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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큰 일은|김종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해마다 큰 일은
연말에 일어난다는 사실을
퇴계 로를 메운
인파들은 보았다.
아니
징글벨 썰매를 몰고 가는
샌터클로즈
하얀 수염의 고드름 중화가
채 녹기도 전에
간밤 뜬눈으로 지샌 자식을 위해
이불 속에 묻어둔
따스한 어머니의 손길
입김 서린 조반이 채 식기도 전에
서울시청 옥상
구구 비둘기 떼들이
햇빛 눈부신 숲의 몽 유에서
채 깨어나지도 못한 시간에
서른 다섯 해
내가 보고 겪은 재난 중
가장 뼈아픈 고통을
다시 되풀이 한다해도
세계의 눈들이 겨냥한
11층의 그 사람
불붙는 창가의 지혜만은
받아 심지 못했으리라.
세상사 큰 일은
모두들 떠날 채비가 끝난 후에
일어난다는 사실을
거리를 메운 인파 속에서
나는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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