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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환의 시대공감] 누구의 진보적 민주주의인가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48호 31면

법무부는 헌법재판소에 통합진보당 해산심판을 청구했다. 통진당이 지향하는 ‘진보적 민주주의’가 북한 김일성 주석의 ‘진보적 민주주의’를 추종하는 것이기 때문에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부가 특정 정당의 해산을 사법적 판단에 맡기는 조치가 처음 있는 일이라서 놀라는 이가 많다.

진보적 민주주의가 정치적 담론으로 본격적으로 떠오른 것은 광복 이후의 미 군정 시기였다. 진보적 민주주의에 대해 가장 정연한 논리를 전개한 것은 김형수(金亨洙) 등이 발행한 ‘중앙신문’이었다. 정치적으로 여운형 노선을 지지한 이 신문은 여론 동향을 근거로, 국민 대다수가 극우와 극좌를 배격하고 중용을 취해 진보적 민주주의 정부를 수립하기를 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왜 진보적 민주주의인가? 이 신문이 든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자본주의의 문제점이 다 드러났기 때문에 새로운 형태의 모색이 불가피하다는 것이었다. 자본주의가 국제적으로 강대국의 약소국 착취를 기반으로 삼으며, 국내적으로 인민대중을 금융자본에 예속시키는 것이 이 신문이 말한 자본주의의 문제점이었다.

둘째, 미·소가 한반도를 분할 점령하고 있는 상황에서 남북한이 통일정부를 수립하기 위해서는 진보적 민주주의 말고는 길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 신문은 ‘자본주의나 자유주의를 지향할 경우 소련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며, 사회주의 정부를 구성하려 할 경우 미국이 용인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남북한 통일정부는 미·소가 공히 수용할 수 있는 진보적 민주주의를 지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운형·백남운 등 중도좌파의 노선을 지지한 신문들은 그런 논거를 바탕으로 친미 자본주의와 친소 공산주의를 ‘초절(超絶)’하는 제3의 길을 모색했다. 장순각(張洵覺)이 창간한 ‘독립신문’은 미국과 소련이라는 두 세계에 끼어 있는 우리 민족은 두 세계를 초절하는 길에서 혈로(血路)를 찾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진보적 민주주의 노선은 중도 좌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조선공산당 기관지인 ‘해방일보’도 진보적 민주주의라는 말을 즐겨 썼다. 이 신문이 사설 대신 실은 박헌영의 연설문에 따르면 세계 민주주의는 영국과 미국에서 발전한 부르주아 민주주의, 소련에서 발전한 프롤레타리아 사회주의, 동구에서 채택하고 있는 인민 민주주의의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인민 민주주의란 자본주의가 발달하지 않아 자본주의 혁명을 이끌 부르주아지도 없고, 사회주의 혁명을 주도할 프롤레타리아트도 성숙하지 않은 나라에서 노동자와 농민, 도시빈민 등 인민 대중이 창도하는 이른바 민주집중제를 말하는 것이었다. 박헌영은 이 세 가지 가운데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아래 등급이라면, 소련의 프롤레타리아 사회주의는 가장 선진적인 민주주의이며, 동구의 인민 민주주의는 소련과 같은 선진 사회주의로 가기 위한 과도적 민주주의라고 규정했다.

박헌영이 이끄는 조선공산당 기관지였던 ‘해방일보’는 우리나라 역시 동구 여러 나라와 마찬가지로 자본주의가 성숙하지 않은 상태여서 일시적이나마 사유를 인정하되 인민을 대표하는 인민위원회가 주도하고 결정하는 인민 민주주의를 거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헌영은 그 길이야말로 느린 것 같지만 선진 사회주의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라고 주장했다. 그 길은 박헌영이 택한 길이었지만 사실은 소련이 권하는 길이기도 했다.

여운형계 신문이 집착한 진보적 민주주의와 박헌영계 신문이 강조한 진보적 민주주의는 말은 같아도 지향하는 바는 판이했다. 여운형계의 진보적 민주주의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를 뛰어넘는 제3의 길을 추구한 것이라면, 박헌영계의 진보적 민주주의는 프롤레타리아 사회주의를 최종 목표로 한 하나의 과도기 체제에 지나지 않았다. 여운형계의 진보적 민주주의가 서구의 사회 민주주의를 종착역으로 상정할 개연성을 안고 있었다면, 박헌영계의 진보적 민주주의는 소련식 사회주의로 가는 도중에 잠깐 머무르는 간이역과 같았다.

통진당 해산심판에 대해 전문가들 사이에 정부가 무리수를 둔 것 아니냐는 시각이 우세한 것 같다. 그러나 여론조사에서 많은 국민이 통진당 해산을 지지하는 태도를 보인 것도 사실이다. 일반 국민의 눈에 통진당의 진보적 민주주의가 아마 여운형 노선보다는 박헌영 노선에 가까운 것으로 비친 것은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통진당은 국민의 눈높이를 무시하고 강퍅한 정치를 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고, 정부는 시장에서 국민이 할 일을 빼앗는 조급증을 드러냈다는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강퍅하고 조급한 세태가 우리를 짜증나게 한다.



김민환 고려대 미디어학부 명예교수. 고려대 신방과 및 동 대학원 졸업. 문학박사. 전남대ㆍ고려대 교수, 고려대 언론대학원장, 한국언론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소설 『담징』(201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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