 대회는 산재해 있는 「여성의 소리」를 한데 모아 「압력 단체」의 역할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교육받은 여성 인력이 곳곳에 사장되고 국내의 정세와 사회 구조가 어느 때보다 복잡해지고 있는 시대를 맞아 「여성 단체 종사자」는 가장 절실하게 요구되는 전문직의 하나로 꼽을 수 있다. 유능한 여성을 끌어들여 다음 세대의 지도자로 키우는 일도 시급한 문제이며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막연한 사명감에 기대하기에 앞서 직장으로서의 좋은 조건을 갖추어 전문가로 훈련하는 과정이 필요한 분야이기도 하다.
『여성 운동을 애국심이나 동지애 또는 신앙으로 이끌던 시대는 지났다고 봐요. 그러므로 여성 단체들의 세대 교체는 단순하게 나이에 의한 것이 아니라 내용에 의한 것이어야 된다고 봐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겐 전문적인 훈련이 필요해요』라고 한 여성 단체 간사는 말한다.

<장명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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