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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과거·현재·미래 한눈에 보는 별난 여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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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세종호수공원의 밤 풍경. 환하게 불 밝힌 수상무대섬(오른쪽)과 세종국립도서관 뒤로 정부세종청사의 모습이 보인다.

풍수에 삼산이수(三山二水)라는 말이 있다. 산 세 개가 둘러싸고 물줄기 두 개가 흐르는 지형으로 예부터 길지(吉地)로 꼽혔다. 행정수도 세종시의 정부세종청사가 바로 삼산이수의 형국에 들어서 있다. 원수산∼전월산∼괴화산이 청사 건물 뒤에 병풍처럼 서 있고, 앞으로는 미호천과 금강 줄기가 흐른다.

세종시, 그러니까 과거 충청남도 연기군 일대는 일찍이 수도로 두 번이나 낙점을 받은 역사가 있었다. 정부세종청사에서 30㎞ 떨어진 계룡산 자락에 조선 태조 이성계가 도읍을 정한 기록이 전해오고, 박정희 전 대통령도 ‘백지계획’을 통해 세종시 장군면 일대로 수도 이전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운이 닿지 않았는지 역사는 이 길지를 비켜갔다.

그러나 운명은 끝내 저버릴 수 없었나 보다. 2002년 노무현 당시 대통령 후보가 ‘신행정수도 충청권 건설’ 공약을 내걸면서 세종시 일대가 다시 역사에 등장했다. 2005년 노무현 정부는 특별법을 제정해 행정중심복합도시(세종시) 사업에 시동을 걸었고,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0년 중앙행정기관 등 36개 기관을 세종시로 이전한다는 최종 결정이 났다. 숱한 우여곡절 속에 십 년 세월이 흘렀고, 마침내 지난해 7월1일 세종시가 출범했다.

세종시의 정식 명칭은 세종특별자치시다. 충남 천안·공주시, 충북 청원군, 대전광역시에 둘러싸여 있고 면적은 465㎢로 서울(605㎢)보다 작다. 세종시에서 정부세종청사와 공공기관이 들어오는 권역을 ‘행정중심복합도시(이하 행복도시) 건설지역(72㎢)’이라 부른다.

행복도시는 최첨단 도시다. 전봇대도 없고, 쓰레기차도 없다. 길이가 4㎞나 되는 청사 건물은 용처럼 길게 누워 있고, 청사 앞의 세종호수공원은 국내 최대 규모의 인공호수를 품고 있다. 반면에 행복도시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옛 연기군 시절의 정겨운 풍경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세종대왕이 눈병을 고쳤다는 전의초수와 김종서 장군 묘 등 역사적 인물과 관련한 볼거리도 많다.

지난해 12월 개청한 정부세종청사 첫 돌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다음달 보건복지부·고용노동부·교육부·문화체육관광부 등이 들어오고 내년 하반기에 법제처·국세청 등이 옮겨오면 유사 이래 최초의 행정도시가 완성된다.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김용호(45) 사무관은 “전무후무한 최대 개발도시가 들어서는 것”이라며 “앞으로 수도가 바뀌지 않는 이상 이런 도시가 만들어질 일이 없다”고 설명했다.

세종시로 떠나는 여행은 국가적인 변화의 현장을 찾아가는 여행이다. 지금 세종시에 가면 이 유례 없는 도시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두 눈으로 지켜볼 수 있다. 마침 세종시도 최근 여행사 팸투어를 진행하는 등 관광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세종시가 여행 명소로 떠오를 날도 멀지 않았다. 구석구석 둘러본 세종시는 의외로 볼거리가 많았다.

1 하늘에서 내려다 본 세종정부청사의 모습. 구불구불 이어진 건물의 모양이 확연하게 보인다.

세종 품에 잠든 김종서 … 인연의 땅 세종시

세종특별자치시(이하 세종시)는 크게 정부세종청사를 중심으로 한 행정중심복합도시(이하 행복도시) 건설지역과 그 외 지역으로 나눌 수 있다. 행복도시 건설지역은 최첨단의 신도시가 만들어지고 있는 반면 나머지 지역은 소박했던 연기군 시절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한 번에 다른 느낌의 두 도시를 여행하는 기분이었다.

