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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은래가 키워준 중진외교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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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비상한 관심을 모아오던 중공「유엔」대표단 수석대표자리는 현재 중소국경회담의 주역을 맡고있는 외교부부부장 (외무차관) 교관화(68)에게 떨어진 것 같다. 그 동안 하마 평에 올랐던 사람으로는 주은래 수상, 이선념 부수상 등 초 거물급서부터 희붕비 외교부장대리, 섭검영 국방의부주석, 황화주「캐나다」대사 등에 이르기까지 열 손가락이 넘었으나 경작 교를 점친 사람은 별로 없었다.
교는 1903년 강소성 출신으로 선교사들이 경영하던 청화 대학을 나와 독일유학까지 마친 보기 드문「인텔리」. 중일전쟁이 한창이던 때 귀국해서 중경에서 신화일보의 일을 도왔다.
국공 내전이 본격화하자 상해에 와서 선전활동을 벌였으며 이때의 공로로 49년 중공정권이 수립된 뒤 국무원외교정책위원회 부 주임에 발탁되었다.
교의 관계진출은 주은래의 진력에 힘입은바 크다. 50년 12월 대만문제에 관한 「유엔」안보리 회담에 오수권 특파대표의 고문자격으로 동행했고 54년4월 「제네바」합의 때도 주와 함께 참석했다. 그리고 이 회의에서 돌아오자마자 외교부 부장 조리(의무차관보)에 승진됐다.
교와 주은래의 관계는 그 뒤에도 꾸준히 계속되었다. 55년4월 「반등」회의, 56년11월에서 57년2월까지 계속되었던 아아 지역 대 순방, 60년의 동남아3국 방문, 61년5월의 「라오스」 문제에 관한 「제네바」확대회의 등 주은래가 가는 곳이면 빠지지 않고 수행한 것이다. 말하자면 교는 주은래 외교의 정수를 처음부터 끝까지 견학한 충실한 「도제」인 셈이다.
중공내의 소장성장주들이 풍비 박산 되었던 문혁 때도 교는 오히려 외교부부부장으로 승진 되었으며 이번에 다시 「유엔」수석대표로 지명된 것이다. 그의 성장경력으로 볼 때「유엔」에서의 활동은 「교관 화식 주은래 외교」가 될 것으로 추측된다.

<홍사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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