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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비즈 칼럼

피해자 구제 못하는 국민검사청구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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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김승열
법무법인 양헌 대표변호사

동양사태를 계기로 금융 계열사를 통한 기업어음(CP) 불완전판매에 대해 많은 논란이 일고 있다. 금융소비자단체에서 금융감독원에 국민검사청구를 신청했고, 금융감독원이 이를 수용해 검사결과가 어찌 될지 관심이 높다. 하지만 검사의 초점이 피해자 구제가 아니라 금융기관의 위법 여부에 맞춰져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 씁쓸하다. 이미 해당 금융기관에 대한 무기한 검사에 돌입한 상태에서 국민검사청구에 의한 검사는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국민검사청구제도는 금감원이 지난 5월 도입했다. 200명 이상의 금융 피해자가 금융기관의 위법사항에 대해 금융감독원에 검사를 요청할 수 있게 한 제도다. 문제는 이 제도가 단순한 검사촉구인데도 너무 엄격한 요건을 요구한다는 점이다. 200명 이상의 연서와 위원회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 누구를 위해, 그리고 무엇을 위해 이처럼 엄격한 절차를 요구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더욱이 국민감사를 청구한 피해자들이나 이와 유사한 피해자들을 실효성 있게 구제하기 위한 구체적인 절차나 내용도 없는 것으로 보인다. 국민검사청구가 왜 존재하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현행 국민검사청구제도는 행정편의적이고 실제 피해자 구제라는 측면은 상당히 도외시된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이 금융소비자의 대리인으로서, 또한 공공행정서비스를 제공하는 서비스 제공자로서 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인식이 미흡하다. 단지 금융기관의 위법사항만을 점검한다면 자체 검사와 국민검사청구 사이에 차이를 찾기 어렵다. 금융당국은 금융 소비자를 대표해 알 권리를 충족시켜줘야 하고 나아가 금융 피해자들을 실효성 있게 구제하는 데 노력해야 한다. 이런 노력이 경주될 때 금융감독기관의 정체성이 확립되는 것이다.

 날로 복잡해지는 금융상품의 위험성을 제대로 모르고 피해를 본 사람은 결국 상대적으로 전문성이 약한 개인일 가능성이 크다. 그중에는 저금리시대에 노후자금을 어떻게든 활용하려는 선의의 피해자도 많다. 어쩌면 이들을 제대로 구제하는 것이 경제민주화의 출발점일 수 있다. 이번 사태에서도 기관투자가는 거의 피해를 보지 않았다. 금융시스템을 철석같이 믿은 개인들만이 피해를 보는 일이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도록 시스템을 재정비해야 한다.

 투자부적격 금융상품을 전문투자가가 아닌 개인 등에게 제한 없이 판매하는 현행 금융시장의 무질서와 난맥상은 바로잡아야 한다. 투자부적격 금융상품 등을 기관투자가가 아닌 개인에게 판매하는 경우에는 엄격한 설명의무 매뉴얼이 정비돼야 한다. 이런 점에서 현재의 설명의무제도는 피상적이고, 허술하다고 본다. 따라서 하루속히 정비돼야 한다. 감독당국이 감독업무를 게을리하는 경우 엄정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장치도 필요하다. 악의적인 사기성 위법행위에 대해서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도 과감하게 도입해볼 만하다. 금융시장에서 개인투자자를 실효성 있게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하루속히 마련되기를 기대해본다.

김승열 법무법인 양헌 대표변호사