2 세종정부청사를 중심으로 세종호수공원과 주변 개발 현장을 찍은 항공사진. [사진 세종시청]

시간 여행의 경계선 ‘빗돌터널’

정부세종청사로 가기 위해 조치원읍에서 1번 국도를 타고 가다 ‘빗돌터널’을 지났다. 터널을 경계로 시간여행을 떠난 기분이었다. 터널을 통과하기 전에는 여느 시골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논밭과 민가가 띄엄띄엄 있고 시야에 가리는 거라고는 크고 작은 산과 간간이 박힌 전봇대가 전부였다. 그러나 터널을 나오자마자 고층 아파트 건설현장이 시야를 압도했다.

정부세종청사는 일반인 출입이 통제된다. 원래 청사 건물 옥상정원은 공개할 계획이었는데, 보안 문제로 지금은 출입을 막고 있다. 그러나 담장을 따라 건물 둘레를 따라 외관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색적이었다. 처음엔 규모에 놀랐고, 생김새에 또 한 번 놀랐다. 용을 형상화했다는 청사 건물은 구불구불하게 이어져 있었는데, 건물 둘레를 한 바퀴 돌면 10km를 걷게 된다. 청사는 내년 10월 완공 예정이다.

개발이 한창인 행복도시 전경을 보려면 밀마루 전망대를 오르면 된다. 타워크레인이 허공을 휘적거리며 분주하게 움직이는 건설현장이 파노라마로 펼쳐졌다. 세종시청 공보관 이홍준(49) 사무관은 “올 때마다 풍경이 확연히 달라진다”며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행복도시 건설지역은 전체 면적 중 52%가 공원·하천 등 녹지공간으로 꾸며진다. 자연경관과 어우러지는 도시공간을 조성하겠다는 취지인데, 대표적인 시설이 세종호수공원이다. 축구장 62개를 붙여놓은 크기로 국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인공호수가 있다. 수상무대와 물놀이 시설도 있어 세종시 주민의 여가공간으로 활용된다.

평일인데도 잔디밭에 돗자리를 깔고 도시락을 먹는 사람, 단체로 구경 온 관광객을 더러 만날 수 있었다. 다소 인공미가 느껴지는 호수공원 너머로 자연 습지가 펼쳐져 있었는데, 갈대와 붉은빛을 띠는 습지 생물이 자라나 있는 모습이 인공호수와 대비돼 인상적이었다. 공원 입구의 국립세종도서관(12월12일 개관 예정), 호수 주변으로 깔끔하게 조성된 산책로(8.8㎞)와 자전거 도로를 보니 어수선했던 세종시 이미지가 싹 사라졌다.

3 백제고분 역사공원에는 행복도시 건설 중에 발견된 백제고분이 복원돼 있다. 4 세종시 장군면에 있는 김종서 장군 묘.

미래도시의 모습 한솔동 첫마을

정부세종청사 주변을 구경하고 나서 601번 버스를 타고 한솔동 첫마을로 이동했다. 행복도시에서 첫 번째로 완성된 마을이어서 첫마을이다. 첫마을은 앞으로 행복도시가 어떤 모습일지 보여주는 모델하우스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2011년 말에 입주를 시작한 첫마을에는 현재 2만300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널찍한 인도, 깔끔한 조경으로 멋을 낸 아파트 단지 사이로 작은 공원도 보였다. 전기·통신 설비를 전부 땅에 묻어 지상에 전봇대가 하나도 없었다. 쓰레기를 우체통처럼 생긴 통에 넣으면 지하로 내려가 자동 분리·처리 시스템에 의해 알아서 버려진단다. 해서 첫마을에서는 쓰레기차를 볼 수 없다.

한솔동주민센터 바로 옆에 있는 한솔동 백제고분 역사공원은 여러모로 의미가 깊은 유적이다. 행복도시 공사를 위해 굴착기가 들어갔는데, 우연히 백제시대 석실분 유적을 발견했다. 운동장 부지였던 일대를 급히 용도 변경해 공원으로 꾸몄다.

“산에 있는 흙을 퍼 다른 곳을 메우려고 굴착기 삽을 땅에 내리찍는 순간 둔탁한 소리가 났어요. 무덤을 덮은 뚜껑이 찍혔던 거죠. 공사를 중단하고 당장 발굴에 들어갔습니다.”

발견 당시를 회상하며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김교년(49) 연구관이 말했다. 유리막으로 가려 놓은 백제시대 석실분 2호는 그 형태가 이전의 것과 달라 역사적으로 매우 귀중한 것이라고 한다. 행복도시 건설이 아니었으면 영영 묻혀 있을 뻔했다.

