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역사인식 퇴보 막으려 일본 지식인들 나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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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일본의 학자, 전직 관료 등 지식인 16명이 11일 ‘무라야마(村山) 담화 계승·발전 모임’을 출범시켰다. 이들은 기자회견에서 ‘일본의 침략과 식민지배를 공식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의 정신을 되살리는 것이 모임의 목적’이라고 밝혔다. 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우익 성향이 강한 현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정권의 퇴행적인 역사 인식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면서 일본인들이 올바른 역사인식을 갖도록 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아베 정권의 ‘국가주의적 배외노선’을 견제하려는 일본 시민사회의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아베 총리는 지난 4월 “침략의 정의는 학회적으로도 국제적으로도 정해져 있지 않다”며 “그건 국가와 국가의 관계에 있어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고 발언했다. 1995년 8월 15일 태평양전쟁 종전 50주년을 맞아 일본의 침략 행위를 정식으로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를 뒤집겠다는 의도로 받아들여졌다. 이후 국내외 각계에서 비판이 쏟아지자 아베 총리는 이리저리 말을 돌려가며 애매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총선에서 공약으로 내세웠던 무라야마 담화 수정 의도를 포기하지 않은 것이다.

 무라야마 담화 이후 한·중·일 3국 관계는 우여곡절 속에서도 꾸준히 발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심해지고 있는 일본 사회의 우경화 추세에 따라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역사 인식을 퇴보시키려는 우익 정치인들의 시도가 갈수록 노골화되고 있다. 그들의 선두에 아베 총리를 비롯한 현 집권 정치세력이 자리한 것이다. 이에 따라 지금 일본은 한국·중국과 정상회담조차 못하는 등 동북아시아의 정세는 갈수록 불안정해지고 있다.

 일본 사회 우경화 문제는 일본 사회 스스로 균형감을 회복하려는 노력을 강화함으로써 풀리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이번에 일본 지식인들이 그 같은 노력을 선도하고 나선 것은 크게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들의 활동이 동아시아 안정과 평화에 기여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