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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정화의 횃불 높이|청담스님의 생애와 불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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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15일 밤 입적한 이청담 대종사(본명 순호)는 70세의 고령임에도 불교계의 일을 도맡아 무리를 함으로써 갑자기 뇌일혈증상을 일으켰다. 그의 뇌일혈 증세는 5년 전에도 있었고 이번엔 졸도하자 의식을 회복치 못한 채 운명한 것이다.
대한불교 조계종 원정(66년) 및 장로원장(67년)을 지낸바 있는 청담스님은 스스로 어려운 자리인 총무원장 직을 택해 지난해 7월 취임했다.
그가 불교계 살림의 실무직을 다시 맡게 된 것은 『한국 불교의 정화와 부흥은 내 손으로』라는 신념 때문이며 그 이유로 해서 한때 조계종 호국 탈퇴한다고 성명하기도 했다.
조계종 내외로 파벌과 알력이 격심한 불교계에서 그는 어느 쪽도 포용할 수 있는 순수한 종교인이었다. 신념과 현실사이의 갭 때문에 어려움이 컸지만 할말을 다하고 또 실전으로 보인 거승이다. 그는 종교인협회를 통하여 타종교와 끊임없이 대화를 나눴다.
24세에 입산하여 승랍 근50년을 헤아리는 청담스님은 파란의 일생이었다. 1902년 경남진주시 평안동 태생인 그는 17세에 보통학교에 입학, 진주농림 1년인 21세에 결혼했다. 24세에 부인과 열병으로 사경을 헤매는 딸을 남겨놓고 일본으로 건너가 병고현 송운사에서 아끼모드 사에서 수학했고, 다시 귀국해 고성 옥성사에서 방영호 사에게 특도 수계를 했다.
그가 서울 개운사 대원불교 전문 강원 대교과를 마친 것은 1930년이다. 이후 예산 수덕사에 들어가 송만공 대선사의 영향을 받아 승려로서 성숙했다. 그는 참선생활을 통해 많은 사람에게 감화를 주었는데 그중 기독교 신자인 춘원 이광수씨를 불교로 개종시킨 것은 대표적인 예이다.
또한 수도승으로서 한번은 고향 진주에 내려가 설법하는 가운데 노모를 설득하여 불문에 귀의시켰고, 반면에 노모의 간청으로 이혼한 부인을 재회, 이때 얻은 따님이 그의 측근도제의 한사람인 묘엄스님이다.
그는 54년 불교전화운동을 발기, 조계종을 비구승단으로 만드는 한편 초대 총무원장으로 취임했고 그밖에 도선사 주지로서 호국참회원(대학단원)의 대불사를 일으켰다.
『설령 내가 금생의 성불을 미루는 한이 있더라도 모든 사람을 다 건져 놓고 부처가 되겠다』는 것이 그의 평소의 다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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