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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동화같은 이야기이다. 분단국가에서나 볼 수 있는 슬픈 「에피소드」랄까.
서울에 사는 조류학자 W교수는 철새 북방쇠찌르레기의 발목에 「링」을 달아 날려보낸 일이 있었다. 북한에 사는 조류학자 W교수는 어느 날 숲 속에서 우연히 한 마리 새를 잡았다. 그 새의 발목엔 「링」이 달려 있었다.「링」은 일본농림성에서 만든 것이었다.
북한의 W교수는 이「링」의 원적지에 조회를 했었다. 꿈 같은 일이다. 원적지의 회답은 그 「링」을 달아준 주인공이 바로 누구도 아닌 자신의 아들임을 알게되었다. 역시 서울의 아들인 W교수도 그 사실을 알았다.
서울의 W교수가 63년부터 이제까지 휴전선 이남에서「버드·링」을 해서 날려보낸 새는 모두 20만 마리에 달한다고 한다. 종류로도 1백25종을 헤아린다.
우리 나라는 남북이 정치적으로 긴장되어 있는 특수성 때문에 「버드·링」의 정보교환은「홍콩」사서함을 통하고 있다. 따라서 새의 발목에 다는 가락지엔 「PO Box3443, Hong Kong,B.C.C.NO」로 되어있다. 이런 가락지를 달고있는 새를 잡은 사람은 그 사서함에 기별을 보낸다. 그 기별을 받은 이 쪽의 W교수는 그 쪽에서 필요로 하는 정보를 준다. 새를 발견한 지점, 그 연월일, 그리고 생태에 관한 보고를 해주는 것이다.
서울의 W교수가 이제까지 응답을 받은 나라는 소련을 비롯해 북한「타일랜드」 「버마」 「말레이지아」「필리핀」 대만 호주 일본 등이라고 한다. 필경 중공대륙에도 우리 나라의 새들이 날아갔으련만, 그 회담은 없었다고 한다.
서울의 W교수는「버드·링」을 통해 근년에 제비의 생태를 알 수 있었다. 제비는 강남에서 월동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 「강남」이 어딘지는 아직 밝혀진 일이 없다. 그러나 우리 나라 제비의 가락지들이 「타일랜드」에서 발견되기 시작했다. 제비들의 강남은 「타일랜드」인 것이 밝혀진 셈이다. 한반도의 여름을 한층 아름답게 해주는 백로며, 노랑때까치·물촉새 등은 「필리핀」에서 겨울을 보내는 것도 그 가락지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새삼 자연의 세계가 품고 있는 무한성 자유, 그리고 관용에 깊은 경외심을 갖게된다. 그들은 다만 자연법에 따라 조물주의 섭리대로 질서 있게 살아가고 있다. 지리적인 경계며, 정치적인 이해며, 분쟁·저주와 증오도 없이 서로 자연의 명대로 「코스모폴리턴」의 경지를 누리고있는 것이다. 새삼 인간의 세계가 얼마나 폐쇄적이며 배타적인가를 느끼게된다. 부끄러운 인간의 세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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