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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인 대학 구조조정의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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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박 철
한국외국어대 총장

대학 구조조정이 화두가 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특히 지난해 반값 등록금 이야기가 국회에서 나오면서 논의가 본격화됐다. 독일·프랑스·북유럽처럼 대학 등록금을 국가가 부담하는 복지국가라면 문제가 없다. 그런 나라에서는 오히려 대학에 가려는 젊은이가 부족해 걱정이다. 유럽 선진국에서는 고등학교만 나와도 특별한 기술적 역량만 있으면 삶의 수준에서 대졸자와 큰 차이가 없다. 사회적 다양성이 이미 내재화됐다.

 한국은 어떤가? 1960년대만 해도 대학 진학률은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았다. 70년대 이후 경제가 발전하고 88올림픽 전후로 발전 속도가 빨라지면서 기업이 급증했다. 한국 경제가 세계로 뻗어 나가며 많은 인재가 필요해졌다. 이에 따라 대학과 대학생이 늘었다. 특히 96년 김영삼(YS)정부가 교육 개혁의 일환으로 대학 설립 준칙주의를 도입해 설립 요건을 완화하자 대학이 급증했다. 97년에만 20개가 설립되는 등 2010년까지 60~70개가 신설됐다.

 70년대까지만 해도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식을 대학에 보내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다. 대학을 간 사람과 가지 못한 사람 사이의 사회적 대우 차이가 원인이었으며 이는 오늘날까지도 사회문제다. 그러나 오늘날 등록금이 없어 대학에 못 간다고 부모나 사회를 원망하는 일은 많지 않다.

 대학은 이름 그대로 큰 학문을 하는 곳이다. 공부나 학문이 체질에 안 맞고 다른 재능이 있는 젊은이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곳이 아니다. 대학은 진지하게 학문을 하는 곳이며 교수들은 연구 업적으로 인정받는다. 노벨상 수상자들은 대부분 대학교수가 아닌가? 그런데 한국에선 아직 대학을 취업 준비기관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 듯하다. 학문을 연구하는 4년제 대학과 특별한 실무지식을 가르치는 2년제 전문대학의 구분도 점차 없어지면서 혼란이 가중됐다. 미국에서는 등록금 부담이 거의 없는 커뮤니티 칼리지가 전문대학 역할을 하며 유럽에서는 전문학교가 취업 사관학교 구실을 한다. 이런 사정을 감안하지 않고 한국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은 한국 대학이 불량 인재를 키운다고 쓴소리를 한다.

 최근 대학 졸업자의 취업이 어렵다지만 중소기업에서는 구인난을 겪고 있다. 아이러니다. 얼마 전 삼성 입사시험에 10만 명이 응시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젊은이들이 명문대·명문기업에만 매달리는 현실이 모든 것을 어렵게 한다는 사실을 심각하게 봐야 한다. 특성화된 교육·연구를 도외시하고 모든 것을 일반화해 등급을 매기는 풍조도 이에 일조한다.

 한국의 경제 기적을 일군 한국 대학이 갈림길에 섰다. 지하자원이 없고 국토도 작은 한국이 반세기 만에 무역 1조 달러의 세계 8위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것은 정부와 국민이 인재 양성과 고등교육에 주력한 덕분이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다. 현재 대학이 위기이면 미래에 국가 위기가 닥칠 것을 염려해야 한다. 과거 80~90년대에 ‘하나만 낳아서 잘 기르자’라는 산아제한정책이 오늘의 학령인구 감소와 대학 위기로 이어졌으며 나아가 국가경쟁력 위기의 원인이 됐다. 미래 예측을 잘못한 결과다. 최근 대학 수를 줄이는 구조조정만이 최선의 방안이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대안은 없을까? 대학 구조조정이 국가 장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놓고 사회 전문가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는 자리를 좀 더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인류 역사에서 잘못된 미래 예측으로 벌어진 실패 사례는 너무도 많다. 국가경쟁력 강화와 대학 구조조정 정책은 지금 갈림길에 섰다. 정부의 일방적인 드라이브가 아닌, 허심탄회한 공감의 장이 먼저 필요하다. 대학을 둘러싼 사회 주체들이 서로 머리를 맞댈 때다.

박철 한국외국어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