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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대 북괴 정책|<동경=조동오 특파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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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중공 선풍 속에 휘말려 있는 일본이 이번에는 북괴 지역에서 발생한 정치적 저기압권에 감싸여 방향 감각을 상실하기 시작했다.
분단된 한반도의 긴장 격화에 힘입어 전후 경제 대국으로 성장한 일본은 그 동안 한국 경사 외교를 펴서 북괴와의 교류는 거의 폐쇄적이었다.
닉슨 미 대통령이 중공 방문을 결정하고 남북 적십자 회담이 개최되면서 일본은 중공과의 저자세 굴복 절충에 이어 국내에서 북괴와의 교류 증대에 대한 압력이 가중되고 여당인 자민당 안에서까지 북괴 접근 세력이 늘어가기 시작했다.
일본 정부로서는 「한일 우호」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기본 방침에 변동이 없다는 것을 계속 강조하고 있지만 모든 일본의 여론 유도 기구가 북괴에 대한 문호 개방을 외치고 심지어는 북괴와의 국교 회복을 주장하고 나서 정부 내부에서마저 공식적인 발언과는 달리 차차 북괴에 대한 미소 정책의 일단을 엿보이는 사태가 빚어지기 시작했다.
우선 지난 주말 일본 국회 예산 심의를 위한 질의에서 「사또」(좌등)수상이 공명당 의원의 질의에 대해 『북괴와의 인적·물적 교류는 극동의 긴장 상태와 견주어 증대시켜갈 의향』이라고 공언했고, 때를 같이하여 전 미법상은 25일 북괴를 방문하는 미 농부 동경 도지사의 반대 급부로 평양 시장이 방일하면 정부는 그곳 입국을 전진적으로 고려하겠다고 밝혀 해방 후 처음으로 북괴 요인의 일본 입국 가능성을 강력히 시사했다.
이보다 앞서 지난주 초 복전 외상은 미 농부 동경 도지사 수행 기자단 19명에 대한 북괴행 여권 발급 허가와 함께 상호주의에 입각, 북괴 기자의 일본 입국을 선의적으로 고려하겠다고 기자 회견에서 언명했다.
일본 정부는 그 동안 북괴와 대치하고 있는 한국 정부에 대한 우호적 배처와 일본 국내서 민단과 조총련이 대립하고 있는 특수 사정을 참작, 정치적인 판단 아래 미승인 집단인 북괴와의 교류를 극도로 제한해 왔다.
그러나 70년 말 여권법을 개정한 후 지난 1월부터는 일·조 무역회 전무 이사상 천리 일남 등 15명의 상용 여행자들이 여행 목적지로 그 동안의 편법이 된 평양 아닌 소위 북괴 정식 명칭을 기재한 여권을 발급 받았고, 지난 9월에는 일본과 북괴의 우호 친선 단체인 일·조 협회의 사무국장 당립문남에게 여권이 발급되었으며 9월에 또 창부 「레이온」의 기술자 5명과 조일신문 편집국장 등 기자 4명에게 북괴 방문을 허가했다.
이렇듯 헤일 수 있을 정도로 북괴와의 교류를 억제해온 일본이 최근에 와서 허리띠를 늦추는 이유는 주로 「매스컴」의 끈덕진 압력과 일본 공산당·사회당의 국회 「로비스트」들의 공작에 힘입은 것이다.
10월초 일·조 우호 촉진 의원 연맹이 발족되어 자민당 내 50여 의원(주로 친중공 의원들)이 참가 서명했고 공명당·민사당 등 우익 정당들이 모두 대 북괴 접근의 선봉에 서서 공명당은 내년 초에 대규모 북괴 방문단을 파견할 것을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남북 적십자 회담은 이 같은 친 북괴 의원들에게 좋은 구실을 만들어 주었다.
지난 9월 일본서 열린 한일 의원 간담 회석 상에서 일본의 대 북괴 접근 무드로 쌍방이 대립되었을 때, 일본의 친한파 H의원이 『당신네들 북쪽과 얼굴을 맞대고 교류 증대를 협의하면서 우리는 만나면 안 된다는 말이 어디 있느냐?』고 대들었다지만 남북 회담은 일본의 대 북괴 접근에 윤활유를 부어준 셈이다.
더우기 후등기부 「아사히」신문 편집국장의 김일성 회견기에서 표시된 김일성의 대 일본 접근을 위한 적극 자세, 일본과의 기자 교류 제안에 뒤이은 북괴 외무 당국의 기자 교환, 상호주의에 현혹된 일본의 언론 기관은 그 특유한 경쟁주의에 입각, 타사보다 먼저 미지의 지역 북괴에 특파원을 보내기 위한 맹렬한 이면 공작을 펴고 있다.
때문에 각 신문은 지면을 통해 북괴의 환심 사기 경쟁을 벌이고 정부의 친 한일 변도 정책에 쐐기를 박기 시작했다.
특히 타사에 앞질러 북괴의 기자를 잠정적으로 주재시킨 「아사히」신문은 북괴의 허위 선전을 그대로 받아들인 고의적인 기사를 간간이 보도하여 북괴의 환심을 사고 있는 것이다.
한편 관서 재계에서 싹트기 시작한 북괴에의 경제 사절단 바람은 동 경재계까지 파급, 일본 재계에서도 서서히 본격적인 대 북괴 교역의 발동을 걸기 시작했다.
일본 사회당 내의 북괴 앞잡이들은 정부에 대해 중공의 일·중 무역 판무처 동경 사무소와 같은 북괴 통상 대표부의 설치와 북괴와의 상주 신문 특파원 상호 교류를 당면 목표로 삼고 북괴 노동신문·조선 중앙통신·방송·TV에서 상주 특파원 11명의 일본 입국을 실현시키고자 서두르고 있다.
일본의 선린 외교 테두리 안에서 북괴만을 제거하라고 강요하기에는 힘들지만 중공 문제와 북괴 문제를 같은 레일 위에서 다루려는 일본은 역시 가깝고도 먼 나라이다.
혁신계 출신 동경 도지사의 북괴 방문을 계기로 북괴 요인의 일본 방문길이 트이고 기자아닌 공작원 특파원의 일본 상주가 확정되고 경제인의 상호 교류가 빈번해지면 한국으로서는 지금까지 취해온 항의 외교보다 근본적인 대 일본 정책의 전환이 불가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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