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들 졸업식 날 아버진 순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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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아들 형제의 졸업식 날 과로 끝에 순직한 서울 광화문 파출소장 정성봉 경감(46·추서)의 장례식이17일 종로 경찰서서장으로 엄수되었다.
이날 장례식에는 셋째 아들 진군(16)은 고교예비고사 때문에 영결식에 참석하지 못하고 선린상업고교에서 있는 고사장에 가야했다.
정 경감이 순직한 것은 지난 15일 아들 열군(20)과 진군이 졸업하는 바로 그 시각이었다.
책임감이 강했던 정 경감은 경찰생활 22년 동안 한번도 사사로운 일 때문에 근무를 뺀 적이 없었다. 그러나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두 아들이 한꺼번에 졸업하게된 15일에는 꼭 식장에 참석하겠다면서 14일 낮 종로경찰서에 가서 상사에게 15일 하루만은 쉬겠다고 품신하여 허가를 얻고 「카메라」까지 빌어다 놓은 다음 밤 근무를 하다가 밤 l1시20분쯤 파출소 안에서 갑자기 푹 쓰러진 것이다.
뇌일혈로 의식을 잃은 정 경감은 곧 성모병원으로 옮겼으나 15일 상오 10시쯤 순직했다.
아들 형제가 자랑스런 졸업장을 받아 가지고 왔을 때는 이미 빈소가 차려져 있었고 형제는 졸업장을 영전에 바치고 울었다. 아버지의 운명하는 순간조차 지켜보지 못했던 셋째 진군은 장례식 날도 또한 예비고사 때문에 참석 못한 것이다.
아들 3형제를 공부시키기 위해 정 경감 부부는 무척 고생했다. 월급은 다 제하면 1만5천원 안팎. 50만원 짜리 전셋집에 살면서 부인 최은순씨(41)는 참기름 장사, 「캐슈밀론」이불 누비기 등 여러모로 부업을 하여 학비를 댔다.
그래서 아들의 졸업식에는 꼭 참석하겠다고 벼르다가 이 소박한 꿈도 이루지 못한 것. 정 경감은 착실한 근무로 대통령의 근로공로표창장 등 20여개의 상장을 받았다. 집에서 거의 잘 때가 없었던 생활을 되새겨 부인 최씨는 『운명하니 집에서 자게됐다』고 영구 앞에서 말했다.
한편 이날 장례식에서 이건개 시경국장은 정 경감의 공로를 치하, 열군은 시경에서, 철군은 종로서에서, 진군은 종로구 공영회서 각각 대학까지 공부시키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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