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등산 모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산에도 우정이 있다. 산처럼 인간과 인간사이를 맺어주는 것은 없다. 어떤 난관도 손을 잡고 서로 마음을 나누는 가운데 이겨낼 수 있다. 난 문제는 산에서 해결하면 된다. 「흐루시초프」도 「존슨」도 모택동도.』
이런 말을 에베레스트를 처음으로 등정한 「텐진」이 한 적이 있다. 어떤 영산의 정복도, 모든 자연에의 도전에 있어서나 마찬가지로 혼자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등산처럼 엄격한「팀·워크」가 중요한 스포츠도 드물다. 서로의 신뢰가 없이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한다. 참다운 우정이란 오직 산에서만 싹튼다는 것은 그러니까 매우 당연한 말이다.
산이 키워주는 것은 우정만이 아니다. 우정의 바탕이 되는 모럴도 있다. 이런 모럴을 지니고 있지 못할 때 등산의 「팀·워크」는 깨지기 쉽다. 그래서 「텐진」은『그러나 나는 「흐루시초프」나 모택동과 자일을 같이 매고 싶지는 않다』는 말을 덧붙였던 것이다. 28일 저녁 서울 우이동의 인수봉에서 7명의 등산객이 숨지고 16명이 중상을 입는 조난사고가 일어났다. 가슴 아픈 일이다.
산은 언제나 위험을 안고 있다. 아무리 면밀한 계획과 주도한 준비, 그리고 조심성이 있어도 자연의 맹목적인 장해를 이겨내기는 어렵다. 세계적인 알피니스트 「말로리」「윔퍼」「장·코스트」등도 모두 비극적 종말을 맞았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의 조난사고들에는 좀처럼 납득이 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얼마든지 피할 수 있었던 사고들이기 때문이다.
이번 일도 그렇다. 조난한 등산객들이 산정에서 내리기 시작한 시간은 저녁 6시쯤으로 되어 있다. 이미 어두워지기 시작한 다음이다. 겨울 등산이면 두 시간 전에 내려갈 준비를 했어야 했다. 경험이 있는 리더들이 없었다는 것, 또 장비가 충분하지 못했다는 것도 지적되고 있다.
치명적인 원인으로는 기상의 돌변이었다고 한다. 이것만은 인력으론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피할 수 없는 사고는 아니었을 것이다.
『갑자기 추위가 닥쳐 모든 대원들이 한꺼번에 내려가려고 자일을 모두 밑으로 늘어뜨렸는데 강풍이 불어 자일이 뒤엉켜 조난을 당했다.』한 생존자는 이렇게 말했다.
바람에 자일이 날릴 것을 차분한 리더가 있었다면 미리 염두에 뒀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도 먼저 내려가려고 앞을 다퉈가며 일제히 내려뜨린 자일에 매어 달리던 조난자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어쩌면 우정과 모럴의 결핍이 비극을 불렀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