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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제니친」은 호농의 아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또다시 「베스트·셀러」가 되고있는 소작가 「알렉산드르·솔제니친」의 소설 『1914년8월』의 출간을 계기로 수수께끼에 싸였던 그의 가계가 밝혀졌다. 다만 교사의 아들로만 알려졌던 그의 내력은 실은 호농출신임이 드러났다. 이러한 사실은 『1914년8월』의 「모델」로 등장한 인물 중 유일한 생존자인 「솔제니친」의 외숙모 「이리나·이바노브나·세르바크」노파(82)의 입을 통해 알려졌다.
소련혁명 이전의 독·노 전쟁을 무대로 설정, 「소비에트」의 사회체제를 비판한 『1914년8윌』의 「모델」은 그의 작품에서 거의가 실명으로 등장하고 있는데 「솔제니친」의 조부·부친·모친만이 가명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의 외숙모인 「이리나」 여사도 『1914년 8월』에서 젊고 부유한 상류사회의 여성으로 묘사되고 있는데 실제로 대지주의 딸이었다.
호화롭게 살던 옛날과는 달리 현재 「코카서스」지방의 궁벽한 소읍 「게오르기예프스키」에서 여생을 보내고있는 「이리나」 여사는 매달 10「루블」(약3천6백원)의 연금과 조카인 「솔제니친」이 15「루블」씩 부쳐주는 돈으로 궁색하게 살고있다.
「솔제니친」이 그의 작품에서 자신이 출생하기 전의 일을 소상하게 묘사할 수 있었던 것은 「이리나」여사가 일일이 이야기해 준 덕분이었다.
56년 「솔제니친」은 「카자크스탄」의 유형에서 풀려난 뒤 「이리나」 아주머니를 찾아와 자기 가족에 대해 꼬치꼬치 캐묻고 돌아갔다는 것이 「이리나」여사의 말이었다. 그 후에도 「이리나」여사는 틈틈이 편지로 「솔제니친」의 집안사정에 대해 알려주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리나」여사의 말로는 「솔제니친」의 모친 역시 대지주의 딸로 1917년 1차대전 중 전선에서 결혼했다. 「솔제니친」의 부친은 장교로 종군중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전후 곧 공산혁명으로 적군들은 지주계급에 대한 『사냥』에 나섰다. 그의 부친은 지레 겁을 먹고 자살해 버렸다.
이때 「솔제니친」은 태내에서 겨우 3개월 될 때였다.
그의 모친은 가옥과 토지를 적군에게 몰수당하고 「세르바크」에 있는 「이리나」여사의 집으로 옮겨 출산했다.
모친은 「로스토프」시 경찰의 속기사로 생계를 꾸려나갔다. 「솔제니친」은 모친이 자리잡는 동안 「이리나」 아주머니 집에서 자랐다. 그러나 모친은 44년 폐결핵으로 사망했다.
모친아 사망할 때 「솔제니친」은 전선에서 독일군과 전투중이었다.
그는 로스토프대학에서 물리학과 수학을 전공하고 전쟁이 벌어지자 출정했던 것이다.
그도 역시 부친과 마찬가지로 전쟁중 결혼했다. 상대는 유대계 상인의 딸인 「나챠」.
그러나 「나차」여사는 45년 「솔제니친」이 대위의 신분으로 「스탈린」의 전략을 비판했다고 8년 징역형을 치르고 「카자크스탄」으로 추방될 때 남편을 따르지 않았다. 「솔제니친」이 53년 추방에서 풀려 돌아와 아내를 찾았을 때는 다른 남자와 동거중이었다.
「솔제니친」은 「모스크바」에서 1백80㎞ 떨어진 「랴산」에서 수학교사를 하며 틈틈이 소설을 썼다. 「슬제니친」이 유명하게되자 「나챠」는 그에게 다시 돌아왔다.
「이리나」여사는 당시 (56년)에 『「사냐」(「솔제니친」의 애칭)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묻기에 남편과 고약을 같이하는 여자만이 마음에 든다』고 일러주었으나 「솔제니친」의 마음이 약했던지 「나챠」를 받아들였다.
「나챠」부인은 지난해 사망, 「솔제니친」은 현재 재혼하여 살고있다.
「이리나」여사는 조카인 「솔제니친」에 대해 근래는 매우 서운한 감정을 갖고있다.
「이리나」여사는 최근 「솔제니친」에게 보낸 편지에서 『「사냐」,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달갑지 않고나. 나는 그저 옛날에 내품에 안겨있던 귀여운 「사냐」만이 생각날 뿐이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고 밝혔다. <슈테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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