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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사고 선발권 보장, 공교육 살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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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병민
중동고 교장
전국자율형사립고연합회 회장

교육부는 최근 ‘일반고 교육역량 강화 방안’을 확정, 발표했다. 이 안은 지난 몇 달 동안 우리 교육계에 뜨거운 감자였다. 교육부는 8월 말 발표된 시안에서 일반고의 위기가 자사고에서 우수 학생을 선점했기 때문이라는 식의 논리를 폈다. 그래서 정책의 방향이 자사고의 신입생 선발권을 박탈하는 쪽으로 흘렀다.

 이는 자사고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정책이었다. 숱한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교육부는 많은 교육 단체와의 대화와 협의 끝에 최종안에서 합리적인 방안을 내놨다. 자사고의 선발권을 일부 인정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린 것이다. 확정안에 따르면 서울의 자사고들은 지원자 가운데서 1.5배수를 추첨으로 선발한다. 그리고 이들을 대상으로 ‘창의인성 면접(가칭)’을 통해 최종 합격자를 가린다. 이 과정에서 교과 성적은 일절 배제한다. 지방의 자사고들은 기존의 방식대로 학생을 뽑거나 서울의 방식을 준용할 수 있다.

 이제 자사고 지원에서 ‘내신 성적 50% 이내’라는 규정은 없다. 성적 제한이 없으니 우수학생을 자사고에서 빼앗아간다는 일반고의 오해를 풀어줄 수 있을 듯싶다. 자사고들로서도 완전하지는 않지만 건학 이념에 맞는 학생을 선발하게 됐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하지만 사회 여론은 꼭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선발 면접 과정에서 어떤 형태로든 자사고들이 성적 우수한 학생들을 골라내지 않겠느냐는 우려의 소리가 높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예상되는 문제 때문에 개선의 노력을 접어서는 안 된다.

 왜 한국 고교들은 입시 결과에 목을 매는가? 학교를 평가하는 잣대가 진학 실적으로 모아지는 탓이다. 오랜 평준화 정책 탓에 학교들은 붕어빵같이 서로 비슷해져 버렸다. 이런 현실에서는 좋은 학교를 가리는 기준은 ‘서울대 입학생 수’ 정도밖에 없다.

 이번에 도입되는 자사고 창의인성 면접은 입시경쟁으로 굳어버린 우리 공교육에 탈출구를 마련해 준다. 성적을 고려하지 않은 채 좋은 학생들을 뽑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먼저, 학교마다 지향하는 인재상을 분명히 해야 한다. 인재상이 학생을 선발하는 잣대가 되기 때문이다.

 영국의 이튼이나 해로, 미국의 초트로즈마리 같은 해외 명문 고교들은 각각 뚜렷한 교육 목적을 표방한다. 이런 학교에 가기 위해서는 학생들은 각 학교가 지향하는 덕목에 맞춰 자신을 스스로 가꿔 나가야 한다.

 자사고들은 앞으로 자기 학교의 인재상을 뚜렷이 하기 위해 공을 들여야 한다. 이럴수록 대입 결과에 ‘다걸기’ 하는 지금의 고교 풍토도 바뀔 것이다. 대학은 지금처럼 단순히 국·영·수 실력만으로 학생을 선발하지 않아도 된다. 각 고교의 졸업생들이 출신 학교에서 지향하는 나름의 수월성을 얼마나 갖추었는지에 따라 다양한 평가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변화는 항상 소수 집단이 선도하고 다수가 따라간다. 자사고들의 건학이념이 분명해지고 이에 따라 교육적 성과를 거둔다면 개성이 없던 일반고들도 자기만의 색깔을 갖기 위해 노력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창의인성 면접을 통한 전형은 획일화된 입시교육으로 죽어가는 우리 공교육을 살리는 획기적인 변화의 출발이다. 물론 면접만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정책에는 실무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을 줄 안다. 그러나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정책 방향이 옳다면 불거지는 문제의 해법은 찾아지기 마련이다. 교육부의 이번 일반고 교육역량 강화 방안이 성공할 수 있도록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

김병민 중동고 교장
전국자율형사립고연합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