총리공관 뒤에 바로 붙어 있는 세종리(옛날 양화리)에서는 옛날 연기군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수령 650년의 아름드리 은행나무 두 그루만 초입에 서 있을 뿐 주민 33세대 전부가 이주해 나간 뒤여서 마을은 텅 비어 있었다. 채 수확하지 못한 호박·들깨 따위만 밭에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폐가만 남은 마을의 마지막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관광객 몇 명을 골목에서 만났다. 세종리는 역사공원과 택지로 개발될 예정이다. 마을 앞을 흐르던 하천과 옛길, 마을 구획 등 기본 틀은 유지한 채 개발에 들어간다는 설명을 들으니 그나마 작은 위안이 됐다.

5 650년 된 세종리 은행나무 주변은 역사공원으로 꾸며진다. 6 세종대왕의 눈병을 낫게 했다는 전의초수.

세종대왕의 샘물과 김종서 묘

흥미롭게도 세종시에는 세종대왕(1397~1450)과 관련한 유적지가 곳곳에 있었다. 세종대왕이 1년 동안 약수를 서울로 운반해 마셔 눈병을 고쳤다는 전의면의 전의초수는 주말이면 ‘왕의 물’을 맛보러 온 관광객들로 가득했다.

관객 900만 명 이상을 끈 영화 ‘관상’ 덕분에 화제가 된 김종서(1390∼1453) 장군의 묘가 정부세종청사에서 겨우 8㎞ 떨어진 곳에 있었다. 묘가 있는 장군면 대교리는 예전에 ‘한다리마을’이라 불렸다. 역모 죄로 죽임을 당했기 때문에 시신을 거둘 수가 없어 겨우 다리 한쪽만 추려서 고향에 묻은 것이었다. 조선 초 최고 권세가의 묘는 혹시나 들킬세라 인적이 드문 곳에 꽁꽁 숨겨져 있었다. 묘 입구인 홍살문을 지나고 구불구불하게 난 길을 돌아 언덕에 오르자 그제야 봉분이 보였다.

추천할 만한 자연 나들이 장소도 여럿 있었다. 세종시의 전동면과 전의면에 걸쳐 있는 운주산(459m) 운주산성은 백제부흥 운동군 최후의 항쟁지로 알려져 있다. 성벽둘레길을 걸으니 널찍한 돌을 용의 비늘처럼 겹쳐 쌓은 성벽 원형이 아직도 뚜렷했다.

오봉산 정상을 지나 고복저수지로 이어지는 4.6㎞ 길이 탐방로도 걸을 만했다. 길도 완만하고 산에 내려와서는 저수지 주변을 돌아볼 수도 있어 지금도 주말이면 제법 붐빈다고 한다.

7 국화가 활짝 핀 베어트리파크 정원에서 산책하는 반달곰 ‘새콤이’.

150마리가 넘는 반달곰으로 유명한 ‘베어트리파크’는 사실 수목원이라 해야 옳다. 10만여 평 대지가 온갖 종류의 풀과 나무로 아지자기하게 꾸며져 있다. 1년에 한 번씩 2㎞ 길이의 단풍 산책길을 개방하는데, 올해는 마침 오는 10일까지 산책길을 개방한다. 평소에는 통행이 금지됐던 길이라 오붓한 가을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여행정보= 자동차를 이용하면 천안~논산고속도로를 타야 한다. 정부세종청사로 바로 가려면 정안IC로, 세종시 복판에 있는 조치원읍을 중심으로 여정을 짰다면 남천안IC로 빠지면 된다. 열차로 세종시로 가려면 서울역에서 KTX를 타고 충북 청원군 오송역에서 내리거나, 새마을호·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조치원역에서 내리면 된다. 오송역까지 KTX로 45분, 새마을호와 무궁화호는 조치원역까지 1시간30분이 걸린다. 일반실 어른 기준 KTX(서울역~오송역) 1만7200원, 새마을호·무궁화호(서울역~조치원역) 8000원. 오송역에서 20분마다 정부세종청사로 가는 BRT버스(17분)가 출발한다. 조치원역에서 601번 버스를 타면 조치원 읍내와 소박한 시골마을을 구경하면서 정부세종청사까지 갈 수 있다. 세종특별자치시청(sejong.go.kr) 문화관광과 044-300-3442.

글=홍지연 기자 사진=신동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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