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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회복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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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인간회복」의 소리가 드높다. 최근 삼성문화재단은 바로 이것을 주제로 한 소설이나 논문에 대한 시상을 제의한바 있었다.
현대는 대중사회의 시대이다. 인간의 의미는 대중의 일원으로 축소되고, 모든 사람들은 외면적 현혹 속에서 「자기」를 잃고 산다. 인류는 지난 3백년동안 어느 세기에서도 볼 수 없던 과학·기술의 급속한 진보를 체험했다. 그러나 그 눈부신 문명은 인간을 따뜻한 어둠 속으로 끌어들이기는커녕, 오히려 밀어내고 있다. 인간이 이루어놓은 사회조직이나 인간이 개발한 기술은 거꾸로 인간을 종속시키고 얽매어 놓았다.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는 그것을 『인간의 고향상실』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인간소외」(humanlienation)라는 말은 그래서 더욱 실감있다. 결국 「인간회복」(humanization)은 인간의 고향을 찾자는 의미도 된다.
오늘날 인간이 서 있는 곳을 「공허」라고 말한 문명비평가도 있었다. 세계의 지평을 바라보면 무서운 공허를 정말 목격할 수 있다.
전화는 그칠 날이 없으며 무기의 개발은 대량학살의 폭을 끝도 없이 넓혀가고 있다. 국가간의 질서는 아직도 강자만의 이해에 매달려 있다. 「비아프라」의 굶주림, 동 「파키스탄」의 재난은 세계의 군사비지출 2천억「달러」로는 어떻게 설명할 수조차 없다. 인류는 쾌적과 안전과 보건과 변리를 일찌기 누려본 기억조차 없는 것 같다.
인간회복의 소리는 세계의 지평 위에만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우리의 눈앞, 현실을 보면 더욱 절실하고 더욱 간절하다. 환경의 퇴폐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리고 또 양심의 마비. 퇴폐의 질서(?) 속에선 사람들은 본연을 잃고 산다. 권력은 국민을 위해 있지 않다. 정치인은 자신만을 위해 봉사한다. 관리는 시민과 함께 일하지 않는다. 노동은 한날 허무한 도노에 그치기 쉽다. 사람들은 불안정해 하고 항상 위기감속에서 산다. 무엇을 식별하고 판단하는 기능이 어두워진다. 아욕과 아집, 자기기만…실로 이런 세상에선 삶의 의미를 어떻게 찾을 수 있겠는가? 인간회복은 바로 인간질서의 회복을 의미한다. 삶의 가치가 있는 사회의 건설. 인간의 정신적 가치로 모든 것을 척도할 수 있는 환경은 누구나의 이상이다. 『인간은 생각하기 위해서 태어났다. 그러기에 한시라도 생각하지 않는 순간은 없다』 「파스칼」의 말이다. 『덕은 아는데(지) 있다.』 「소크라테스」의 말이다. 「생각」과「덕」은 우리 마음속의 눈을 밝게 한다. 지금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이겠는가?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행동할 때이다. 인간회복은 저마다의 본분을 지키며, 성실하게 행동하는데서 비롯될 것이다. 공자도 바로 그 『인간의 본분』을 최선의 질서로 생각하고 있다. 인간회복은 그 『본분의 발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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